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오르막길] ① 절반만 맞은 홍준표의 공공의료 상식

뉴스민 10주년 기획취재 [신호, 등] 9. 공공의료
“우리나라 병원은 전부 공공의료”···비영리=공공의료 도식화의 오류
“공공병원이라고 해서 싸지 않다”···소유 주체에 따라 개인 부담률 낮아
“최상위 등급 종합병원 병상수 부산, 울산의 2배”···종합병원 적으면 한계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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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약 10%다. 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 전체 병상 중 공공병상 비율 말이다. 정확히는 9.7%(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이 71.6%라는 걸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수치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공공의료기관의 눈부신 역할이 알려지면서 공공의료 확충 요구가 터져 나왔고, 정부도 여기에 호응해 계획을 내놨다. 대구시도 제2대구의료원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화되지 않은 ‘계획’은 그저 문서 쪼가리에 불과하고, 제2대구의료원 건립은 새로운 시장의 등장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올라야 할 곳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그 오르막길은 가파르기가 에베레스트 저리가라다. 그럼에도 그 길을 올라야 하는 이유를 <뉴스민>이 살펴본다.

“지금 공공의료라고 자꾸 주장하시는데, 우리나라 병원은 전부 공공의료입니다. 우리나라는 영리병원이 없어요. 법률상으로 영리병원이 금지돼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가 TV토론회에서 한 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본질을 건드리는 말이다. 홍 당선자 입장에선 그의 표현대로 ‘공공의료’를 확충하지 않아도 될 근거로 ‘우리나라는 전부 공공의료’라고 말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중요성을 강조하는 게 더는 ‘사치’가 아닌 ‘공공의료’를 홍 당선자의 토론회 발언을 통해 되돌아보는 건 ‘공공의료’의 가치와 확충 필요성이 주장되는 이유를 되새길 기회일 수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대구시장 후보자 토론회에서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는 “우리나라 모든 병원 공공병원”이라며 “제2대구의료원은 검토 후 결정한다”고 말했다.

①“우리나라 병원은 전부 공공의료”
비영리=공공의료 도식화의 오류
의료법은 병원 설립 주체만 명시
공공의료는 공공보건의료법 봐야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 의료서비스 제공’ 확대

우선, “우리나라 병원은 전부 공공의료”, “법률상 영리병원이 금지되어 있다”는 말부터 살펴보면서 공공의료의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홍 당선자의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홍 당선자 주장은 의료법에 근거한다. 의료법 33조는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주체에 영리법인은 제외된다. 정확하게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의료인 개인 그리고 비영리법인이 아니면 병원을 개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비영리는 수익을 얻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통의 영리 기업처럼 이익을 외부로 유출해 나갈 수 없다는 의미다. “주식회사 형태로 이익 분배가 허용이 되지 않는다”는 홍 당선자의 말이 좀 더 사실에 부합하는 설명인 셈이다.

때문에 홍 당선자의 주장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우리나라 병원은 전부 비영리 의료’라고 하거나 ‘법률상 비영리 병원으로 운영된다’고 해야 했다. 하지만 홍 당선자는 영리병원이 아니면 공공의료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의료체계를 정리했다.

공공의료는 단순히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정부의 공공의료 사업의 법적 배경이 되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2000년에 제정됐다. 이 법은 ‘공공보건의료’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한다.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가 공공의료 강화를 말할 때는 통상 이 법적 개념으로 말한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공공보건의료의 세부적인 사업으로 보건의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분야나 보건의료 보장 취약 계층에 대한 의료 공급 사업, 감염병 및 비감염병의 예방·관리를 포함한 국가, 지자체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재난 관리 등이 제시된다고 설명하면 좀 더 구체적인 개념이 잡힌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대한 의료 공급과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대응이 공공의료 개념으로 설명되지만, 학계 전문가들은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공공의료를 정의한다. 단순히 영리를 추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개념을 넘어서서 ‘의료’ 또는 ‘의료인’의 역할까지 아우르는 개념인 셈이다.

② “공공병원이라고 해서 싸지 않다”
소유 주체에 따라 개인 부담률 낮아
대구의료원, 개인 부담률 가장 낮아

기본 개념 정리에서부터 오류가 생기면서 홍 당선자의 공공의료에 대한 인식은 허점을 드러낸다. 그는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장 후보로부터 제2대구의료원 건립에 대한 의견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고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드는 시립병원, 도립병원이 일반병원보다 수가가 싸다고 보는데(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영리 추구를 중심에 두고 ‘공공의료’를 잘못 인식하다 보니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된 모습이다.

그런데 시·도립 병원의 수가가 일반병원보다 싸지 않다는 홍 당선자의 주장도 절반만 맞는 주장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로 운영되는 의료체계상 모든 병원이 의료 행위별로 법으로 정해진 수가를 받는다는 설명은 맞는 말이다. 홍 당선자는 “의료 수가도 법정”이라며 “공공병원이라고 해서 싸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을 이용하는 시민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수가는 정해져 있지만,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 비용은 차이가 있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공개한 전국 233개 종합병원 병원비 건강보험 부담 실태를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대구·경북의 종합병원 중 대구의료원의 보장률이 가장 높았다. 바꿔 이야기하면 개인 부담 의료비용이 가장 낮다는 의미다. (관련기사=대구·경북 종합병원 건강보험 보장률, 공공병원이 더 높아(‘21.7.29))

경실련 자료는 대구·경북에 위치한 종합병원 37개(상급 5개) 중 26개(상급 5개)를 대상으로 했는데, 규모보다 병원 소유 주체에 따라 환자 부담률에서 차이를 보였다. 소유 주체가 공공기관일수록 건강보험 보장률이 높고 환자 부담률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구의료원은 건강보험 보장률이 71.7%로 26개 병원 중 가장 높았다. 26개 중 대구의료원을 포함해 보장률이 높은 상위 5개 병원 중 4개 병원이 공공 소유 병원이다.

반면 가장 낮은 병원은 47.5%인 칠곡가톨릭병원이고, 하위 5개 병원은 모두 민간 병원으로 확인됐다. 하위 5개 병원 평균 보장률은 56.4%에 그쳤다. 상위 5개 병원 평균은 70%로 하위 5개 병원의 환자 부담률이 상위 5개 병원보다 1.5배 가량 더 큰 셈이다. 따라서 홍 당선자가 병원이 얻는 수익의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라면 일부 옳은 말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병원을 이용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틀린 주장이다.

③ “최상위 등급 종합병원 병상수 부산, 울산의 2배”
상급종합병원 병상수 많아도 종합병원 적으면 한계
300병상 종합병원 공급 병상수가 의료질 나눠
대구 동북권, 경북대병원 2개 있지만 병상 부족

▲코로나19 유행이 대구에서 시작되던 2020년 2월, 경북대학교 응급실이 폐쇄된 모습.

모든 병원이 공공병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인지 홍 당선자는 대구 의료 대응력이 나쁘지 않다는 근거를 찾아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병상수, 그중에서도 전국적으로도 별로 없는 상급종합병원 병상수로 귀결됐다. 홍 당선자는 “대구 같은 경우에는 지금 최상위 등급의 종합병원 병상수가 부산, 울산의 거의 2배에 가깝다”며 “만약 의료 수요가 그만큼 많아진다면 제2의료원도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시정을 인수를 하고 난 뒤에 전부 검토를 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홍 당선자의 ‘말 자체’는 사실이다. ‘최상위 등급의 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은 전국적으로도 그 수가 많지 않다.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6월 기준 전국 상급종합병원 44개 중 14개가 서울에 있고, 경기도와 대구가 그 뒤를 잇는데 각 5개씩이다. 1등 서울의 ⅓ 수준이다. 홍 당선자 논리대로면 대구나 경기가 서울의 ⅓ 수준 의료 대응력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홍 당선자처럼 단순히 상급종합병원이 많으냐의 여부로 의료 대응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급종합병원의 병상이 종합병원 병상보다 많은 것이 기형적이라고 우려한다. 적정한 수준의 병원들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더 의미있는 대응력으로 보는 것이다. 대구는 상급종합병원은 많지만 종합병원이 적고, 이러한 구조가 다양한 의료적 문제를 낳는거로 분석된다

대구의 경우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 5곳의 병상이 4,324개로 종합병원 12곳의 병상 3,556개보다 많다. 그래서 더 좋은 의료 서비스가 대구 시민들에게 제공되고 있을까? 답은 ‘아니’이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책임의료기관 지정 및 육성 전략 연구보고서’를 보면 대구는 진료권을 동북권과 서남권으로 나눠 살펴볼 때, 동북권은 병상수가 부족하고 입원, 응급, 심혈관 사망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남권은 병상수는 충분하지만 입원 사망비가 매우 열악하고 응급사망비도 높았다. (관련기사=[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② 진단, 대구 의료체계의 빈틈(‘21.6.25))

적정한 수준의 종합병원 부족이 이러한 결과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종합병원이 적다보니 종합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동하고 그로인해 상급종합병원은 과밀화되면서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응급의료체계에 과부하가 걸리면 1분 1초를 다투는 응급의료의 질에도 적잖은 영향을 준다. 보건복지부 연구에서 동북, 서남 가리지 않고 응급사망비가 높았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300병상 이상 규모의 종합병원이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의료대응력의 질을 높인다고 본다. 202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병상 비중이 50% 이상인 OECD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30% 수준이다. 대구는 지난해 기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220개가 보유한 병상 중 25.1%만 300병상 이상 병원 보유 병상이다. 이마저도 종합병원급으로 재분류하면 16.5%까지 떨어진다. 서울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급 보유 병상이 44%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우리나라는 양적 측면에선 병상이 과잉이지만, 300병상 미만 중소형 병·의원 공급이 많아 공급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300병상 미만 급성기 병상은 공급을 하더라도 입원이나 재입원을 증가시키고 진료권 내 자체충족률, 사망률을 개선하는 효과가 적은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반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공급이 많을수록 자체충족률이 개선되고 입원환자의 사망과 재입원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관련기사=[코로나 이후, 대구 공공의료] ③ 처방, 제2대구의료원이 나아갈 길은?(‘21.7.6))

대구시가 제2대구의료원 건립을 동북권을 중심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난 2월 완료된 대구시의 제2대구의료원 건립 타당성 연구 용역에 따르면 동북권은 2037년까지 꾸준하게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병상 공급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동북권에는 경북대병원과 칠곡경북대병원이 있고, 400병상 규모로 동구 혁신도시에 건립 추진 중인 종합병원을 고려한 결과다.

“이 문제는 시정을 인수하고 난 뒤에 정밀히 다시 한 번 검토를 하겠다”

홍 당선자가 토론회에서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복한 말이다. 말처럼 정말 ‘정밀히’ 검토한다면, 대구엔 제2대구의료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