‘2PM 준호’ 동동이, 카사노바 뚱짧이···가족 기다리는 ‘묘린이회관’

수성구 어린이회관에서 생활하던 길고양이들
김성희 씨, '집고양이 만들어보자' 결심한 이유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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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마님’ 노란줄무늬 오란다(2살, 수컷)가 초면인 기자를 보고, 발라당 누웠다. 숨숨집(고양이가 좋아하는 은신 공간)에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낮잠을 자는 고양이 친구들을 뒤로 하고, 오란다는 사람 손길을 찾았다. 얼굴을 다리에 문지르고 지나가면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만져달라고 ‘야옹’ 거렸다.

김성희(48) 씨는 “오란다는 개냥이, 아니 그냥 개”라고 했다. 김 씨가 오란다를 처음 길에서 만났을 때도 구면인 듯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오란다는 먹이활동도 못 하고 인근 주택가에서 밀려나 어린이회관까지 온 것으로 추정한다. 김 씨는 오란다가 유달리 청바지 입은 남자를 따랐고, 실내에 들어오자마자 익숙하게 등을 붙이는 여러 정황상 유기묘로 추정한다.

김 씨가 운영하는 고양이 쉼터 ‘묘린이회관’에는 오란다를 포함한 길고양이 15마리가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쉼터 고양이는 모두 수성구 어린이회관에서 터를 잡고 살던 길고양이들이다. 모두 중성화(TNR) 표식으로 귀 끝이 잘려있고, 오란다를 제외하면 낯선 사람을 꺼린다.

▲ ‘묘린이회관’ 고양이 ‘안방마님’ 노란줄무늬 오란다(2살, 수컷)는 사람을 잘 따르는 ‘개냥이’다.

수성구 어린이회관에서 생활하던 길고양이들
김성희 씨, ‘집고양이 만들어보자’ 결심한 이유

고양이들은 작년 여름부터 어린이회관이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면서 위험에 노출됐다. 고양이들 밥을 챙기던 김 씨가 매일 노심초사 하다가 관계자들의 배려로 어린이회관 온실을 잠시 빌려 쉼터로 활용했다. 그러나 1월 중순에는 온실을 비워야 했고, 김 씨는 별도로 쉼터를 마련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겨울나기만 하고 다시 길로 보내려고 했어요. 완전한 집은 아니었지만, 지붕 달린 곳으로 들어오니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자고, 먹고, 놀더라고요. 그 짧은 시간에도 애들이 편안해서 그런지 순화가 되는 것 같았구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길로 고양이들을 다시 보낼 수 없었어요. 

2년 전 여름, 김 씨는 강아지와 산책하러 어린이회관에 갔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김치를 먹던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 길로 ‘고양이 엄마’가 됐다. 한두 마리 밥을 주기 시작하다 보니 눈에 익은 고양이가 늘어났다. 어린이회관 고양이들은 대부분 어렸다. 김 씨는 “많아야 1~2살, 대부분 1년 미만 청소년 연령대 고양이들이라 정말 길 생활이 녹록치 않구나 했다”며 “제 수명대로 살지 못하는 길고양이의 삶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15년이다.

김 씨는 고양이 공부를 시작했다. 네이버 카페에 ‘대구고양이보호연대’를 찾아 가입하고, ‘고양이 집사’ 선배들에게 조언도 얻었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설득하고, 갈등 없이 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양이보호연대 사람들과 함께 어린이회관 고양이를 동시에 중성화 수술을 하는 군집TNR를 했고, 일부는 김 씨가 따로 TNR를 하는 등 돌보다가 여기까지 왔다.

카페 회원들은 지난해 성묘 입양 홍보 버스 광고도 했다. 입양 홍보 차원도 있지만 길고양이 인식 개선 및 동물 판매 문화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음을 모았다. 대구고양이보호연대는 대구지역 ‘캣맘’과 ‘고양이 집사’들을 중심으로 길고양이 인식 개선과 보호 활동 등을 펼친다.

▲ 대구 어린이회관 고양이들을 구조해 쉼터를 연 김성희 씨가 오란다에게 ‘궁디팡팡’을 해주고 있다.

봉사자들과 고양이로 ‘연대’
집고양이 만들기 프로젝트 진행 중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고양이들이 쉼터로 들어온 것이 지난달 10일이었다. 봉사자들 덕분에 무사히 17마리 고양이가 쉼터로 입소했다. 쉼터 입소 이후 2마리가 입양에 성공했고, 15마리가 입양을 기다린다. 김 씨를 돕는 봉사자 5명은 모두 ‘고양이 집사’로 대구고양이보호연대 카페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오전에 3명, 오후에는 2명이 번갈아 가며 쉼터 고양이의 물과 밥을 챙기고, 화장실 청소도 한다. 특히 ‘묘린이회관’ 고양이들 순화에 노력을 쏟는다.

봉사자 중 가장 어린 김지수(28) 씨는 입양 홍보를 위한 SNS 계정 관리를 도맡는다. 고양이들 매력이 잘 드러나도록 홍보 사진을 찍고, 소개글을 써서 고양이를 알리려고 한다. ‘2PM 준호’를 닮은 동동이, 묘린이회관 카사노바 뚱짧이 등 별명과 이름에 이들의 애정이 묻어난다.

또 다른 봉사자 이효정(48) 씨도 그저 ‘고양이’이라는 공통점으로 연대하게 됐다. 이 씨는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하루 빨리 좋은 가족을 만났으면 한다”며 “그럴 수 있도록 함께 아이들 순화나 입양 홍보 방법을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묘린이회관’ 15마리 고양이 입양홍보 포스터

길고양이 공공급식소 하나 없는 수성구
동물보호 활동 적극적으로 나서야
수성구 동물보호 단체 설립 준비 중

최근 김 씨는 수성구 지역 동물권 향상을 위해 동물보호단체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수성구가 동물보호를 위한 인식개선 사업 등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개인이 혼자 책임지고, 바꾸는 건 한계가 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길에서 사는 생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성구는 대구 8개 구·군 중 유일하게 길고양이 공공급식소가 없다. (관련기사=수성구에만 없는 길고양이 공공급식소···서명운동 나선 구민들(21.08.08))

특히 김 씨는 정부·지자체가 개인에게 동물 보호를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책을 통해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대표적 동물 관련 정책인 TNR도 반대 민원에 쫓겨 하듯 하는 건 하나마나”라면서 “급식소가 있어야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고, 고양이들의 돌보는 사람들과 함께 지자체 TNR 사업을 해야 사업도 더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