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의 민낯] ③ 밥판 18kg, 국솥 90cm···어깨 근육이 다 삭았다

직접 쓴 재해경위서로 산재위원회서 울며 말해
“최하의 일을 하고 최하의 월급을 받는다”
급식 종사자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일 것
노조 “인력 충원해 노동시간 줄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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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학교급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되면서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건강 문제도 조금씩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초기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당장 급한 부상이 문제시됐지만, 2018년 한 급식노동자의 죽음 이후 관심은 몸 안으로도 향했다. 급식실에서 10여 년 근무한 후 폐암으로 숨진 그 노동자는 2021년 폐암 발병이 급식실 노동환경과 연관되어 있다는 공식 인정을 받았다. 급식노동자의 건강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걸까. <뉴스민>은 연속 기획으로 위험한 급식실의 민낯을 살펴본다.

[급식실의 민낯] ① 근골격계 질환부터 폐암까지, 위험한 급식실
[급식실의 민낯] ② 굽고 튀기고 볶던 어느 과정에서 폐암 걸렸나
[급식실의 민낯] ③ 밥판 18kg, 국솥 90cm···어깨 근육이 다 삭았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노동조합 조끼부터 꺼내 입었다. “분홍색이라 사진이 잘 받잖아”라며 손태련 씨(65세)는 허리를 한 번 폈다. 2019년 급식조리원으로 정년퇴직한 후 손 씨는 학교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인터뷰를 한 13일에도 오전 7시 40분에 출근해 12시를 조금 넘겨서 퇴근했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손 씨는 17년간 초등학교 급식조리원으로 일했다. 조리원 4명이 매일 530인분의 밥, 국, 반찬 3개를 조리했다. 조리를 마치면 배식을 한 후 식판, 컵, 수저 530개, 배식통과 조리 솥 80여개를 설거지했다. 열탕 소독 작업과 조리실 청소까지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났다. 매주 목요일엔 배수트렌치 청소, 금요일엔 후드 청소가 덤으로 붙었다.

▲인터뷰는 13일 오후 3시 30분,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2014년은 그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한 해 앞선 2013년 겨울, 10년차 조리원이 된 그의 어깨에 이상 신호가 왔다. 2014년 1월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어깨 근육이 다 삭았다”고 했다. ‘우측 견관절 회전근개 파열’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병원에선 최소 6개월은 쉬라고 했지만, 4개월 만에 복직했다. 그리고 산업재해를 신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재해경위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교장실 청소까지 하며 ‘식당 아줌마’ 취급을 받을 때였다. 노동조합도 없던 시절이다.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메모지와 볼펜을 들었다. ‘밥판은 18kg, 쌀은 하루 세 포대’ 일하는 중간중간 적었다. 이해해 주는 동료도 있었지만 “왜 일을 늦추려 하냐” 면박을 주는 동료도 있었다. 교장실에 여러 번 불려 가면서도 썼다.

‘밥판 무게 18kg, 국솥 지름 90cm’···직접 쓴 재해경위서

밥과 국, 반찬 조리 담당은 주 단위로 돌아갔다. 밥을 담당하는 주에는 매일 쌀 37kg 분량을 세미기에 부어 세척하고, 스팀기로 옮겼다. 취사가 완료된 밥판 무게는 18kg 정도 됐는데, 너무 뜨거워서 몸에 닿지 않도록 팔을 벌리고 들어 조리대로 옮겼다. 무게를 몸으로 지탱할 수 없는 만큼 팔과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갔다. 밥판은 7개여서 이 과정을 7번 반복했다.

국을 담당하는 주에는 재료를 다듬어 썰고 조리했다. 재료를 다듬는 작업은 혼자 할 수 없어서 그 주 밥 담당 조리원과 같이 했다. 보통 1시간 이상 썰기 작업이 이뤄진다. 주 2회 김치를 담는 날에는 썰어야 할 분량이 30분 가량 더 는다. 썰기 작업이 끝나면 지름 90cm, 높이 60cm의 국솥에 재료를 넣고 계속 저었다. 수증기 때문에 얼굴은 멀찌감치 뒤로 젖히고, 길이 1m 가량의 조리삽으로 휘저었다.

반찬을 담당하는 주에는 부침, 튀김, 볶음, 무침 조리를 했다. 가장 힘든 건 탕수육, 닭튀김, 미트볼, 동그랑땡 같은 튀김 반찬이었다. 지름 120cm, 높이 50cm의 튀김솥에 식용유 36L를 부었다. 기름이 튀기 때문에 튀김 솥과 거리를 두고 어정쩡한 자세로 작업을 했다. 어정쩡하게 뒤로 빠지는 만큼 튀겨진 음식을 건져내는데는 힘이 더 들었다.

전이 있는 날도 힘들다. 가로 140cm, 세로 60cm의 사각 전판 위에 1인당 1개씩 배식되도록 작은 크기로 전을 부쳐야 했다. 반죽을 숟가락으로 일일이 떠서 놓고 전을 얇게 부치기 위해 하나씩 눌러주고 뒤집어 꺼내는 순서로 진행했다. 전판은 크고 뜨거웠다. 역시 거리를 둔 채 상체를 굽혀 팔을 뻗으면 허리가 지지하지 못하지는 상체 무게를 견디며 전 530인분을 붙여야 했다. 일주일 내내 튀김과 전이 메뉴에 포함되는 날도 있었다.

설거지는 하루 2번이었다. 오전 설거지는 배식이 이뤄지기 전 50분가량, 오후 설거지는 배식이 끝나고 2시간 정도 걸렸다. 배식이나 설거지를 위해 식판을 나를 땐 보통 20개씩, 9kg 정도 되는 무게를 한꺼번에 들었다.

밥통, 국통, 반찬통, 수저 등은 1차로 손으로 씻고 물에 헹군 다음 세척기에 넣었다. 국솥 2개에 물을 8할 정도 채워 펄펄 끓으면 넣었다가 꺼내는 열탕 소독작업까지 끝나면 소독고로 이동해 보관했다. 끓는 물에 그릇을 넣었다 빼는 작업은 수증기 때문에 최대한 떨어져서 해야 한다. 조심을 해도 종종 뜨거운 물방울이 얼굴에 튀었다. 그때마다 자세는 더 엉거주춤해지고 팔에는 힘이 들어갔다.

산재위원회서 울면서 말했다
“최하의 일을 하고 최하의 월급을 받는다”

재해경위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갔다. 손 씨는 무거운 집기를 들고 내리는 작업과 반복적으로 썰고 튀기는 작업을 그대로 적었다. ‘팔이 아팠다’거나 ‘어깨에 무리가 갔다’는 표현은 당연해서 없어도 되는 수식어였다. 노무사와 근로복지공단 담당관의 도움을 받은 서류는 산재심사위원회(산재위원회)로 갔다.

▲“선생님, 저희는 최하의 일을 하고 최하의 월급을 받는데 우리 생각을 좀 해주세요, 했지. 무식이 용감인지 승인이 났어”

“남대구우체국 13층으로 오래서 갔더니만 산재위원회가 열렸어. 심사위원들 사이에 앉았는데 너무 억울해서 울었어요. 영양사님, 교장선생님 눈총에 힘들었던 게 생각이 나더라고. 산재를 안 받아도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했어. ‘선생님, 저희는 최하의 일을 하고 최하의 월급을 받는데 우리 생각을 좀 해주세요’ 말했지. 그때만 해도 전국에 (산재 인정) 사례가 별로 없었다 하더라고. 무식이 용감인지 승인이 났지.”

2014년 여름, 재해경위서를 포함한 서류를 제출하고 4개월쯤 지난 9월 말,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산업재해에 대한 일을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 말이 너무 고마워 그 담당자를 우수직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손 씨는 산재를 인정받은 뒤에도 급식조리원으로 일했다. 동료들은 여전히 산재 신청을 꺼려했다. 치료 과정에 대타가 오면 손발이 안 맞는다거나, “산재 신청 과정이 번거로우니 실비보험으로 처리했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혹은 학교 눈치를 받는 것도 신재 신청을 꺼리는 데 한 몫을 차지했다.

급식 종사자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일 것
노조 “인력 충원해 노동시간 줄여야”

손 씨처럼 뜨겁고 무거운 조리기구를 다루면서 근골격계에 이상이 생긴 급식노동자들은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한노동세상,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학교 급식실 노동자 작업조건 실태 및 육체적 작업부하 평가’ 연구에 따르면 학교 급식노동자 3,1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절대다수가 최근 1년 내 목과 허리, 어깨, 팔, 손목 등의 통증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과 손목 통증을 겪은 응답자는 96.3%에 달했고, 어깨(96.1%), 팔·팔꿈치(92.0%), 허리(91.3%), 목(87.6%), 다리·무릎(84.7%), 발·발목(77.5%) 통증을 겪은 사람도 다수다. 조사대상자 중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위험 기준을 넘어선 응답자도 절반 이상이었다. 노동과학연구소는 이들을 ‘관리대상자’로 구분하면서 근골격계 질환 환자일 확률이 높아 즉각적인 작업환경 개선과 검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같은 연구에서 급식노동자 30명을 대상으로 심박수 측정 등을 통해 작업부하량을 평가한 결과, 이들 모두 현재 노동량이 신체에 끼치는 ‘육체적 작업부하’가 적정 수준보다 1.5~2.7배로 높게 나타났다. 현재 작업강도를 유지하려면 인력을 충원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급식실 적정 종사자 수가 현재 인원보다 평균 23% 많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병가 등으로 결원이 생길 경우 업무량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실제 증원 인력은 이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산재가 인정된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건 주목할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 산업재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산재 노동자 중 여성 비율은 전체 8만 2,349 명 중 24.7%인 2만 301명에 그쳤다.

정형옥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여성노동자 산업재해 현황과 시사점’(2021)을 통해 “기본적으로 산재보상 시스템이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에, 성별 직종 분리된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주로 경험하는 유형의 사고와 질병은 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년 여성들은 급식실을 벗어 나서도 몸을 쓰는 일로 옮겨 간다. 손 씨는 지난해 중학교 청소노동자로 재취업했다. “급식보단 수월하지. 이 일도 쓰는 기구만 바뀌었지, 하는 일은 비슷해요. 물 뿌리려면 호스 끌어와야 하고, 쓰레기통 비우면서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어야 하고···. 변기 수가 130개예요. 본관에 별관까지 다 청소하려면 일하는 6시간 내내 뛰어다니지.”

손 씨는 학교에서 일하는 게 좋다. 남학생은 왕자, 여학생은 공주라고 부른다. 중학교에 와선 아이들이 상상 밖의 험한 말을 쓴다는 걸 알았다. “왕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쓰나”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죄송합니다”하곤 그다음부터 인사를 꼬박꼬박했다.

“나는 청소아줌마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을 왕자, 공주라 불러요. 아이들도 참 기분 좋아해요.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교육청에서 공문을 내려서 학교에서 근무하는 모든 이의 호칭은 선생님으로 통일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환경미화로 일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청소 여사님이라고 불러요. 그럼 속으로 ‘이왕이면’ 하는 생각이 들죠. 가르치는 사람만 선생님이라 하는 게 맞긴 한데 왜 호칭이 그럴까 싶어요. 사실은 임금이 3배, 4배 차이가 나니까 그렇겠죠. 우리부터 스스로를 보살피고 존중해야 돼요. 일하다가 피곤하면 쉬고, 아프면 치료 받고, 자신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