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노숙인의 설날···고향 가진 못하고 합동 차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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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으로 쪽방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을 넘긴 박한수(가명, 60대) 씨는 명절에도 갈 곳이 마땅찮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명절 연휴를 앞둬서인지 희붐하게 밝은 듯했다. 쓸쓸한 마음으로 박 씨는 19일 대구 중구 행복나눔의 집으로 향했다. 합동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다.

그곳에는 박 씨처럼 저마다 사연으로 노숙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합동 행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간만에 치르는 차례다. 함께한 이들의 면면에도 반가움이 묻어났다.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합동 차례상 앞에서나마 조상께 잔을 올렸다. 박 씨도 술잔을 손에 들자 감회가 새로웠다. 쪽방 생활을 하면서 발병한 간암 수술을 마쳤고, 재활에도 노력해 건강 회복도 순조로웠기 때문이다. 박 씨는 차례상에 잔을 올린 다음 기쁜 마음으로 다른 노속인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암 수술을 했는데 자전거도 타고 열심히 회복 중이에요. 아파보니까 힘듭니다. 모두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박한수 씨)

▲2023년 설 연휴를 앞두고 대구쪽방상담소가 합동 차례를 진행했다. (사진=대구쪽방상담소)

지난 19일 오후 4시 30분, 자원봉사능력개발원 부설 대구쪽방상담소는  행복나눔의집에서 노숙인, 쪽방 주민, 매입임대입주자 등 50여 명과 함께 설 명절 합동 차례를 지냈다. 합동 차례는 올해로 18년째 진행되지만, 최근 3년은 코로나19로 진행하지 못했다.

이날 합동 차례에서는 청운신협 임직원과 조합원이 기증한 헌 옷 판매로 마련한 후원금으로 쪽방 주민들에게 10만 원 상당의 명절 선물도 지급했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장은 “명절에 갈 곳 없는 분들이 이곳에라도 한 번 모이게 된다. 사정상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분들이라 이렇게라도 술잔을 올리며 위안받는다”며 “당장 급한 생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노숙인이 스스로 주거 상향에 대한 의지를 갖도록 정서적 지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쪽방상담소는 대구 쪽방 주민 620여 명, 노숙인은 100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쪽방 주민 수는 쪽방밀집지역 재개발로 매해 감소 추세다. 쪽방 주민은 감소하지만, 이들이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옮겨갔다기 보다는 노숙(비주택 거주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관련 기사=재개발로 ‘쪽방’ 줄었지만, ‘비주택’ 주거 대책은 부족(‘22.12.8))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