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예산 심사 앞둔 대구시···‘홍준표식 채무감축’ 이대로 괜찮나?

전문가들 “저금리 채무 비중 높은데 왜 상환 서두르나”
대구시 “디플레이션 대비하려면 지자체가 돈 풀 수 없어”
고물가‧고금리‧저성장 위기에선 재분배 기조 강화 필요
채무 감축 속도 빨라…‘어떤 사업 줄이는지’ 지켜봐야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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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긴축기조를 내세운 대구시 예산 편성 방향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9일 열린 대구시 기획조정실에 대한 대구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선 ‘빚 갚는데 매몰되다 보면 여러 사업 시기를 놓치거나, 나중이 되면 상상하지 못하는 돈이 들 수 있다’, ‘어떤 구조조정을 통할 것인가’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관련 기사=목표 40% 달성 그친 대구시 채무감축···“땅 팔아 빚 갚는 걸 누가 못하나?”(22.11.09.))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거시경제 지표가 저성장 기조를 가리킨다는 것을 강조하며 “채무 감축 충격이 서민 경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거나 “저금리 채무 비중이 높은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반면 김대철 대구시 재정점검단장은 “(채무감축이) 디플레이션(장기간 물가하락)에 대비해 대구시 경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저금리 채무 비중 높은데 왜 상환 서두르나”
대구시 “디플레이션 대비하려면 지자체가 돈 풀 수 없어”

대구시의 재정 혁신을 통한 예산 절감은 홍준표 대구시장 임기 초부터 공유재산 매각, 공공기관 통폐합, 각종 기금 및 특별회계 폐지 등의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세입 부문에서는 이례적으로 매년 2,000억 원 이상 발행하던 신규 지방채를 일절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대구시의 채무감축 기조는 지자체 채무를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지자체 채무에 대해 윤태섭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가 ‘한국정책연구’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 ‘지방자치단체 채무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지방재정분석 채무지표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채 발행행위 즉, 채무활동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긍정적 수단이 될 수 있는 반면, 채무 비중의 증가를 가져와 재정건전성을 악화시켜 재정위기로 이끄는 부정적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보고서는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의 건전성 범위 내에서 적절한 범위의 채무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대구시의 현재 채무감축 기조가 건전성 범위 내에서 적절한 채무 활동인지를 살피려면 우선 대구시의 채무현황부터 살필 필요는 있다. 행정사무감사를 위해 대구시가 의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대구시 지방채 2조 6,375억 원(도시철도공사 포함) 중 86.3%(2조 2,766억 원)는 저금리(1.5% 미만) 채무다. 변동금리여서 고금리 추세에 영향을 받는 지방채는 2,285억 원이다. 저금리 고정금리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지역 경제정책 전문가들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선 채무를 줄이더라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은 “지자체 채무감축은 큰 방향에서 경제적인 여력이 있을 때 단계별로 가야 한다. 임기 안에 천천히, 계획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서두르고 있는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며 “저금리 채무 비중이 높은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필요한 지출은 해야 한다. 전부 갚는다는 건 지금 경기 흐름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저금리 채무 중심이라면 지금 시기에서 굳이 채무 상환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긴축 재정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증세를 긴축이라 이야기하는 관점도 있고 재정의 총량을 줄이는 방향을 긴축이라 이야기하는 관점도 있다. 현재 대구시 방향은 후자이다. 총량을 줄이면서 빚을 갚겠다는 건, 말 그대로 정부에서 민간에 제공하던 소득을 줄이는 것인데 이는 경제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소득세 등을 상위 구간 중심으로 증세해서 이른바 부자 증세를 하고, 그 다음 재산 과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 회복이 필요하므로 산업 전환에 대한 재정 계획이 보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김대철 대구시 재정점검단장은 “물론 장기채 금리로 가면 (향후 이자율이) 낮아질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채무가 늘어날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 영향도 크기 때문에 앞으로 채무를 줄이는 쪽으로 가는 건 옳은 방향이다. 장기채 저금리로 채무가 남더라도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왼쪽부터 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

고물가‧고금리‧저성장 위기에선 재분배 기조 강화 필요
채무 감축 속도 빨라‧‧‧‘어떤 사업 줄이는지’ 지켜봐야

전문가들은 또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되고 레고랜드 사태 후폭풍이 지자체로 번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채무감축 충격이 서민 경제 부담으로 이어질 것도 우려했다.

나원준 교수는 “빚을 줄이는 것 자체보다 어떤 사업을 줄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세금이 낭비되는 부분의 누수를 막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축소되는 사업의 성격이 복지 등 서민경제와 직결된 부분이라면 우려스럽다”며 “지금 상황에선 증세를 통해 재분배 기조를 강화하는 게 경제 체질을 건전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한 핵심적인 방법은 소득 재분배”라고 설명했다.

임규채 팀장도 “복지 부문 감축을 최소화한다고 해도 (서민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행정은 겉으로 봐서 부실하고 쓸데없는 것 같아 보여도 그걸 정리하고 반듯하게, 정예멤버처럼 추리고 나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구멍이 생긴다”며 “대구시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80%가 서비스업으로, 경기 취약 업종 비중이 높다. 교통, 행복페이 같이 소비를 자극 시킬 수 있는 요소는 남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홍준표 시장이 경남도지사로 있을 때 펼친 채무제로 정책이 ‘잃어버린 4년’이라고 불리며 지역에 경기 침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나마 경남도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시군이 아래 있었지만, 대구시는 시장과 시청이 예산을 만지면 그 충격이 곧바로 시민들에게 간다”며 “이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취약한 부분부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김대철 단장은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 이럴 때 지자체가 돈을 푸는 확대 재정 정책을 펼치면 성장보단 물가를 더 자극시켜 서민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경제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디플레이션에 대비하고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구 미래 50년을 위해 경제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홍준표 시장의 채무 감축 기조가 정치적 목적에 의한 쇼라는 비판도 나온다. 나 교수는 “홍 시장이 내세운 1조 5,000억 원이라는 기계적 숫자를 맞추는 과정에서 시민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잘 살펴야 한다”며 “홍 시장이 하는 건 쇼. 양성평등기금이나 중소기업육성기금특별회계 지원을 털어서 빚을 갚는다는 건 ‘채무 감축’을 내세워 이미지메이킹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사무처장도 “지금 상황에서 홍 시장의 채무 감축 기조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치적을 만들어, 그걸 디딤돌로 중앙에 가겠다는 정치적 상징 아니겠나”라며 “예산안이 통과돼, 보조금을 줄이고 공공기관 통폐합이 완료된 이후가 시작이다. 계속해서 갈등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