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첫 번째 졸업식, 첫 번째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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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 인생 첫 번째 졸업, 유치원 졸업식. 그게 뭐라고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가 대견해서, 이제까지 키운 스스로가 대견해서 며칠 전부터 습관적으로 울컥 목이 메왔다. 건수만 생기면 울려고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아이도 선생님, 친구와 이별이 아쉬운 듯, 졸업하기 싫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아쉬움의 징표일까? 아이는 친구들에게 ‘OO에게’ 시작해서 ‘사랑해’, ‘고마워’, ‘친하게 지내자’ 삼단콤보에 이어 ‘OO 올림’으로 끝나는 애정 가득 편지를 한 아름 받아왔다. 마치 나 어릴 적 ‘To OO’으로 시작해 ‘From OO’으로 마치려다 ‘PS’로 끝을 장식하는 편지처럼 구성이 다들 비슷했다. 그리고 대망의 졸업식. 넓어 보였던 유치원 강당은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로 만원을 이루었다.

아이 사진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찍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평소에는 피했던 맨 앞자리부터 차곡차곡 채웠다. 유치원 원장님이 학부모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동안 학사모를 쓰고 학사복을 입은 아이들이 입장을 앞두고 있다. 드디어 소개와 함께 위풍당당 입장한다. 박수가 터지고 저 멀리 딸아이가 보인다. 장하다, 우리 딸! 어차피 울려고 작정했던 졸업식 아니던가. 박수치는 동안 또 뭉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렇게 세 개 반 70여 명의 아이들이 입장했다. 첫 순서는 국민의례다. 국가공식 행사도 아닌 일개 사립 유치원 졸업식에 국민의례를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군 생활 시절 패기와 기상으로 힘차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제창했다. 아이 졸업식에 비협조적인 삐딱한 아빠가 되어 “글쎄 연수 아빠가 말이야…”같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어진 졸업식 하이라이트, 빛나는 졸업장 수여식. 찰나를 놓칠세라 핸드폰 카메라를 켜놓고 언제 불릴지 모를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슬슬 지겨워진다. 7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일일이 나와서 받는 바람에 시간이 늘어지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긴장이 풀리고 감동이 살짝 달아난다.

나오는 순서도 다닌 햇수가 3년, 2년, 1년으로 구분된 것 말고는 일정한 규칙 없이 그야말로 랜덤이다. 무대에 수차례 아이들이 오르내리고 한참을 기다리다 지쳐가고 있을 때, 드디어 우리 아이 이름이 호명됐다. 누가 뭐래도 사진 찍는 타이밍. 졸업장을 받는 내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덕분에 사진 몇 장을 건졌다. 하지만 길어도 너무 길다. 아이도 부모도 지쳐간다. 다음부터는 졸업장은 각 반별로 미리 나눠주면 좋겠다 싶다.

산만한 졸업장 수여가 끝나고 본격적인 기념식이 진행됐다. 졸업하는 아이들의 송사에 이어 아이 특유의 높낮이가 숨넘어갈 듯한 6세 반 동생들의 답사(왜 읽을 때 ↗↘ 계속 반복되는 것 말이다.)와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합동 오카리나 공연과 이제는 마지막이 될 유치원가를 다 같이 부르고 나니 졸업식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엄마아빠를 울리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순서, 노래 ‘엄마아빠께’ 합창이 시작됐다. 이 노래는 아마도 그 옛날 우정의 무대 ‘그리운 어머니’(엄마가 보고플 때~ 그 노래 맞다.)에 맞먹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명곡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노래하는 동안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고, 카메라와 휴대폰을 든 손은 떨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만 없었다면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노래인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가? 이쯤에서 함께 노래 ‘엄마아빠께’의 2절을 되새겨보자.

바다가 파도치는 건 항상 부지런하란 의미죠
바람이 불어오는 건 늘 새로우라는 의미죠
아빠 제가 평소에 말씀을 안 드렸지만 아빠는 제게 바다이고 바람입니다
부지런함을 보여주시고 새롭게 만들어 주시잖아요 아빠는 바다이고 바람입니다
가끔씩 제가 아빠 속을 썩혀드려서 아빠가 저 몰래 한숨 뱉으실 때면
그거 아세요 한숨지며 저도 울어요 하지만 아빠 이 다음에 제가 어른이 되면
아빠의 밝은 눈이 영리한 귀가 되드릴게요
아빠 모시고 영화도 보고 산보도 함께 할게요
아빠는 바다이고 바람이세요

다소 애늙은이 같은, 기존 동요보다 동심이 느껴지지 않는 노래지만 원래 억지스러운 신파에 눈물은 더 나는 법이다. 더욱이 졸업식장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생각해 보라. 힘든 육아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이를 키우는 처지라면 한 번 찾아서 들어보길 권한다.

그렇게 졸업식을 마치고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과 기념촬영까지 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막상 졸업식이 끝나고 나니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곧 입학할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크다. 하나를 끝내면 또 하나가 시작되는 법이다. 그리고 졸업식 당일 저녁, 아내는 아이의 유치원 친구 중에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엄마들과 술을 한잔(아니 여러 잔. 폭탄주 말아서)하고 엄마들과 언니, 동생 먹었다. 덕분에 나는 팔자에 없는 형부가 됐다.

술자리 이후 본격적인 입학 준비에 들어갔다. 엄마들의 단톡방에서는 근황 토크와 정보교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입학 후 아이들에 대한 대책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워킹맘 엄마는 ‘낄끼빠빠’ 하며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잘 어울리려고 애를 쓴다. 그 틈에 나도 같이 묻어갈 작정이다. 그리고 학모회 회장이 줬다는 최신정보를 통해 우리 딸이 1학년 3반에 배정되었다는 것까지 파악했다. 다행히 유치원 친한 친구가 같은 반이다. 떠올려 보면 친구와 같은 반이 되는 것과 무서운 선생님을 피하는 게 학교생활의 전부였는데 첫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

졸업식이 끝나고, 오늘은 첫 번째 입학식이다. 평소 커 보이던 아이가 아이들 속에 있으면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다. 어색한 듯 돌아보는 아이에게 눈을 한 번 찡긋하고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작게 외칠 것이다. 시작은 누구나 어렵고 어색하다.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도,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연수야, 노래처럼 아빠가 바다이고 바람이 될 테니 조금씩 더 넓은 세상으로 닻을 올리고 나가보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어야 또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니까. 아빠가 우리 딸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