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재신청자 ‘취업 제한’ 위법성 따지는 재판 시작돼

난민 재신청자 항소심 시작···"체류 제한으로 생존권 제한"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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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재신청자에게는 사실상 일률적으로 체류 자격과 취업을 제한하는 정책의 위헌성과 위법성을 따지는 소송이 시작됐다.

8일, 대구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태현)는 기니 출신 꼬라타 보 사란 씨 등 난민재신청자 2명이 제기한 체류자격 외활동불허결정취소 소송 항소심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원고들은 난민 신청을 했다가 인정받지 못한 뒤 재신청한 이들이다. 이들은 재신청 심사 기간 동안 생계유지를 위해 취업활동 허가를 신청했지만, 법무부가 불허한 것이 위법이라며 지난해 9월 소송을 제기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이들은 1심 패소 후 지난 1월, 난민재신청자 등의 취업 활동을 사실상 불허하는 난민법 제40조 2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이들은 난민재신청자를 포함해 유학생 등 다른 체류자격으로 체류하다가 난민 신청을 하는 등 일부 사례에 대해, 법무부가 사실상 ‘소송 남용자’로 간주하는 체류 제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2022년 4월 법무부가 공개한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 지침’에 따르면, 난민 인정 관련 소송 제기자가 ‘사정 변경 없는 재신청자’ 유형에 해당하면 소송 남용자로 간주하고, 난민재신청자에 대해 소송 절차 종료 시까지 30일 이내에서만 출국 기한을 유예하는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한다.

법무부가 난민재신청자 등에 대해 일률적으로 ‘체류 연장 목적의 남용적 난민 신청자’라고 여겨 체류 자격을 연장하지 않은 결과, 난민재신청자들이 정상적인 취업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각종 사회보장 제도에서 소외되는 인권 침해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준비서면을 통해 체류자격을 갖추고 체류기간이 남은 외국인에게 체류자격 외 활동을 허가할 수 있기 때문에, 체류기간 연장이 불허된 외국인은 체류자격 외 활동을 신청할 자격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추가 변론 기일 없이 오는 8월 26일 선고하기로 했다. 재판에 앞서 이날 오후 2시 난민인권네트워크, 대구경북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 연대회의는 대구고등법원 앞에서 난민 재신청자 취업허가 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8일 오후 2시 대구고등법원 앞에서 난민재신청자 취업허가 소송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니 출신 사란 씨는 취업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각종 사회보험에서도 제외돼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사란 씨는 “기니에서 어린 나이에 강제 결혼을 시키려 해서 거부했는데 살해위협을 받고 난민신청했다”고 소개했다.

사란 씨는 “한국에서 아이 3명을 낳아서 돌아갈 수도 없다. 난민 인정받지 못해 (소송 기간 동안) 제대로 일도 못 하고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다. 아이가 아플 때 입원비를 물어봤더니 200만 원이 든다고 해서 입원도 못 시켰다”며 “한국에 있는 동안은 생계를 위해 일하고 병원에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을 대리하는 홍석표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난민법은 난민재신청자의 취업허가에 대해 제한하는 근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난민심사기간 스스로 생계를 꾸리는 것이 가능하도록 취업허가 제한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난민신청자의 취업허가 신청에 대해 출입국이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취업 기회를 제한해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라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회견문을 통해 “난민재신청자라는 이유만으로 체류를 제한하는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난민신청자가 짊어진다”며 “외국인등록증을 회수하고 출국 기한을 유예하는 지침 때문에 난민재신청자는 사실상 모든 권한이 박탈된 상태로 없는 사람들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언제든 출국 명령이 떨어지거나 구금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미등록 체류이지만 불법 체류는 아닌 상태로 2~3달마다 출국 기한을 연장하면서 심사 기간을 대기해야 한다”며 “난민신청자에게 신분증을 발급하고 기본적 생존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난민협약과 국제규범도 위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