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빚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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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고 기사를 쓰면서 항상 빚지는 마음이다. “기사 잘 봤다”라거나 “기사를 써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제가 감사하다”고 대답하는데, 100% 진심이다. 담당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물어 기사를 쓴다. 대체로 기자는 그들에게 받은 조각을 모아 조립한다. 잘 정돈되고 벼려진 조각을 받으면 감사한 마음으로 기사에 담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단에 내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넣는다.

지난달 21일 직장폐쇄 50일 차를 맞아 달성군 유가읍의 조양 공장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대구지부 결의대회’ 현장 취재를 다녀왔다. 사측의 노조 탄압에 맞서 24명의 조양·한울기공 노동자는 매일 회사 앞 선전전과 노동청 앞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를 여러 번 썼지만 유가읍의 조양 공장에 간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항상 그렇듯 여러 명에게 빚을 졌다. 자차가 없어서 왕복길을 민주노총 대구본부, 금속노조 대구지부, 진보당 대구시당의 도움을 받았다.

현장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공장 입구 출입문에 붙은 ‘직장폐쇄 공고문’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비가 내려 코팅된 공고문이 젖어 있으니, 근처에 있던 조합원이 손으로 빗물을 닦은 뒤 옆으로 비켜섰다. 흐릿하던 공고문이 뚜렷해졌다. 사실 이미 다 찍었는데 좀 더 열심히, 몇 장 더 찍었다. 분회장의 안내를 받아 자료사진용으로 공장 전경과 노동조합 사무실 입구도 찍었다. 결의대회가 시작하자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천막 안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기사를 썼다.

현장을 벗어나 기사를 출고하고 한숨 돌리니 일곱 문단의 짧은 기사를 쓰기까지 받은 도움들에 마음이 무거웠다. 분회장을 붙들고 진행상황을 물었는데, 사실 조합원 개개인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기사에 넣을 사진을 고르면서는 200여 명 결의대회 참석자, 조양·한울기공 노동자들 얼굴이 다 담기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항상 이런 빚진 마음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조양·한울기공 사측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양한울분회가 파업에 돌입한 지 하루 만인 지난 5월 3일 직장폐쇄를 공고했다. 오늘로 두 달째이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사측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교섭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있다. 처음 기사를 쓴 5월 초만 해도 직장폐쇄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편집장은 “아사히글라스 경우처럼 장기화될 수 있으니 계속 챙겨라” 매주 편집회의 때마다 독촉했는데, 솔직히 처음엔 ‘공장 규모가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주요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지점까지 꾸준히 취재해야 한다는 것을 이젠 알겠다.

공장 앞에서처럼, 빚지는 마음이 쌓일수록 많은 조각을 모아야겠다 생각한다. 회사 측 주장을 촘촘하게 검증한다거나 판례를 살펴보고 노동청 입장을 물어볼 수 있다. 산업구조 속에서 회사의 대응을 분석한다거나 정부의 노동조합 탄압이 소규모 사업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살펴볼 수도 있겠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모두 빚지고 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