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원폭 투하 날’에는 합천에서도 참혹한 걸 보셔야 합니다”

[인터뷰] 심진태 한국인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지난 18일 히로시마행···대통령 위령비 참배 동행 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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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양국 정상들이 한국인원폭피해자위령비에 참배한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잖아요. 우리는 큰 기대를 갖고 반가운 마음인데, 우리 교포들하고 우리가 한자리에 같이 모여서 하면 얼마나 빛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일본에 간다고 대통령실, 외교부에도 서한을 보내고 갔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이 없어. 이런 식으론 안되거든요. 다른 건 없고, 일본 위령비에 처음 참배를 했으니까. 대통령이 금년부터는 8월 6일날 합천, 이 조그마한 데라도 와서 참혹한 걸 보고 가셔야 해요.”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지난 2020년 8월 뉴스민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수화기 너머로 카랑카랑한 소리가 건너왔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80)은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국인원폭피해자위령비 참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쉬움을 끝내 걷어내지 못했다. 심 지부장은 원폭 피해자 1세대다. 그는 1943년에 히로시마에서 태어났고, 인류 첫 원폭을 경험했다.

지난 18일 심 지부장과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간부 등 14명은 긴급하게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다. G7 정상회의 참석차 히로시마에 가는 윤 대통령이 위령비에 참배한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협회는 일본행에 앞서 16일경에는 대통령실과 외교부 등에 일본행 소식을 알리고, 위령비 참배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심 지부장과 일행은 위령비 참배 현장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참배하는 현장에는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박남주(91) 전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10명이 함께 했다. 심 지부장 일행은 대신 위령비를 먼 발치에 두고 간단한 위령제를 올렸다.

▲심진태 지부장(제일 오른쪽)과 일행들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 켠에서 한국인원폭피해자위령비를 향해 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심진태 제공)

21일 밤 경남 합천으로 되돌아온 심 지부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심 지부장은 “78년 만에 양국 정상이 참배한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라며 “과거에 일본 총리는 참배를 한 일이 있지만 우리나라 장관이나 대통령이 한 건 처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큰 기대를 갖고 반가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청와대(대통령실)에 사안을 알리고 외교부에도 얘기를 하고 일본 영사관에도 이야길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척도 없다. ‘안 된다, 된다’ 소리도 없어서 우리는 안 해도 좋고, 해도 좋은데 반은 기대를 해보고 일본으로 간 거다”라고 설명했다.

심 지부장은 “일본 교포 원폭 피해자들하고 만난고 하니까 우리가 14명이 가서 교포들하고 한자리에 같이 모여서 하면 얼마나 빛이 나겠나”라며 “그런데 우리는 만나겠다, 안 만나겠다 얘기도 없고 답변이 없더라. 한 군데도. 좀 섭섭하더라”라고 전했다.

심 지부장은 “저희들이 바라는 건 앞으로 다른 건 없다. 일반 일본 위령비에 처음으로 참배를 했으니, 우리나라도 위령 시설을 하루 속히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이 금년부터는 8월 6일(원폭 투하 날) 합천, 이 조그마한 곳이라도 와서 참혹한 걸 보고 가셔야 된다”고 강조했다.

경남 합천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당한 한국인들이 다수 돌아와 둥지를 큰 곳으로 ‘한국의 히로시마’로 알려져 있다. 2017년엔 국내 첫 원폭 자료관이 개관했고, 해마다 관련 행사도 열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경남 합천과 부산, 대구 등지에 한국인원폭피해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관련기사=[국내 첫 원폭자료관 개관①] 자료관 개관이 남긴 숙제···‘만든 거로 끝 아니다’(‘17.8.6), [원폭 75주기, 한국의 기억] (2) “자료를 남기는 건 역사를 남기는 것”(‘20.8.6))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