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3)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LG트윈스와 녹색당

11:05
Voiced by Amazon Polly

[편집자 주=허승규 전 녹색당 부대표는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13일 간 독일로 생명평화기행을 다녀왔다. 독일은 녹색당이 연립정부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한국의 녹색당 정치인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독일 역시 최근 극우정당 지지율이 20%를 넘기도 한, 완벽한 사회는 아니다. 2주 동안 허승규 부대표가 경험한 독일의 모습과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를 매주 연재한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 경북 녹색당 정치인에게 독일은?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2) 프랑크푸르트 지하철역에서 만난 반려동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3) 녹색당은 하루 아침에 집권한 게 아니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4) 에베르트 재단에서 느낀 여당의 무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5) 녹색당 위르겐 트리틴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다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6) 보행자가 살기 좋은 베를린의 풍경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7) 베를린에서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를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8)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다짐한 소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9) 재자연화 이자르강 생태탐방과 4대강 사업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0) 녹색당 도지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1)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집회
[허승규의 독일생명평화기행] (12) 바덴뷔르템베르크 녹색당 주의원을 만나다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와의 간담회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와의 간담회

슈투트가르트 마지막 일정은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와의 간담회였다. 머리가 희끗한 4명의 어르신(?) 활동가들은 각각 대변인, 사무국장, 대외협력, 공학 자문 역할을 맡고 있었다. 기행단은 사전에 공유받은 간담회 진행안에 놀랐다. 2시간에 걸친 간담회 진행안은 무려 22가지 항목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2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한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21 반대(이하 21)운동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뿐더러, 며칠 뒤면 머나먼 한국으로 돌아갈 한국인들에게 정성껏 간담회를 준비한 백전노장 활동가들을 보니 점심식사 이후 식곤증을 어떻게든 뿌리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와의 간담회 [사진=생명평화아시아]

21 반대 단체는 매주 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격주 화요일마다 논의를 이어오고 있었다.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활동한다. 666번째까지 이어온 집회를 진행하고 조직하는 그룹과 내용에 집중하는 그룹으로 나뉜다. 내용에 집중하는 그룹은 언론 대응, 법률 자문, 캠페인 등의 업무를 진행한다. 열정적인 활동가들은 2시간 동안 21 반대의 역사와 문제점, 대안을 풍성한 자료들과 함께 설명했다. 아래 내용은 간담회 기록과 관련 자료를 참고하여 재구성했다.

슈투트가르트 역은 애초에 종착역으로 설계되었다. 열차가 한 쪽 방향으로 진입했다가 다른 쪽 방향으로 돌아 나가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에서 대규모 열차가 빠르게 이동하기 어렵다. 종착역을 지하화해서 플랫폼으로 만드는 방안은 기술적인 필요보다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추진되었다.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 교통을 연결할 필요성, 유럽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교통 거점의 필요성, 콘크리트 터널 산업의 경제적 이익, 지상 부지를 판매해서 얻게 될 부동산 수익 등 여러 배경으로 ‘21’은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선 기차가 통과할 수 있는 배선을 지닌 지하역 건설이 필요했다.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선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기각되었고, 슈투트가르트에서 추진되었다. 1994년경 슈투트가르트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나왔고, 1999년에 2008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본격적인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현재 2025년 완공 목표지만 그때까지 공사를 마칠 지는 회의적이다.

슈투트가르트 21 개발 사업과 도시의 지속가능성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개발 사업은 없다. 모든 개발 사업에서 중요한 쟁점은 개발로 인한 이해관계가 어떻게 되는 지다. 개발로 인해 얻게 될 이익은 누가 보는지, 피해는 누가 입는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살피고,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야 하는 것이다. 21 반대 측은 개발로 인한 문제점에 주목한 단체다. 21 사업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먼저 21 사업은 슈투트가르트 내의 녹지 공간 훼손을 수반한다. 분지 지형인 60만 인구의 슈투트가르트에서 대기 오염 방지를 위해 녹지가 많이 필요하다. 21 프로젝트를 하면 철도망을 따라 수백 년간 조성된 녹지 훼손 우려가 있었다. 공공기관 연구 결과 녹지 축소로 인한 홍수 등의 위험 요인이 증가하고, 공사로 인한 추가적인 안전 문제도 발생한다. 인구 60만이라는 규모도 주요 변수다. 60만이 적은 인구는 아니지만 수백만이 거주하는 메트로폴리탄(거대도시) 규모도 아니다. 인구 60만 도시에 대규모 신규 지하역사가 적절한지, 과한 규모는 아닌지 충분히 따져볼 수 있는 쟁점이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 되면 주거 및 상가 부지 가격이 오른다. 임대료 상승도 따라온다. 기존에 살던 이들 중에 세입자나 서민들은 거주가 힘들어진다. 특히 오랜 역사를 지닌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심 역사 경관 및 문화재 보존에 관한 쟁점도 드러났다.

이외에도 기후·환경 관점에서 공항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이 타당한 것인지, 지하철을 피해서 지하 기차 지나는 구간을 경사지게 만든 문제점과 화재 안전 문제점 등 여러 쟁점을 짚어주었다. 21 공사 내용적인 문제점과 함께 절차적인 문제점도 짚었다.

2010년~2011년도 즈음 가장 반대가 심했다. 300년 넘는 나무가 잘려나갔고, 반대 여론은 심화되었다. 2010년 9월 30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물대포가 등장한 과잉진압이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시력을 잃었다. 바덴주 집권당인 기민당 주총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고, 전국적인 시위와 연대가 이어졌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와 21반대 여론에 힘입어 녹색당은 사민당과 연정으로 바덴주에서 집권하게 된다. 문제는 녹색당 집권 이후 주민투표 결과 공사 추진 의견이 높았고, 녹색당 주총리는 ‘민주주의에서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수가 중요하다’는 말을 남기며 주민 투표 결과에 승복한다. 주민 투표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을까?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와의 간담회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와의 간담회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슈투트가르트 21 주민투표의 딜레마

21 반대 단체 활동가들은 주민 투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주민 투표 당시 제공된 정보와 실제 진행된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먼저 용량 증설 내용이 달라졌다. 지하 플랫폼은 16개에서 8개로 줄었다. 예산 지출도 처음 계획된 규모보다 수억 유로가 늘어났다. 무엇보다 주민 투표의 내용은 21 찬성과 반대가 아닌, 바덴뷔르템베르크주가 21 프로젝트에 참여할지, 재정 지출 여부에 관한 투표였다.

과반이 안 되는 40% 정도의 주민이 참여한데다가, 슈투트가르트 21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다. 재정 지출 여부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세부적인 공사 계획에 대해선 열려있다고 볼 수도 있다. 21 반대 단체에서 절충안을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여하튼 선출된 녹색당 주정부 입장에선 주민투표 결과를 외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기행단에서 녹색당과 기민당 연립 정권과의 소통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집권 초반에는 대화가 있었지만, 현재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21 반대 단체 활동가들은 녹색당 주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현재 녹색당은 기민당과 흑녹연정을 하고 있다. 기민당은 녹색당 집권 이전에 21 공사를 추진했던 정당이다. 연립 정권과 맞물려 바덴주 녹색당의 정치적 한계를 21 반대 단체 활동가의 이야기에서 나왔다. 이와 함께 여전히 21을 반대하는 녹색당원들과도 함께 활동을 한다고 했다. 활동가들의 너그러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21 반대 단체에서 대안을 제시했다. 이미 진행된 터널 공사를 다시 원상 복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진 지하 터널은 화물 수송 용도로만 쓰고, 기차 운행은 기존 지상역에서만 하는 방안이다. 앞서 말한 지하 구간의 경사도 문제와 안전성 문제를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일부 공사 구간을 축소할 수도 있는 방안이다. 대안의 현실성은 추가로 검토해봐야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고려할만한 방안을 고민하고 제시했다는 점은 아직 21 반대 활동이 끝나지 않은 활동이며 현재진행형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한국 사례를 들며 추가 질문을 했다. 대규모 개발 사업 이후 주민공동체가 파괴된 사례가 있는데 슈투트가르트는 어떠한지 물었다. 실망한 이들, 포기한 이들이 많지만 여전히 주민공동체는 유지된다고 했다. 21 반대 단체가 구심적인 역할을 하는 듯 했다.

한편 21 반대에 청년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물었다. 집회에서도, 간담회에서도 중장노년층 시민이 다수였다. 21 반대 초창기에는 젊은이들이 참여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 운동이 길어지면서 청년들의 참여가 줄었다. 특정 지역 기반의 반대 운동에 정주성이 낮은 청년들이 10년 이상 꾸준히 결합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청년들의 참여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청년 비율이 높은 한국 기행단이 더욱 반가웠으리라 생각했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사진=생명평화아시아]

영원한 패배는 없다. LG트윈스와 한국녹색당

현재 공사가 한창 중임에도 여전히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운동을 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녹색당의 시간이 생각났다. 나는 2015년 3월 2일, 녹색당에 입당했다. 이후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 2022년 지방선거까지 6번의 공직선거를 경험했다. 최에 열린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까지 치면 7번이다.

2번의 대선에서 녹색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이른바 ‘기권’이다. 2번의 총선에서 나는 각각 지역구 선본과 전국당 선본에서 일을 했다. 2번의 지방선거에서 안동시의원에 출마했다. 녹색당 입당 9년차 수차례 선거에서 회계책임자부터 후보까지 다양한 역할을 경험했지만 아직 선거에서 승리해본 경험은 없다.

비록 선거 승리의 경험은 없지만, 정치적 효능감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2016년 총선은 말 그대로 ‘졌잘싸’ 선거였다. 0.76%로 원내진입에 실패했지만, 동물권·탈핵·기본소득·미세먼지 등의 의제는 많은 주목을 받았고, 추후 기성정당들도 일부 정책을 반영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 당원이 늘어나서 창당 이래 가장 많은 당원수를 기록했다. 녹색당 전성기(?)에 나는 전국사무처 조직팀장으로 입사했고 직장 생활을 보냈다. 입사한지 3개월 만에 1만 당원을 돌파했다. 그때부터 녹색당은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선거 승리 외의 정치적 효능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태주의와 지구적 평화 및 연대를 지향하는 녹색당의 가치에 반했고, 전국 곳곳에서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생태적 가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원들에 반했다. 한국 정당 당가 중에 가장 아름다운 녹색당가도 한몫 했다. 2018년과 2022년에는 직접 안동시의원 후보로 나섰다. 비록 낙선했지만 각각 16%, 18% 넘은 득표율을 얻었고, 국민의힘 일당 독점 구조인 안동시의회 선거판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특히 2022년엔 거점 지역인 동네에서 1등을 했다. 녹색당도 아래에서부터 노력하면 거대양당을 밀어내고 시민들의 지지를 모아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수많은 당원들과 비판적인 지지자들 대부분 녹색당에 대한 아쉬움은 크다. 2012년 녹색당 창당의 소명이 무엇이었던가. 반생태적인 기성정치를 교체해서 녹색정치를 실현하고, 녹색 가치를 사회 곳곳에 스며들 수 있게끔 정당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창당한 것이 아닌가. 2023 녹색당 당원 의식조사 결과, 녹색당 강령에 있는 ‘반(反)정당의 정당’을 당원의 74.4%는 ‘기존 정당과 구별되는 정당’으로 이해했다. ‘정당 정체성을 거부하는 사회운동’으로 이해한 당원은 25.6%다. 물론 ‘이해’와 ‘동의’가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고, 당원들의 여론을 종합하면 사회운동의 정신을 담아, 반생태적인 기존 정당과 구별되는 대안정당으로서 녹색당의 정체성을 이해해야할 것이다. 지역과 중앙에서 입법권력과 집행권력을 교체하고 녹색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창당 정신과 소명을 다시 새겨본다.

한국녹색당이 창당한 2012년 전후로 슈투트가르트 21 공사가 시작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21를 반대해왔고, 지금 시점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21 반대 단체 활동가들은 패배한 것일까? 21 반대 단체가 있었기에, 찬성과 반대로만 환원할 수 없는 쟁점들을 바덴주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고려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추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바덴주에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1 반대 단체는 21 프로젝트 자체를 막지는 못 했지만, 바덴뷔르템베르크와 슈투트가르트가 지속가능한 녹색 지역이 될 수 있도록 도심 녹지와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한국녹색당은 2012년 창당 이래로 모든 공직선거에서 승리하진 못 했지만, 녹색을 전면에 내건 정당으로 한국 정치 생태계에서 존속해왔다. 영원한 패배는 없다. 언젠가 승리의 순간이 온다. 지난 11월 13일, 한국 프로야구 구단 LG트윈스는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한국녹색당은 LG트윈스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해본다.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단체 활동을 보면서 한국의 녹색정치에 대한 열의를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서로에 대한 격려를 나누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이제 녹색 도시 프라이부르크로 이동하기 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으로 향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