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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사히글라스 공장 밖 9년] (3) 사람에는 ‘님, 놈, 새끼’가 있다
[아사히글라스 공장 밖 9년] (2) 구미로 흘러온 사람들 오수일 #1
[아사히글라스 공장 밖 9년] (1) 해고노동자의 얼굴들
[아사히글라스 공장 밖 9년] 해고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했나
노조결성 막전막후
오수일 #2
2013년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GTS에 입사한 오수일. 오수일은 취직할 때부터 일반적인 하청업체의 사정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일은 아사히글라스 공장에서 하지만, 소속은 하청업체다. 면접도 아사히글라스 공장 경비실 입구에서 하청업체 관리자에게 받았다. 기대치가 낮아서인지, 아사히글라스에 대한 첫인상은 작업환경은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해서 작업하는 2층 콜드 공정과 다르게, 1층 구트 공정에서 정규직은 대체로 작업 감독 역할을 맡았다. 정규직은 딱딱한 표정으로 제품 상태 확인을 위해 눈을 부릅떴고, 그럴 때마다 오수일은 불안감을 느꼈다.
“급여는 GTS가 떼고 남은 걸 받겠구나. 불법파견이구나”
오수일은 본능적으로 ‘줄’을 찾기 시작했다. 줄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원칙은 사업하는 동안 뼈저리게 느꼈던 바다. 하지만 관리자 비위를 맞추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직장에서는 같은 조에 속한 동료라고 해도 친분을 쌓을 계기는 없었다. 타인의 실수가 모든 구성원의 피로도를 높이는 만큼, 오히려 적대적인 관계에 가까웠다. 입사 후 2년이 지난 2015년, 오수일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졌다. 용역업체를 운영할 때 봤던 젊은 직원들의 얼굴이자, 지게차 단도리 작업으로 쉴 틈 없이 유리판을 갖다 놓는 박성철의 얼굴, 절단 작업 중인 허상원의 얼굴이 됐다.
여느때처럼 피로한 표정으로 라인 앞에 서 있을 때, GTS에 노조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만으로는 체감되는 바가 없었기에 오수일은 노조가 있으면 식단은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를 했다. 입사 초기 밥을 두고 라면을 먹는 동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며칠 만에 깨달았다. 사람 먹을 밥을 주는 게 아니구나. 국과 밥은 식었고, 국에는 식은 기름이 둥둥 떠다닌다. 급여가 충분하리라 기대한 적은 없다. 하지만 못 먹을 밥을 준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회사가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구나. 그러면서 용역업체를 운영하던 시절 젊은 직원들이 공장에 정을 붙이지 않고, 한 곳에서 터를 닦아가지 않았는지 체감하게 됐다. 어딜 가도 따뜻한 밥 한 끼 대접받질 못했을 것이다.
같은 조 동료 손에 이끌려 오수일은 한 식당에 들어섰다. GTS 내에서 노조 결성을 준비 중이며, 그에 대한 설명을 하는 자리였다. 생산 라인에 있을 때는 제대로 살펴볼 새도 없었는데, 둘러앉아 동료 얼굴을 보니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조 결성과 그 이후 가능한 회사의 탄압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보니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해고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소상하게 설명하는 사람의 말이 거짓으로 구슬리는 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2층 콜드 공정에서 일하는 차헌호다. 차헌호는 훗날 노조 지회장이 된다.
안진석 #1
님, 놈, 새끼
‘새끼’가 노조 가입을 결심한 이유
노조 결성을 모의하는 식당, 그곳에는 안진석(51)도 앉아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안진석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정규직이라면 모를까,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어서 회사를 바꾼다? 그런 건 그간 거쳐온 수많은 회사에서 보고 들은 바가 없다. 속셈이 무엇일지 속으로 생각하던 안진석은 괜히 비딱한 심정이 돼, 설명을 듣던 도중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가는 안진석을 향해 설명하던 사람의 마지막 한마디가 뒤따라온다. “노조는 기회예요. 이 기회를 잡으면 신세계가 올 거예요.”
식당에 같이 가보자고 했던 동료가 따라 나왔다. 안진석이 말했다.
“형님요. 예를 들어 드릴게요. 이 가게 봐요. 돈 발라서 인테리어 하면 장사는 시작할 수 있겠죠. 그런데 장사가 잘되고 맛집으로 소문나는 건 별개예요. 노조가 잘 될 거 같아요?”
***
출근 날. 안진석은 구트 공정 중 세정라인에서 일한다. 절단 작업 중인 오수일의 맞은편이다. 흠결이 있는 유리판이 오프 라인으로 넘어오면 세정과 절단을 거쳐 양품으로 만들어진다. 게시판에 붙어 있는 작업지시서대로 단순 반복 작업을 하면 된다. 정규직이 컨트롤 박스로 세정기에 투입되는 수압과 롤러의 속도를 조절하면 안진석은 그에 맞춰 유리판을 씻어내면 됐다. 안진석은 이따금 작업장을 지나가는 정규직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님, 놈, 새끼···”
비정규직 일터를 전전하며 안진석이 깨달은 말이다. 사람에는 ‘님, 놈, 새끼’가 있다. 비정규직은 새끼다. 어딜가나 똑같이 인간 이하 취급을 받는다. 부양가족에 대한 부담이 없는 안진석은 많은 급여보다는 많은 휴식을 선호했다. 그런데 비정규직에게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잔업에서 자유로운 공장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사히글라스는 여러 공장을 옮겨 다니다가 잔고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쉬던 차에 사원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노후 안정을 위해 변액연금보험에 들었는데 보험료가 간당간당했고, 일단 적당한 회사에서 급여를 받아 메꿔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사히글라스 생활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사람다운 대우는 기대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란 것이 원래 사업 실적이 줄어들거나 비수기가 되면 언제든지 자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여태 그렇게 대우받았다. 언제든 자르려면 언제든 사람처럼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안진석은 습관처럼 어느 일터를 가더라도 정은 붙이지 않으려 했다. 내가 ‘새끼’니까 너도 ‘새끼’로 생각하려 했다. 단조로운 작업을 이어가던 중, 안진석의 머릿속에 ‘님, 놈, 새끼’ 말고 다른 한 단어가 떠올랐다. “신세계란 어떤 걸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노조에 가입해보기로 했다. 잘리면 다른 공장에 가도 문제없다는 심정이었다.
단결투쟁 머리띠를 매고 출근하다
노조 결성하자 178명 해고
오수일 #3 안진석 #2
노조 활동을 하면서 하는 일 어떤 것도 오수일에게는 새로운 것이었다. 새로운 일은 딱딱했던 얼굴에 새로운 표정을 불어 넣었다. 사람 취급받아보자고 시작한 노동조합, 막상 시작하고 보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동지라는 말, 투쟁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어디선가 툭툭걸리는 느낌이었다. 긴가민가하는 심정인데 동료들이 단결투쟁이라 적힌 빨간 머리띠를 매고 출근하자고 했다. 노조가 결성되고 처음 회사에 교섭을 요구한 뒤, 기세를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었다.
아직은 노조 활동에 얼떨떨한 심정이던 오수일. 다른 조합원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머리띠를 매고 가기로 했는데 라인 앞에 서보니 오수일의 조원들은 머리띠를 매고 있지 않았다.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여러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벗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쉬는 시간까지 한 시간은 버티겠다고 눈을 질끈 감은 오수일은 휴식 시간 담배를 피우러 가면서 머리띠를 벗었다. 속았다는 심정과 함께 짧은 휴식 시간 뒤 돌아온 오수일의 눈에 뭔가 울긋불긋한 것이 보였다. 다른 조원들이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가슴 한쪽이 뭉클했다. 말없이 머리띠를 다시 맸다. 여전히 쉴 새 없이 판유리가 속속들이 도착하는 공장이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곳이 된듯했다.
안진석도 공장에 들어올 때 나눠 받은 머리띠를 질끈 묶었다. 잠시 집중을 받는 느낌이 드나 했더니, 같은 조 사람들도 모두 묶은 모습을 보고 안도감을 느꼈다. 이전에 라인마다 벽이라도 있는 듯 다른 노동자들과는 담을 쌓고 지냈는데 머리띠를 매고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벽이 사라진 듯 느껴졌다. 처음 느껴보는, 하나라는 느낌. 노동자들은 무슨 일이라도 생길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규직과 관리자들은 머리띠를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얼마 뒤 교섭 공지문이 붙었다. 거기에 적힌 문구가 마음에 꽂혔다. ‘귀 노동조합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귀 노동조합이라, ‘새끼’가 아니고 ‘님’이 아닌가. 교섭이 열리는 며칠간, 노조 활동을 막 시작한 조합원들은 기세가 올랐다. 쉬는 시간 짬을 내 모여 투쟁가를 불렀다.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이것이 과연 신세계란 말인가.
짧은 해방감은 달콤했다. 2015년 6월, 안진석은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회사 전기공사가 있으니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였다. “노조가 생기니 이런 일도 있구나, 개꿀!”이라며 안진석은 놀 계획을 세웠다. 오수일도 얼떨떨한 심정으로 뜻하지 않게 생긴 휴일을 면허증 갱신에 활용했다. 친구와 오랜만에 점심을 먹을까 연락하려던 차, 노조에서 긴급 소집 문자가 왔다. 휴일이 아니라 해고라고 했다. 오수일은 공장으로 차를 돌렸다. 공장 앞에는 차량과 출근하려는 사람들, 용역 경비와 경찰이 뒤엉켜있었다. 야간 근무를 마친 조합원들은 공장 안에서, 쉬는 날인 줄 알고 시간을 보내던 조합원들은 공장 밖에서 어쩔 줄 모른 채 발을 굴렀다. 노조는 천막농성을 하기로 판단했고, 그때부터 공장 앞에 천막이 펼쳐졌다. 수가 달리자 당장 인근 공장 노동조합(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힘을 보탰다.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것은 경찰이었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노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봐야 할 것은 쫓겨난 사람들이 아니고 공장을 가로막은 사람들이 아닌가. 다시 ‘새끼’가 되어버렸다. 경찰의 얼굴들을 본 순간,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의지는 없었던 안진석의 마음에도 불이 붙었다. 끝까지 가 보기로 결심했다.
“전기 공사 때문에 하루 쉬라고 했는데요, 일이 생겼다고 해서 공장에 딱 오니까, 경찰이 쫙 깔려 있는 거예요. 해고당해봤어요? 적어도 인수인계라든가, 정리할 시간은 준다고요. 어딜 가도 이렇게 문자로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곳은 없어요. 그것도 억울한데 경찰들이 우리를 막아요. 짐은 그대로 공장 안에 있는데 말이에요. 그때 발작 버튼이 눌렸죠.” (안진석)
“계약기간도 안 끝난 상태였거든요. 출근하려는데 경찰이 막더라고요. 용역경비랑 같이 섞여 있더라고요. 왜 경찰이 거기 있어요. 절차를 지켰거나 합당한 이유라도 있는 해고 같으면 모르겠는데요. 우리더러 공무집행방해라고 하더라고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 길로 천막농성을 시작했어요.” (오수일)
(계속)
[편집자 주] 올해로 9년째다. 2015년 7월 아사히글라스 하청노동자들 178명이 전원 해고됐다. 22명의 노동자들은 원청인 아사히글라스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9년째 공장 앞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1, 2심 법원도 아사히글라스가 해고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자 직접 고용을 거부하면서 노동자에게 배상해야 할 임금, 이자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약 90억 원이다. 노동자들과 아사히글라스가 서로 제기했던 민사소송은 6건이고, 파견법 위반으로 진행 중인 재판도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과 법무법인 태평양에 사건을 맡겼다. 법조계에 따르면 소송 대리 비용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사히글라스는 노동자들의 해고 이후 정문 앞 경비 강화에도 비용을 더 투입했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법률 대응으로 아사히글라스가 9년 동안 쓴 돈은 100억을 훌쩍 넘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 해고를 겪으며 다방면으로 투쟁에 나섰다. 법원을 출입하는 일도 잦아졌다. 9년 동안 26건의 다양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고, 소송비용으로만 1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법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질문을 수없이 했다. 30대 초반의 노동자는 40대가 됐고, 40대 중반 노동자는 50대가 됐다. 만약,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조합을 인정했더라면 9년째 거리에서 싸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뉴스민>은 노동조합을 만나 삶이 바뀐 해고노동자들의 현재 모습을 통해 노동자에게 취약한 법과 제도까지 짚어 본다.
취재=박중엽, 김보현 기자
기사=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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