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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눈에는 그 지역 정주민이 보지 못하는, 겪지 못하는 일들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 땅에 진정으로 속하지 못한 사람, 출생국에서도 모국에서도 이방인인 디아스포라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어떨까.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 한인 2세인 고찬유(76) 감독은 일본에서 꾸준히 민족 문제와 이주민 차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12일 오후 6시 30분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경북대학교에서 고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는 인간이다!>(2022) 상영회가 열렸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우리는 인간이다!> 상영회에는 감독과의 대화 자리도 이어졌다.
정석 다큐멘터리의 문법을 따라가는 이번 영화는 일본 사회가 다민족 공동체가 된 기원을 추적하면서 시작한다. 고 감독은 재일 한인을 포함해 일본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적 정책은 1910년 한일합병의 영향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여기고 이를 영화 전반부에 제시한다. 일본은 재일 외국인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인을 이웃이 아닌 지배 대상으로 여기며 제도를 설정했고, 패망 직후에도 일본은 외국인등록법, 출입국관리령 등 제도를 통해 조선인에 대한 억압적 정책을 펼쳤다. 고 감독은 세계화 흐름 속에서 일본도 민족 구성이 다양해진 상황에서도 일본이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정책을 고수하는 기원이 조선인 차별에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얼굴은 조선인들이다. 조선인이 운영하던 각종 학교에 대한 차별과 지원 종료 문제 등 조선 민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이 전달된다. 그다음 등장하는 얼굴은 스리랑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계 이주민이다. 일본이 부를 축적하면서 위험하고 힘든 일자리를 ‘기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다민족으로 구성된 이주민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다음 얼굴은 이들을 대하는 일본 사회의 모습이다. 영화에서는 이들이 일본 사회에서 겪은 날것 그대로의 폭력을 보여준다. 동남아시아계 이주민에게 면전에서 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본인, 이주민을 짐승 취급하는 출입국 직원의 행동도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 집회에서 등장하는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는 당시 일본 사회 배외주의의 상징처럼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이주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일본인들의 얼굴도 조명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얼굴이 전환되면서, 애초 발단이 된 조선인 ‘민족’과 관련한 문제의식은 다민족 이주민 전체의 인권과 노동권 문제로 전환된다. 그러면서 ‘민족’의 경계도 맥거핀처럼 흐려진다. 그 대신 다양한 얼굴의 이주민들의 외침이 선명해진다. 그들은 출입국 직원에 의해 수건을 물고 수갑이 채워져 시름하다 질식사하고, 보호소에서 직원 8명에게 둘러싸여 폭행당하고, ‘초콜릿 케이크가 먹고싶어요’라고 편지를 보낸 다음 보호소에서 죽는다. 그들은 “와타시타치와 닌겐다!(우리는 인간이다!)”라고 외친다. 보호소에서 죽은 언니의 동생은 영화 말미에 “언니는 동물처럼 취급받고 살해당했어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지 모르겠어요”라고 호소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인간이다’라는 말이 단지 휴머니즘을 호소하는 외침으로만 들리지 않게 된다. 타인을 적대시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가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개인 ‘인간’의 얼굴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숨기고 싶던 ‘조선인’ 정체성···조선인 선배 만나며 변화
1998년, 재일동포 차별 다루는 신문 발행하며 문제의식 벼려
전 세계 다니며 재외동포 만나고, 다른 외국인 차별까지 확장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일터를 찾아 오사카에 오면서, 고 감독도 1947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했으며, 아들에게 특별한 민족 정체성 교육도 하지 않았다. 고 감독에게 ‘조선인’이란 숨기고 싶은 정체성이자 자기혐오를 유발하는 것에 불과했다. 일본 이름을 썼고, 자기주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한 조선인 선배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그 선배로부터 조선의 역사, 재일동포의 비참한 역사와 현실을 듣고서는 조선인 차별 문제를 일생일대의 과제로 삼기로 했다.
조총련 계열인 조선대에 입학한 후 한국말을 배우고 여러 작법을 배운 다음 고 감독은 1988년부터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일동포 차별을 이야기하는 매체가 없어 직접 뛰어들게 된 것이다. 오사카에서 조선인에 대한 인식은 술만 먹고, 돈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천민의 모습이었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동포는 그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면서 ‘차별’에 대해 더 깊은 의문을 갖게 됐다.
조선적이라 해외 출국이 어려웠지만, 다른 나라의 동포들도 차별을 받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회가 닿는대로 연변, 미국 뉴욕, 소련 카자흐스탄을 다니며 재외동포를 만났다. 고 감독은 이들을 만나면서 재일동포의 특수성은 다른 재외동포와 달리 국가가 나서서 차별적 제도를 조장하고 억압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여기게 됐다. 그 점에서 고 감독은 일본에 사는 다른 외국인에 대한 억압으로까지 관심사를 넓히게 됐다.
“조선인 대상으로 만든 차별 제도가 다른 외국인에게도”
“개인으로서 일본 사람보다 국가, 제도가 조장하는 차별”
“홍범도, 이슬람 사원 문제에서, 재외동포 겪는 차별과 닮은 점 봐”
“일본에서 100명 이상의 외국인들을 취재했어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조선인에 대한 특수성도 있었지만 외국인들도 똑같은 차별을 당하는 제도의 문제를 확인했어요. 조선인을 대상으로 만든 차별적 제도가 다른 외국인에게도 적용된 거죠.”
고 감독은 그 점에서 조선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함께 해소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답을 내렸다. 다른 이주민의 권리 위에 조선인이 있다면 그 또한 차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에 존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보이게 됐다. 또한 그들에 대해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외국인 정책과 일본 사회의 얼굴도 보이게 됐다. 고 감독이 성찰한 일본 사회의 모습은 세계화에 앞서나가는 듯하면서도 인권 감각과 특히 역사 왜곡 문제에서 뒤처지는 사회였다.
“일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성이 없는 건 물론,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아요. 현대사에 대한 교육이 부족해요. 시험도 보지 않죠. 문제는 좀더 복잡해요. 제가 이번 작품 전에도 인권과 관련한 다른 작품을 제작하면 ‘일본 사람이라서 부끄럽다’는 감상도 접해요. 그런 면도 있겠지만 ‘국가’가 중요해요. 국적과 민족 문제가 아니라 인간 권리의 문제이고 같은 시민끼리 손을 잡아야 하죠. 하지만 제도나 국가가 배외주의를 조장하기도 하고, 언론 또한 왜곡에 뛰어드는 잘못도 하고 있죠. 헤이트 스피치에서 시작해 지금 시대는 여러나라 지도자들 조차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고 있어 무서운 시대가 된 거 같아요.”
고 감독은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이주민에 대해서도 관심을 키우게 됐다. 그러면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경북대 인근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도 접했다. 고 감독은 이러한 사건이 세계가 직면한 폭력의 시대 징후이며, 그래서 혐오와 차별의 속성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는 홍범도 장군 논란이나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에서 차별의 속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돼요. 항일투쟁을 훌륭하게 하신 독립운동가를 당시 항일운동 진영을 지적하며 배격하는 건 온당치 않죠. 이성이 작동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슬람 사원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이질감, 공포를 사회가 자극하고 언론이 부추겨요. 저는 그 사건들에서 재일동포들이 겪는 차별 문제와 닮은 점을 봤어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일본 사람들은 조총련 계열이든 민단 계열이든, 남북한 출신과 무관하게 조선인을 싸잡아서 혐오하죠.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차근차근 전말을 따지고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 없어요. 그냥 그 사람들이 싫은 거예요. 그게 혐오차별의 본질이에요.”
고 감독의 성찰은 그대로 영화에 녹아들었다. 고 감독은 일본 사회의 제도적 폭력을 시민들이 직면할 수 있도록, 보호소 내 극단적인 폭력 사태까지도 고민 끝에 영화에 담았다. 하지만 그 폭력의 모습은 ‘일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 담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 전반에 이르는 동안, 이주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파하며,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의 보통 사람들, 그리고 법률대응과 전문적 활동을 함께하는 법률가들과 활동가들의 모습이 비중 있게 다가온다.
고 감독은 미등록 이주민 수용소의 현실을 강조하며, 차별적 정책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맺었다.
“제가 확인한 수용소의 현실은 말이나 글로 설명을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상상을 초월하는 폭행 장면을 공개할지 고민했으나, 증언과 현실을 공개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싣게 됐어요. 특히나 위시마 씨가 수용소에서 사망하고는 빠르게 영화 제작을 마쳐야 한다고 생각해 박차를 가했죠. 영화가 공개되자 캐나다, 핀란드 등 해외에서 반향이 있어요. 저는 이 영화를 문학으로 여기고 만들지 않았어요. 차별 정책을 바꾸기 위해 도움이 되고 싶어 만들었어요. 한국에서도 그런 흐름에 도움이 됐으면 해요.”
영화 상영 문의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02-322-5778)이나 고찬유 감독 이메일(kochanyu@hotmail.com)로 하면 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