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저주 전문’ 작가 정보라의 다음 저주는 무엇일까?

애도하는 작가 정보라 문학의 핵심, '위로'
포항에 정착한 작가가 바라보는 '지역'
"데모하고 싶게 만드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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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는 노조 조끼를 입고 강단에 올랐다. 지난 5일 경북대에서 ‘기술과 자유’라는 주제로 강의에 나선 정 작가는 강의 시간 내내 인공지능 기술 발달 전망과 윤리적 문제, 그리고 문학 소재로 등장한 인공지능 문제에 대해 말했다. 강의 말미, 소설가가 과학기술 윤리의 세밀한 쟁점에 대해 강연하는 것이 의아해 물었다. “강의 내용도, 작가님 작품도 세계관이 대체로 비관적인데요. 그렇다면 문학은 어떤 긍정적인 걸 할 수 있나요?”

정 작가는 즉답했다. “문학은 인간사회에 현실적인 영향을 1도 미칠 수 없어요. 그건 데모를 해야 하죠. 역사적으로 SF를 포함한 대중소설은···(생략).”

▲정보라 작가가 지난 5일 경북대학교에서 강연을 열었다.

문학의 영향력을 과장하지 않는 말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가에게서 나온 게 새삼스럽다. 문학에 대해 그럴듯한 듣기 좋은 말, 혹은 알리바이 뒤에 숨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 작가는 왜, 무엇을 위해 쓰는 것인지 더 듣고 싶었다. 10월, 정 작가가 정착한 경북 포항을 찾아 못 다한 질문을 했다.

서늘한 해풍이 몰아치는 한 카페에서 정 작가는 글을 쓰는 동기를 좀 더 깊이 설명했다. 이유인즉, ‘억압하는 자에 대한 저주’, 그리고 ‘투쟁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위안’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저서 <저주토끼>는 물론, <죽은 자의 꿈>, <붉은 칼>, <그녀를 만나다>에서 일관되게 드러났던 차분한 분노, 덤덤한 슬픔의 정서가 각각 어디를 향하는지도 알 듯했다.

“일단은 제가 제 성질 못 이겨서 써요. 문학이 현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 많이 받는데요. 정소연 작가님 특강에 참여했는데 어떤 독자가 정 작가님이 쓴 소설을 읽고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문학이 현실의 변화는 줄 수 없는데, 생존하고 투쟁하는 분들한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보라 작가의 작품은 현대적 소재로 구성한 전래동화처럼 다가온다. 전래동화가 그러하듯, 작품의 세계관은 대체로 명료하고 피아구분도 명확하다. 아(我)로 구분되는 등장인물은 <저주토끼>에서 ‘저주 토끼’ 편의 할아버지 친구,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편의 공주를 꼽을 수 있고, <그녀를 만나다>에서는 ‘그녀를 만나다’에 등장하는 故 변희수 하사와 그녀의 팬클럽 회원들을 꼽을 수 있겠다. 반면 피(彼)로 구분할 수 있는 인물들은 ‘저주 토끼’ 편의 사장,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편의 왕자, ‘그녀를 만나다’ 편에 등장하는 여러 혐오 세력이다.

피아구분이 비교적 모호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위로의 대상이 되는, 작가가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인물은 명료하다. ‘몸하다’ 편에 나오는 화자는 여성의 몸으로 이해할 수 없고 나쁜 세상을 마주하며, ‘재회’ 편에 나오는 화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후유증에서 허우적대는 폴란드인을 위로한다. 이 작품에서 피(彼)는 여성의 몸을 생산도구로 공유하는 사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뒤흔든 전쟁이라는 폭력으로 여길 수 있겠다.

정 작가는 저주와 위로라는 동기를 얻은 계기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정 작가가 강사로 일하던 시기,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애도할 권리’와 관련한 발표를 듣고 나서 정 작가는 앞으로의 인생이 선명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도 상실, 트라우마, 애도와 같은 주제에 몰두했는데, 학회에서 답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대구 중구 대신동 서점 ‘책방이층’에서 정보라 작가

“저는 그 학회에 세월호 발표를 하러 갔는데요. 거기에 한 독일인 교수님이 이승만 시대 이후 한국의 국가 폭력 희생자들에 대해 발표했어요. 희생자가 원하는 것 중 제일 문제가 되는 게 ‘애도할 권리’라고 했어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질 때까지 애도할 권리가 오랫동안 짓밟힌다는 이야기였어요. 보도연맹 사건이 그렇고 세월호가 그렇잖아요?···그 이후 이스라엘에서 온 다른 교수님과 세월호 논문을 썼는데, 애도에 대한 것이었어요. 애도는 저마다 다른 개인적인 행위인데, 어떤 사건에 대해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애도하게 되면 다른 차원이 되거든요. 그때는 사회현상으로서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 됩니다.”

정보라 작가가 마주한 포항
“데모하고 싶게 만드는 도시”
“가장 열받는 거요? 포스코죠”

특별한 계획 없이 정 작가는 물 흐르듯 흘러 포항으로 왔다. 남편인 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임 전 위원장의 고향인 포항으로 함께 와 살게 된 것이다. 그즈음 정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포항, 포항살이와 관련한 인상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문어’, ‘대게’, ‘상어’ 수산물 3부작이다.

포항은 거리에 빼곡히 걸린 현수막을 통해 정 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포항에는 거무튀튀한 것만 남기고 삐까번쩍한 건 서울에 가져가냐” 포스코 지주사 서울 설립에 반발하는 지역 단체가 내건 현수막이다. 해변 어귀에 걸린 포스코 공장, 해 지면 불 밝는 포스코 조명등, 어딜 가도 보이는 포스코는 포항의 배경이 됐고, 여기에 죽도시장, 어물전, 소나무 숲과 같은 동네 풍경이 불협화음처럼 등장하자 정 작가는 SF문학에서나 나올법한 디스토피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류의 정취마저 느꼈다.

“지주사 이전 문제로 포항 전체가 현수막으로 뒤덮였거든요. 성폭력 사건, 부당노동행위에 비판 목소리를 내는 금속노조와 국민의힘이나 관변단체가 지주사 이전 반대로 같은 목소리를 냈죠. 그런데 그 현수막들이 태풍 피해를 보니까 싹 다 ‘포스코 힘내세요’로 바뀌더라고요. 그걸 보니 또 마음이 안 좋은 거예요. 수많은 협력업체가 의존하고 있잖아요. 포스코가 포항 애증의 중심인 거예요. 이토록 애증의 중심이 명확한 도시는 못 봤어요.”

포스코, 또는 지역 살이에서 작가가 받은 인상이 앞으로 작품에 반영될지 궁금했다. 하지만 ‘애도하는 작가’ 정 작가는 진행 중인 문제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포항은 정 작가에게 오히려 “데모 하고 싶은” 도시다. 지역에서 마주하는 사람과 사건들이 만연한 불평등, 차별을 좀더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포항 한 카페에서 만난 정보라 작가

“어떤 사건이 있으면 저는 그 사건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씁니다. 예의의 문제거든요. 오히려 포항은 데모하고 싶게 만드는 도시예요. 데모를 하면 알 수 있어요. 그곳에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데모하는 곳에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알 수 있어요. 그들의 삶과 그들이 느낀 불합리한 일들 말이에요. 예를 들어 아사히글라스 부당해고 노동자의 이야기, 성주군 소성리 임순분 부녀회장의 이야기. 그분들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분들과 가까이 살아서 다행이라고 느껴요. 차별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분들이죠. 멋있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역 살이로 보고 들은 것들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줄 것 같다는 말로 정 작가는 말을 마쳤다. 벌써부터 그 작품이 기다려진다. 정보라의 다음 저주는 무엇일까.

아래는 정보라 작가와 나눈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Q 작품에 SF 장르적 요소도 있는데, 그보다는 우화적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지더라.

나는 저주 전문 작가라 그렇다. 그런데 환상문학은 서가가 따로 없다. SF로 분류하는 걸 출판사가 더 선호한다. 내가 SF를 엄청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니고, 어느 정도 기술과학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SF라고 우길 수 있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보면 내 글은 SF가 아닐 거다. SF로 굳이 분류하자면 소프트 SF라고 할 수 있겠다.

Q 지난번에 ‘문학이 비관적 세상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드렸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하셨다.

일단 글은 내 성질을 못 이겨서 쓰는 거다. 문학이 세상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위안’은 될 수 있다. 얼마 전에 정소연 작가님과 같이 대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 작가 말씀이 정 작가가 했던 한 특강에 어떤 성소수자가 정 작가 작품을 보고 살아갈 결심을 했다고 하더라. 문학은 생존하려 하고 투쟁하는 분들에게 위안은 될 수 있다.

▲대구 중구 대신동 서점 ‘책방이층’에서 정보라 작가

Q 그 ‘생존하려고 투쟁하는’ 분들에 대한 특별히 관심 갖고 쓰게 된 계기가 있나.

개인적인 동기라면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애도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 후 세월호 참사, 쌍용자동차 투쟁과 같은 여러 사건들이 있었는데, 박사 논문을 쓸 때 앞서 말한 사건에서 느낀 것을 언어로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참고 자료를 찾다가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라는 스페인 철학자를 공부했는데, 그는 멈춰 서서 애도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라고 했다.

전쟁. 전쟁으로 인한 상실과 같은 어떤 비극인 상실이 일어났을때, 기본적으로 사회는 즉시 그 상실을 새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그리고 멈춰서서 애도하는 이들을 약한 사람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우나무노는 상실한 것을 충분히 애도하고 회복할 때까지 완전히 멈춰서서 슬퍼해야 한다고 했다. 상실, 부재, 트라우마에 관한 도미닉 라카프라(Dominick LaCapra)의 논문을 읽고서는 머리가 선명해졌다. 그는 상실, 부재, 트라우마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부재하는 것을 실재한다고 착각하면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상실했는지 명확하게 규정하고 트라우마를 인정해야 치유의 길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다정한 논문을 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제가 세월호 관련 발표를 하러 간 국제학술대회에서 한 독일인 교수님의 한국 국가 폭력 희생자에 대한 발표를 듣고서도 명확해 진 게 있다. 그 교수님은 보도연맹 사건부터 세월호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희생자에 대한 애도할 권리가 짓밟혀왔다고 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애도할 권리와 연결되는데, 진상 규명과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애도할 권리도 짓밟히는 거다. 이러한 깨달음들이 나의 소설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 내 분노를 언어로 설명해 주는 일이었다.

Q 포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남편과 사귈 때 포항에 종종 왔다. 다리 이름이 ‘우짤랑교’더라. 고속도로에는 ‘졸면 죽음’이라고 돼 있더라. 서울에는 ‘졸음이 오면 쉬세요. 10분마다 창문을 내리세요’ 이렇게 말이 많은데. 현수막에는 ‘포항에 거무튀튀한 것만 남기고 삐까번쩍한 건 서울에 가져가냐’라고 쓰여 있더라. 그 표현의 정서, 핵심을 관통하는 정서가 인상 깊었다. 밀양과 안동의 유학자들이 여기서 살아서 그런가?

여기 카페에 앉아서도 포스코가 보이는데, 밤에 보면 전등이나 전광판이 켜져서 엄청 화려해진다. 낮에는 디스토피아, 밤에는 23세기쯤 되는 거 같은데 바로 옆에 소나무 숲이 있고 그 옆으로 바다가 있고 조금 더 가면 노인들만 사는 주택가도 나온다. 평범한 동네의 모습과 첨단산업단지가 양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같이 보이는 도시라서 때로 비현실적인 느낌도 든다.

지주사 서울에 설립한다고 했을 때 포항이 현수막으로 뒤덮였는데, 인상이 안 남을 수가 없다. 태풍 피해를 입으니까 그 현수막이 싹 ‘포스코 힘내세요’라고 바뀌었다. 협력업체까지 관련된 문제니까, 구조조정이나 여타 피해를 우려한 거다. 좋아서 저런 현수막을 달았겠나. 포스코는 포항의 애증의 중심에 있다. 이렇게 애증의 중심이 명확한 곳이 또 없다. 국민의힘과 금속노조의 요구가 같을 때가 있도록 만드는 게 포스코다.

Q 지역에서 느낀 것들이 작품으로도 만들어질 거 같다.

살면서 새롭게 느낀 것들을 바로 쓰진 않는다. 사건이 끝나야 쓸 수 있다. 끝나지 않은 일에 대해 쓰는 건 무례한 일이다.

그보다 포항은 데모를 하고 싶게 만드는 도시다. 데모를 하면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 그리고 무엇이 어떤 것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저분들 피를 빨아먹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다. 원전, 소각시설, 발전소, 폐기물 매립장 같은 것들 말이다.

아사히글라스 복직 투쟁이나 소성리에 가 보면 또 다른 생각도 든다. 그분들 가까이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분들은 차별의 구조 자체를 흔드는 분들이다. 모든 차별과 불평등이 모여서 매립되는 곳이 지역이다. 거기서 이 구조를 뒤흔드는 분들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 옆에서 같이 구호를 외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