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다른 하나가 되지 못한, ‘마녀 Part2:The Other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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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칠갑을 한 소녀(신시아)가 건물 밖으로 나온다. 방황 끝에 얻어 탄 차에는 경희(박은빈)를 괴롭히는 깡패들이 우글거린다. 소녀는 초능력으로 깡패들을 처단하고 경희를 따라나선다. 경희는 다소 복잡한 사연이 있는 여성이다. 그는 외딴 농장에서 동생 대길(성유빈)과 단둘이 산다. 농장은 조직폭력배였던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다. 동생은 아버지가 싫다고 집을 떠난 누나가 아버지 사망 이후 돌아온 것이 불만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이는 아버지의 부하였던 용두(진구)로 추정된다. 용두는 리조트 개발부지로 남매의 농장을 노리고 경희를 괴롭힌다.

소녀는 동물병원 수의사 변박(차순배)에 의해 치료를 받은 뒤 경희의 농장에서 지내면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행복은 소녀와 경희를 노리는 용두 패거리로 인해 깨진다. 정체불명의 세력도 소녀를 쫓아온다. 소녀가 빠져나온 비밀연구소 아크의 책임자 장(이종석), 본사 요원 조현(서은수)은 10년 전 신세 진 백 총괄(조민수)의 지시로 부하 톰(저스틴 하비)과 농장을 찾는다. 그리고 상해에서 온 토우 4인방도 경희의 농장으로 모인다.

<마녀 Part2. The Other One>는 2018년 개봉한 <마녀>의 속편이다. 둘 다 서사는 비슷하다. 1편 역시 연구소에서 도망친 소녀 자윤(김다미)과 그의 가족, 소녀를 노리는 연구소 세력의 싸움을 그렸다. 차이는 규모다. 1편은 국내로 한정됐고 속편에서는 세계관이 전 세계로 확장됐다. 하지만 설정은 진부하고 식상하다.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의 초인을 실험체로 삼는 비밀조직과 초인이 자신을 돌봐 준 정의감을 지닌 보호자를 구하는 서사는 기시감이 든다. 실험실에서 살던 주인공이 속세의 먹거리에 집착하고 디지털 문명에 신기해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플롯 역시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물 설정의 붕괴다. 원시상태에 가까운 소녀는 위험한 존재가 됐다가 어떤 때는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소녀의 모습이 작위적이고 억지스럽다. 경희는 줄곧 모성애만 발휘하고 대길은 철부지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 조현과 톰이 토우 4인방으로부터 경희와 대길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점은 초능력을 가진 소녀를 대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온몸을 피로 적신 소녀가 인체를 으깨버리는 염력을 쓰는데 두려워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이가 별로 없다. 신기해하는데 그친다.

액션이 특별하지도 않다. 1편은 타격 액션이 중심이었던 반면에 2편은 염력이 화려하게 연출된다. 그런데 염력은 볼거리 자체가 익숙하다. 여러 영화에서 꾸준히 다뤄온 탓이다. 아무래도 재방송이라는 느낌이 남을 수밖에 없다. CG가 잘 만들어진 편도 아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초능력 구현 장면 속에서 이미 익숙해져버린 스펙터클의 도입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장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마녀 시리즈>를 한국형 여성 슈퍼히어로라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할리우드를 흉내 낸 스펙터클이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는다. 한국의 기술력이 할리우드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히어로물이 나온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외계 괴물이 등장하고 상상 속 장면이 실제로 연출하던 때라면 뜻깊은 시도였을 것이다. 당시 그 영화들은 매순간 불가능에 도전했다.

하지만 특수효과가 너무 익숙해져 일상이 된 지금에서 CG를 선보일 작정으로 할리우드에서 선점하고 오랫동안 장악해온 장르에 도전하는 건 뒤쫓는 의미밖에 없다. 뛰어난 CG 기술이 당연해진 지금, 차별화는 특수효과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와 참신한 설정, 촘촘한 개연성에서 출발한다. 영화계의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신기한 기술을 선보여 관객에게 어필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건 한국 영화계에서 희망적인 일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