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대구혐오’라는 안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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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오만한 통치자들이 참사와 실정(失政) 때마다 기만적인 환약(丸藥)을 제공하는 맹목(盲目)의 환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8월 9일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열린 시국기도회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구시국미사추진위원회, 윤석열심판대구시국회의, 대구경북대전환연대(준)이 발표한 성명서 중 일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대구에서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사진=정용태 기자)

민주노총 산별노조 위원장이었던 이는 대구 시국기도회 참석을 앞두고 본인의 SNS에 “오늘 나는 내가 정말 가고싶지 않은 도시, 대구에 간다”며 “대구와 경북은 보수가 아니라 #정치양아치 들의 힘의 원천이고 몰상식하고 무도하기 짝이없는 패거리들에게 자양분을 제공하는 #지역패권주의자들의 엄마속 자궁과 같은 곳”이라고 썼다.

시국기도회 성명과 당일 발언에서 ‘보수의 심장’이라는 수식이 여러 번 등장했다. 보수정당 정치인이 자주 호명하는 ‘보수의 심장’이라는 수식을 반대쪽이라는 사람도 그대로 쓴다. 인구 230만 명이 넘는 대구가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되는 연유는 한 가지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정당이 모든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다른 후보보다 윤석열에게 더 많은 득표를 보냈다는 이유다.

그 결과 국민의힘을 찍지 않은, 선거 때마다 선택지를 바꾸는 20~40% 대구 시민의 존재는 지워진다. 승자독식, 1인 다수대표제가 가진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꾸는 것보다 결과를 두고 판단하는 편이 훨씬 손쉽고 안락하다.

대구를 바꿔야 한다면서 ‘보수의 심장’이라는 수식을 그대로 쓰는 연유는 무엇인가. 대구라는 샌드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라는 괴물과 대항해서 싸워야 하는 비상한 시국인데 어찌 윤석열에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고난의 현장에 가서 한판 하고 왔다는 증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대구에 대한 낙인, 혐오에 불편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우선 순위가 아니다. 대구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과 변화에 관심을 갖기보다 토양의 척박함을 강조하는 게 안락한 일이다.

대구 밖 사람들만 ‘대구혐오’라는 안락함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가 국가적 차원의 문제에만 적극 나서는 이들도 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200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강서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 후 남긴 말이다. 2020년 대구 수성구갑 총선에서 패배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같은 말을 남겼다. 시국을 바꿔보겠다는 운동세력이 ‘보수정당’을 때리기 위한 샌드백으로 대구혐오를 발산하는 게 가끔 있는 일이라면 그럴 수 있다. 다만, 사회를 바꾸겠다는 운동세력의 ‘대구혐오’가 일상이라면 그건 안락한 정치적 선택일 뿐이다.

대구에는 지방행정 감시, 노동, 환경, 복지, 장애 등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부단히도 주변 이웃과 만나 조금 더 나은 대구를 고민한다. 12~13일 이틀 동안 <뉴스민>과 언론노조 대구경북협의회, 성서공동체FM이 진행한 ‘커뮤니티 저널리즘 스쿨’에 17명의 청년이 참석해 지역문제를 고민하고 해법을 위한 취재기획안을 만들었다. 또, 노동, 장애, 마을, 의료 분야 활동가 5명은 지역 문제 탐색을 위한 기회를 제공했다. 대구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이든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