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윤모의 과오를 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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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파리 근교의 크레유에 위치한 중학교에서 모로코 출신의 여중생 세 명이 이슬람 전통 복장 가운데 하나인 히잡을 수업 시간에 벗지 않으려고 했다. 교장은 여학생들의 거부를 정교 분리 원칙에 대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침해로 간주하고 이들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교장이 세 여학생을 퇴학시킬 수 있었던 근거는 1905년 제정된 정교분리법이다. 이 법에 따라 가톨릭 신자는 커다란 십자가를 목에 걸고 등교할 수 없으며 유대교 신자는 키파(kippah)를 쓰고 등교할 수 없다. 정교분리법은 엄격한 정교분리를 지향하는 프랑스 특유의 사상을 일컫는 라이시테(laïcité)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89년에 벌어진 1차 히잡논쟁은 세 명의 여중생들이 학교 안의 어디서든 히잡을 쓸 수 있으나 수업 중인 교실에서만은 히잡을 벗어야 한다는 타협안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그해 11월, 학생들이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했더라도 선동의 목적이 없다면 퇴학시킬 수 없다는 최고행정재판소의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2003년 4월,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사르코지가 앞으로 신분증 사진을 찍을 때 히잡을 벗고 찍는 것을 의무화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함으로서 히잡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1989년과 사르코지의 발언이 있었던 2003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가. 1995년 7월 25일, 프랑스에서는 무슬림이자 알제리계였던 프랑스 청년들이 파리 한 복판인 생 미셀 지하철역에 폭탄을 터트려 7명이 사망하고 80명이 부상당했다. 또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알카에다에 의한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항공기 자살 테러가 일어났다. 반이슬람 분위기에 편승해 프랑스에서는 2004년 3월 15일, ‘종교적 상징물 착용 금지법’이 통과된다. ‘3월 15일 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학교 안에서의 히잡 착용을 무조건 금지함으로써 1989년의 여러 결정을 퇴보시켰다.

히잡논쟁에서 우파와 좌파는 다른 이유지만 같은 길을 선택했다. 세 명의 여중생을 퇴학시킨 중학교의 교장부터가 프랑스의 우파 정당인 공화국연합의 당원(후에 공화국연합 후보로 출마해 하원 의원이 된다)이었는데, 이들 우파는 히잡이 이슬람과 거리가 먼 프랑스의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본다. 좌파 인사들은 히잡논쟁에서 우파와 달리 말을 아끼지는 편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라이시테를 고수한다. 프랑스 공산당과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는 여학생들을 퇴학시킨 교장을 편집증적이라고 비꼬면서도 정교 분리 원칙의 준수를 강조했다.

이졸데 카림은 『나와 타자들』(민음사,2019)에서 좌파들이 라이시테에 포박되었던 것을 비판한다. 라이시테는 개인의 신앙을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어야지 라이시테가 또 다른 종교로서의 ‘무신론’을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학교나 법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문제시되는 것은 가시성이 아니라 대의성이다. 일반인들이 십자가든 히잡이든 그 어떠한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고 공공장소를 누비는 것은 라이시테에 위배되지 않는다. 라이시테에 위배되는 것은 선생이나 판사가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할 때이다. 그 이유도 가시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대의성 때문이다. 선생과 판사는 국가를 대신해 종교적 중립성을 내보여 할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시무식에서 찬송가 <주 선한 능력으로>를 불렀다. 조계종에서는 1월 5일, “정치ㆍ종교적 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김처장의 징계와 사퇴를 촉구했다. 김 처장은 같은 날 “불교계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하여 사과 말씀을 드린다. 공직자로서 특정 종교 편향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을 한 것은 부적절했다.”라는 입장문을 냈다. 대한민국에는 불교신도만 있는 것이 아니니, 김처장은 사과마저도 ‘특정 종교 편향적’으로 했다. 하지만 그의 실수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한민국이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는 윤모의 과오를 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