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벼랑 끝] ② “사드 좋다는 사람은 없지만···”

뉴스민 10주년 기획취재 [신호, 등] 10. 사드
성주읍 주민들에게 사드란
집회 나가려했으나 압박 느낀 상인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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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2년 4월 26일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된 지 5년이 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결정된 사드 배치는 부지를 정하기도 전에 한국 땅에 넘어왔다. 황교안 권한대행 시절 소성리에 배치됐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발사대를 추가로 배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했고, 사드 정식 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성리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사드 추가 배치’ 한 줄 공약을 들으며, 벼랑 끝에 선 듯 까마득한 심정을 토로한다. 주민 사정에 대한 이해나 공감 없이 발표된 공약과 사드 정식 배치는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① 소성리 주민 백광순 할머니의 하루
② “사드 좋다는 사람 없지만···”

성주군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성주로를 따라 현수막이 빼곡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성주군 성산포대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거론되면서, 성주 전역이 반발했다.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군청 마당에 모였다. 초기, 성주군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던 주민들은 ‘한반도 사드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광장에서 드러나는 주민들의 의지는 사드 반대 투쟁 초기 지역 기초·광역의원과 관변단체 위주로 꾸려진 대책위원회를 추동하는 힘이 됐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제3부지’가 정부와 언론에서 거론됐고, 주민들의 의견도 분화했다.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로 사드 부지를 이전키로 하자 군청 광장의 주민들도 입장이 나뉘기 시작했다. 읍내에서 사드를 몰아냈으니 투쟁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었다. 투쟁을 계속하고자 하는 주민들은 성주군청의 단전·단수 등 적대적 반응도 무릅쓰고 광장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성주읍에서 촛불집회가 시작된 후 근 6년, 현재 사드 반대 목소리는 사드가 배치된 소성리를 중심으로 나온다. 사태 초기 성주군청에서 촛불을 들었던 주민들은 이제 완전히 사드를 잊은 것일까.

지난 5월 27일 <뉴스민>은 성주읍 성주전통시장을 찾아, 사드 반대 투쟁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지방선거가 한창일 무렵, 성주로는 출마자들의 선거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상가마다 붙었던 사드 반대 스티커는 이제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다. 성주 사드 배치는 주민들에게 아픈 기억으로도, 억울한 기억으로도 남아있고, 지금도 지역 위험을 더하는 불안 요소로 여기는 주민도 있다.

▲지난 5월 27일 <뉴스민>은 성주읍 성주전통시장을 찾아, 사드 반대 투쟁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장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러 나온 성주읍 주민 지석선(88) 씨는 퇴역 군인의 아내로 다른 지역에 살다가 고향 성주로 귀향했다. 지 씨는 사드 반대 집회에 참석한 적도 없고 사드가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을 일단 신뢰하는 편이다. 하지만 사드가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 초전면 소성리 주민들의 사정도 안타깝게 여긴다.

“당시에도 여기에 오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죠. 싫죠. 그런데 그건 개인적인 감정이고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필요한 거 같아요. 우리 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젊은 사람들처럼 자세히는 모르거든. 그래도 성산에도, 초전에도 말하자면 반대입니다. 군청 앞에서 집회할 때는 자식들이 걱정돼서 못 나갔어요. 초전 사람도 생명이잖아요. 초전 사람이나 저나 똑같아요.” (지석선 씨)

장을 보러 온 초전면 주민 김 모(남, 81) 씨는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김 씨는 사드가 북핵 위협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사드 배치 자체는 지역 불안을 높이는 시설이라며 걱정했다. 사드 배치 사태 초기 촛불집회에도 참여했던 그는 초전면 사드 배치도 부정적이지만, 사태가 길어지면서 생활 문제를 고려해야 했다고 한다.

“지금 사드 기지가 바로 우리 마을 근처예요. 사실상 사드가 이북을 봐서는 있기는 있어야 하고. 이북은 핵을 만든다는데, 우린 핵도 없으니까. 그런데 전쟁이 난다고 하면 여기를 집중 공격할 거예요. 중국도 여기를 견제할 거란 말이야. 우리야 이제 80이 넘고 다 살았지만, 후손들은 문제죠.

성산포대가 성주의 제일 요지잖아요. 여기에 배치한다니 바닥에서 들고 일어났어요. 초전면에 오는 거도 위험하죠. 우리가 반대해도 결국 밤에 갖다 놔버리는데. 민간인이 힘을 쓸 수 있나요. 또 먹고 살아야 하니까···” (김 씨)

▲성주읍 주민 지석선(88) 씨는 “초전 사람도 생명이잖아요. 초전 사람이나 저나 똑같아요”라고 했다.
▲초전면 주민 김 모(81) 씨는 “초전면에 오는 거도 위험하죠. 우리가 반대해도 결국 밤에 갖다 놔버리는데. 민간인이 힘을 쓸 수 있나요. 또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사드 반대 집회에 참여했던 박범수(62, 성주읍) 씨도 사드가 지역 불안을 높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한다. 특히 성주군이 불안을 감수하게 된 상황에서 지역에 실효성 있는 보상책도 마련하지 않은 점이 문제라고도 설명한다.

“사드가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드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이라도 나면 어디를 먼저 공격하겠나. 지역에 가져다 놓았으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지하철도 놓겠다고 하고 말이 많았는데 뭐 하나 한 게 없다. 사드가 성주군에 있어서 사람들 인식도 좋을 게 없다. 아무도 좋아할 사람이 없다.” (박범수 씨)

▲사드 사태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한 백철현 전 성주군의원은 이후 두 차례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섰지만 모두 낙선했다.

사드 반대 목소리가 잦아든 거리는 선거를 앞둔 출마자와 선거운동원의 목소리가 채웠다. 백철현 무소속 성주군의원 후보는 흰 셔츠에 연두색 조끼를 입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초기 성주사드배치철회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사드 배치 방침에 반발해 당시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다. 백철현 후보를 비롯한 당시 현역 군의원 4명이 탈당하자 주민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백 후보는 이후 복당하지 못하고, 이번 선거를 포함 두 차례 무소속 군의원에 재도전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백 후보 맞은편으로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 운동을 돕는 배미영(성주읍, 43) 씨가 파란 모자를 쓰고 지나갔다. 배 씨는 성주읍에서 사드 반대 목소리를 이어가다, 코로나19 유행쯤 집회를 중단했다고 한다. 배 씨는 윤석열 정부 들어 사드가 정식 배치를 향해 가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금 사드가 크게 이슈가 되는 상황은 아니라서 사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관심 있는 사람은 사드 추가 배치를 이야기하는 대통령이 오면서 지금 임시 배치 중인 사드를 정식 배치할까 봐 불안해하죠. 환경영향평가도 대충 하고 넘어갈 거 같고, 공사 차량도 계속 들어가는 것도 안타깝죠. 소성리에서도 주민들이 버티고는 계시지만 어르신들 힘만으로 쉽지 않고. 지금은 또 북한이 도발도 하고 있어서 국제적으로도 여의찮은 거 같아요. 사드 배치 때문에 지역에는 상처가 있어요. 함께 했던 것에는 좋은 기억이 있지만, 그 이후로 마음이 갈라졌으니까요. 입장이 다른 사람끼리 배제하는 경우도 있고. 죄책감이 있는 주민들도 있고. 이런 상황도 해소돼야 해요.” (배미영 씨)

▲성주읍 주민 박범수(62) 씨는 “사드가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드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성주읍 주민 배미영(43) 씨는 “함께 했던 것에는 좋은 기억이 있지만, 그 이후로 마음이 갈라졌으니까요. 입장이 다른 사람끼리 배제하는 경우도 있고. 죄책감이 있는 주민들도 있고. 이런 상황도 해소돼야 해요”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성주군과 관계 때문에···
“사드 반대 하고 싶었지만···사업 못할까 봐 포기”

적극적으로 사드 반대 투쟁에 나서고 싶었으나, 성주군청과 관계 때문에 발길을 끊은 상인도 있다. 성주읍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사드 집회 초기 집회에 필요한 물품을 기증하고, 투쟁위원회에 투쟁기금도 제공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당비를 내고 있었으나, 성주에서 새누리당 탈당 운동이 벌어질 때 이에 동참해 당비 납부를 끊었다.

그는 “집회에 열심히 나가고 역할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군청 측에서 집회를 그만두라고 했다. 여러 차례 듣다 보니 사업에 문제가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일단 사업을 하고 내가 먹고 살아야 다음이 있으니까 못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때 모였던 사람들 사실 다 한 마음으로 사드 반대했어요. 그런데 초전으로 보낸다고 하면 누가 박수치고 좋아하겠어요. 지금 이렇게 된 건 지역 분위기 때문이죠. 군청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면 위축돼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군의원은 공천받아야 하고. 신문사나 사회단체도 약해요. 당시에 신부님이 목소리를 냈는데, 그런 분들도 다른 곳으로 발령받으면 끝나잖아요. 여기는 새장이에요. 맞다, 틀리다 말하기 어려워요. 집회 가고 싶어도 못 나가니 환장하죠.” (익명의 시장 상인)

시간이 오래 흐른 만큼 이제 그에겐 당시 상황이 상처보다는 함께 목소리를 높였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사드 투쟁이 군청과 관계 속에서 축소된 점은 변화해야 할 성주의 모습으로 여겼다.

▲2016년 8월 27일 군청 앞에서 인간 띠를 만들고 성산포대 입구에서부터 내려오는 주민들을 기다리는 주민들.

“지금 소성리 상황도 안타깝죠. 지금도 가보고 싶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죠. 소성리에 계신 분들은 대단한 거 같아요. 존경스럽고, 어떻게 보면 좀 미련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세상이 변하는 게 아닌데. 제가 되돌아보고 싶은 건 지역 분위기죠. 경찰 출신 군수가 지역을 장악하고 거기에 토를 다는 사람이 없고. 아직도 그 뿌리가 남아 있어요. (당시 제3부지로) 얼렁뚱땅 넘어간 것도 군수 눈치 본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당시에 군수가 (제3부지도) 강력하게 반대했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상황이 지금이랑은 달랐을 거예요” (익명의 시장 상인)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