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청년여성 노동자의 삶 ‘인스타툰’…”우리는 일하는 페미니스트”

대구여성노동자회, '2023 인스타툰 전시회'
6인의 작가들이 그려낸 '여성청년노동자'의 삶의 모습들
"공론화를 통해 사회에 균열 내길", "우리 모두의 이야기"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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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너무 추해요”
“아 정말 화나요! 노동자의 인권이 지켜지는 세상 언제 올까요 ㅠㅠ”
“아 정말 싫다, 관리자가 왜 있는 건지, 도대체 그 역할은?”
“토닥토닥, 응원합니다”
“대구지역 디지털성폭력 상담소 전화번호 053-215-XXXX”

간호사로서 일하면서 겪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인스타툰(인스타그램+웹툰: 인스타 업로드 형식에 맞춰 그린 만화)으로 그린 ‘묵은지(활동명)’ 작가의 작품에 남긴 관람객들의 소감이다.

15일 오후 7시 대구 서구에 위치한 대구여성노동자회에서 ‘작가와 대화’가 진행됐다. 대구여성노동자회는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인스타툰으로 전하는 청년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전시회를 했다. 올해는 지난 13일부터 3일간 ‘우리들은 일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관련기사=“일상적 외모 평가 만연” 웹툰에 담은 ‘90년대생 대구 여성노동자’(‘23.09.15))

▲ 대구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인스타툰 전시회에서 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청년여성 노동자 6명은 이름과 신상 정보 대신 각자 개성을 드러내는 ‘묵은지’, ‘옥수수’, ‘토리’, ‘햄식이’, ‘오하’, ‘제이지’ 활동명을 통해 ‘청년·여성·노동자’로 겪는 현실을 전했다. 이들은 노동이력 쓰기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인스타툰 제작 강의를 통해 전시회를 준비했다.

김수현 대구여성노동자회 활동가는 “인스타툰 제작에 앞서 각자가 생각하는 노동과 페미니즘, 노동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큰 소리 내기, 거절하는 방법, 위기 상황 시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일터와 일상에서 당당하게 대응하는 힘을 훈련했다”면서 “이런 프로그램 및 전시회가 우리의 삶과 노동이 잊혀지지 않고, 곳곳에 알려져서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하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묵은지’ 작가는 인스타툰을 통해 “아직 직장에서는 햇김치에 불과하지만, 언제가 묵은지가 될 때까지 버텨보고 싶다. 험난한 앞길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살아남겠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몸이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한다. 아픈 와중에도 성희롱, 성추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음란영상을 대놓고 시청하거나, 불법촬영, 팔 주무르기, 껴안기, 외모 품평도 한다”고 밝혔다.

‘묵은지’ 작가는 그런 성희롱·성추행을 겪었을 때, “당황스럽고 바쁜 상황이라 넘어갈 때가 많았다”며 “병원 측에 말을 해도 ‘알아서 조심하라’면서 적극적인 조치는 없었다”고 씁쓸함을 밝혔다. 작가는 “스스로 강하게 대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인스타툰을 마무리 했다.

▲ ‘묵은지 작가’의 인스타툰. 병원 간호사로서 겪은 성희롱·성추행 경험과 그때 느낀 감정과 다짐 등을 표현했다.

그 외에도 육아를 하는 전업주부로서 고충(‘제이지’ 작가)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겪은 성희롱 경험(‘햄식이’ 작가), 영양사로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유리천장(‘옥수수’ 작가) 경험, 여성들의 비밀스러운 정혈(精血)(‘오하’ 작가), 귀갓길에 느낀 공포(‘토리’ 작가) 등이 인스타툰 작품으로 탄생했다.

배현주 대구여성노동자회 정책국장은 “지난해 전시회에서도 일터에서 겪는 일상적 성희롱 문제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나왔다. 관람객들이 공감한다는 반응을 많이 남겨주셨다”며 “이런 전시회를 통해 공감을 얻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드러내고 말하기, 또 공론화를 통해 그런 잘못된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이날 작가와 대화에 참여한 강한솔 씨는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남학생들은 경쟁, 여학생들은 협동 중심의 교육·놀이를 경험했던 것 같다. 건강하게 싸우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며 “(인스타툰 작품들이) 각자 개인의 이야기를 했지만,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풀뿌리처럼 꺾이지 않고, 다들 잘 싸워나갔으면 한다. 언제나 서로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소감을 남겼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