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과학적 맥 빠짐 / 김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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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왔다. 젊은이들의 목숨이 길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생활물가가 살벌하게 오르고 있지만, 새 학기가 다시 왔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남녀 간의 혐오, 다른 인종에 대한 비이성적 불관용과 혐오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 학기가 다시 왔다. 대학 교육을 처음 받게 될 신입생들과 짧은 방학을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올 학생들과 함께 어떤 공부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또 왔다.

상식이여야 하는 기본 안전과 기본 생활이 무너지고 있는 사회에서, 서로 돕는 대신 혐오가 만연한 이 암울한 때에, 삶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는 과학, 그것도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통섭(interdisciplinary)이 상식이 된 이 시대에도 여전히 문·이과로 나뉘어 교육받은 학생들에게, 그것도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을 밤낮으로 받은 학생들에게, 과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용한지, 왜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지를 알려야 하는 시기가 왔다.

역사학을 전공한 적은 없지만, 역사 동호인으로서, 그리고 사람을 연구하는 인지 신경과학자로서,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즐거운 공부 거리이다. 아마추어인 나의 관점에서 인류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취해왔다. 파괴 또는 숭상. 엄밀히 따지면, 파괴를 기본으로 두고, 그 대상을 파괴할 수 없을 때는 거꾸로 숭상하는 특이한 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는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특히 ‘우리와 다른 대상’, 피부색, 언어, 문화, 그리고 장애 여부 등등의 크고 작은 이유로, 마주했을 때, 그들이 우리와 왜 다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신, 그 대상을 죽이거나, 탄압하거나, 노예로 삼아왔다.

원리를 알 수 없었던 태양, 천둥·번개, 지진, 역병이나 죽음 등과 같은 자연현상처럼 그 대상을 제압할 수 없는 경우, 그 자체를 숭상하거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동서양, 인종, 사회·문화적 배경을 초월한 장애인과 이민족에 대한 혹독한 탄압 및 학살, 그리고 여러 자연현상에 대한 숭배문화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 과학이 꽤 발전한 문명국가의 사람 대부분은 자연현상을 숭배하거나 이민족을 탄압하지 않는다. 적어도 공공연하게 하진 않는다. 과학 또는 과학적 연구 방식을 통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인류의 다름이 왜 생겨났는지, 자연현상이 어떤 원리에 의해 초래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무섭거나 두렵지 않고, 더 이상 신비롭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파괴하거나 숭배하지 않는다.

매 학기 첫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이러한 견해를 간략히 소개해주고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강의실 내의 인원, 약 40명에서 70명 중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냐는 질문에 전체 인원의 반이 훌쩍 넘는 학생들은 그 확률이 50% 미만일 것으로 추정한다. 상당수의 나머지 학생들은 심지어 70% 미만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추정을 하는 학생들에게 약 23명의 인원만 모여도 생일이 같을 수 있는 확률은 벌써 50% 이상이며, 현재의 수가 모인 경우, 그 확률은 90%가 넘어간다고 말하면, 학생들은 놀란다. 심지어 대단한 마술쇼를 본 듯, 신기하고 신비로운 현상을 본 듯 반응한다.

놀라움이 가시기 전에, 학생들이 껄끄러워하곤 하는 수학 공식을 소개한다. 간단한 확률 공식을 적고, 차근차근 두 사람, 세 사람 등 소수의 인원의 생일이 같을 확률을 설명하며, 충분히 많은 인원이 있을 때 생일이 같을 확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간단한 풀이와 함께 이 현상이 규칙 혹은 공식에 의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를 소개하면 학생들은 조금은 맥 빠진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런 맥 빠진 표정이 늘 반갑고 감사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학적 맥 빠짐’을 더 많은 학생이 경험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생일 우연(birthday coincidence)으로 알려진, 수학적 규칙을 엄격히 따르는 이 현상은 사람이 파괴할 수 없다. 그래서 생일 우연의 원리를 모를 때는, 이 현상을 신기하고 신비롭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알게 된 후에는 자연스러운 규칙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중력에 놀라지 않는 것처럼 (오히려 인간은 지구를 벗어났을 때 겪게 되는 무중력에 더 놀란다), 생일 우연 또한 어떻게 보면 시시하고 흔한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 모두 생물학적, 사회적인 원인에 의해 지금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다름은 생물학적으로도 진화적으로도 꼭 필요한 것이라 설명하며 우리의 다름은 사실 시시하고 맥 빠지는 일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비이성적으로 대할 이유가 없음을, 특히 증오할 이유가 없음을, 조금은 강하게 주장한다.

맥 빠진 표정을 짓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 주변의 여러 현상들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덧붙인다. 우리와 성적·인종적·문화적으로 다른 이들은 퇴치해야 할 괴물이거나 숭배해야 할 대상이 결코 아니라고. 우리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 모두 생물학적, 사회적인 원인에 의해 지금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다름은 생물학적으로도 진화적으로도 꼭 필요한 것이라 설명하며 우리의 다름은 사실 시시하고 맥 빠지는 일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비이성적으로 대할 이유가 없음을, 특히 증오할 이유가 없음을, 조금은 강하게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과학적 맥 빠짐’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이 과학이 하나의 도구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기를 바란다.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이자 저술가, 위대한 과학자인 칼 세이건의 말처럼, ‘과학은 복잡한 지식의 체계가 아닌 사고방식’임을 알기를 바란다. 그렇게 더 많은 학생들이 과학을 덜 어려워하기를 바란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우리와 다른 대상을 맞이했을 때, 불필요한 파괴나 숭배로 접근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새 학기에는 사회 구성원들 간 불필요하고 파괴적인 혐오와 갈등, 그리고 비이성적인 숭배가 조금은 줄어들기를 원한다.

더 먼 우주에 탐사선을 보내고, 개별 뇌세포의 발화를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이 시대, 광신과 미신이 여전히 득세하는 한국 사회가 바뀌기를 앙망한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젊은이들이 과학적 사고를 통해, 우리의 다름이 사실 맥이 빠지는 시시한 것임을, 우리의 다름은 조화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익히기를 바란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기본 안전과 생활이 어려워진 이때에 서로가 서로를 더 보듬고 돕고, 사랑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과학적 맥 빠짐’을 더 열심히 전파해야 할 새 학기가 왔다.

김장진 경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