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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되잖아요. 가창은 학살이 워낙 많았던 곳이고, 대구·경북은 워낙 학살자가 많지 않습니까. 다른 지역도, 월배(본리골)나 앞산 빨래터 같은. 빨래터는 지금 대구시에서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학살터에서. 그러니 유가족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한번 시작했으니까,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두 번, 세 번은 해봐야겠거든요. 뼈 한 점이라도 찾아야겠거든요.”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대구·경북형무소재소자 희생 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가창골 유해발굴 작업이 빈손으로 종료됐지만, 유족들의 의지는 여전하다. 13일 오전 달성군 가창면 10월항쟁·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위령탑 바로 옆에 마련된 10월항쟁유족회 간이 사무실에서 열린 보고회는 ‘1차’ 발굴 작업의 결과를 공유하고, 2, 3차 발굴을 기약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22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일환으로 대구 달성을 포함해 경기 안성, 충북 충주 등 전국 7곳에서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을 이어왔다. 달성군 가창면은 가장 마지막으로 진행된 발굴 조사지다. 이곳은 한국전쟁 반발 직후 군경에 의해 10월 항쟁 관련자나 국민보도연맹원 등의 민간인이 적법 절차 없이 살해돼 매장된 곳으로 지목됐다. (관련기사=‘73년 만에’ 대구 가창골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23.5.24))
진실화해위는 13일까지 매장지로 지목된 용계리 산 89-6 일대 조사지를 5분할해 순차적으로 발굴했지만 희생자 유골이나 유류품을 찾진 못했다. 겨울철 의복과 다수의 장갑, 중장비용 교체 부품으로 추정되는 철조각 등을 일부 발견했지만 발굴을 맡은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측은 학살과는 관련 없는 유류품으로 봤다. 유족들은 아쉬움을 표하면서 추가적인 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병일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연구원은 “1980년대 가창댐 중축 과정에서 중장비가 들어오면서 사용된 부품들이 아닐까 생각된다”며 “중축 과정에서 발굴 현장 지근거리에서 공사가 이뤄져 지형 훼손이 있었을 수 있고, 해당 지역이 경작이 이뤄진 밭이어서 10~50cm 정도의 지형 변화기 있었다. 유골이나 유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경작 과정에서 훼손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채영희 회장은 “이곳 말고 가창면 상원리도 발굴 대상 지역으로 있고, 개인적으론 이곳을 발굴해야 한다고 더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며 “다른 곳보다 대구에선 발굴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든다. 상원리에서 발굴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발굴 작업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노용석 부경대 교수는 “말씀하신 상원리와 용계리 모두 우선 발굴 대상지로 넣어둔 곳”이라며 “유해발굴의 목적은 찾으면 좋지만 확인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의 한을 푸는 의미도 있다. 이곳에서 안 나왔으니 다른 곳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상원리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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