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올 것이 왔다, 세상 모든 부모를 떨게 하는 방학

조금만 신경 쓰면 잊지 못할 추억 하나는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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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부모를 덜덜 떨게 하는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는 방학이 왔다. 아이들은 신나고(사실 잘 모르겠다. 친구랑 노는 게 제일 좋을 때 아닌가?) 부모는 걱정 태산인 여름방학이 오고 말았다. ‘도대체 학생도 아닌 애들이 무슨 공부를 쉰다고 방학이야’ 하는 원망도 잠시, 폭염에 지친 선생님과 아이들을 생각한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하다. 한 달 전부터 방학 스케줄이 어떻게 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막상 닥치니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이 방학할 때 부모도 같이 방학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육아에 ‘쉼’이란 없다. 방학계획을 세우다 만만치 않은 현실에 고민은 점점 깊어만 진다. 도대체 ‘방학’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하아…

첫째 아이 유치원의 공식적인 방학은 3주다. 하지만 아예 문을 닫는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거의 모든 집에서 아이들을 보낸다. 불행 중 다행이다. 둘째 아이 어린이집도 ‘자율등원’이라 쓰고 ‘방학’으로 불리는 방학이 있다. 물론 선생님은 “아버님 보내셔도 돼요. 당직 선생님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선생님은 돌아가며 휴가를 가고 썰렁한 교실에 덩그러니 우리 아이만 놀고 있을게 보나마나 뻔하다. 아이에게 할 짓이 아니다. 결국,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다. “휴가 잘 다녀오세요. 저희가 볼게요.”

기왕 맞이해야 할 방학이라면 기간이라도 딱딱 맞으면 얼마나 좋겠나? 공교롭게도 첫째 녀석의 유치원 방학과 둘째 녀석 어린이집 방학은 교집합이다. 첫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둘째는 목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각각 일주일씩이다. 결국, 열흘을 애들과 보내야 한다. 부모 중 누구 하나라도 방학 동안 휴가를 여유 있게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휴가도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이마저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방학이면 아빠가 보든, 엄마가 보든, 누구에게 맡기든 간에 아이 맡기기 전쟁이 시작된다.

일단 서로 일정을 스캔한다. 오늘은 내가 맡고, 내일은 아내가 맡는다. 다음 날은 함께 가까운 곳에 물놀이라도 가기로 한다. 그다음 주가 문제다. 피치 못해 둘 다 볼 수 없는 날에는 처가에 부탁해보기로 한다. 그러고도 며칠이 남는다. ‘이때도 쉴 수 있어?’ 서로 확인해보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러려고 방학이 있는 것이 아닌데 아이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래도 양가가 가까우면 ‘엄마 찬스’라도 쓸 수 있어 다행인데 먼 거리에 본가와 처가가 있는 집은 단 하루도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거나 아예 방학 내내 아이들을 보내고 이산가족 신세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참으로 애처로운 부모에 안쓰러운 아이들이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지만, 그렇다고 방학 내내 집에서만 뒹굴뒹굴할 수는 없다. 여름엔 뭐니 뭐니 해도 물놀이가 최고다. 방학 일정을 미리 알지 못하고 휴가날짜가 나오지 않으니, 사전에 휴가 계획을 세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찜통 같은 더위에 와글와글 사람들, 비싸고 예약이 어려운 숙소 문제를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까운 수영장이나 계곡을 찾기로 한다. 거기도 물 반, 사람 반이지만 그래도 물에 풍덩하면 시원하니 참 좋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요즘 곳곳에 생긴 바닥분수를 찾는다. 여벌 옷 한 벌, 수건 하나만 있으면 준비 끝이다. 입술이 새파래질 때까지 놀아도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른다. 어른들의 밧데리는 벌써 방전되었는데 말이다. 여름엔 물만 있으면 그곳이 바로 피서지다.

[사진=대구 동구]

이렇게 방학을 무사히 보내면 얼마나 다행인가 싶지만, 곳곳에 ‘강제방학’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구내염, 수족구, 눈병 같은 전염성 질병을 앓으면 꼼짝없이 자가 격리해야 한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병을 쉽게 옮기고 옮는다. 그러니 어디 나가놀 수가 있나, 어울릴 수가 있나 종일 집에서 컨디션 안 좋은 아이 수발들다 보면 짜증은 짜증대로, 지겹기도 하고 미칠 노릇이다. 아픈 아이도 안쓰럽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 신세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안 아프면 제일 좋지만, 방학 동안 아파주면 그것도 나름 효도라면 효도다.

당장 오늘부터 둘째 녀석의 방학이다. 아침에 첫째를 배웅하는데 표정이 뭔가 억울한 표정이다. 나중에 둘이서 영화 보러 가고 팝콘도 사주겠다고 은밀한 제안을 하니 흔쾌히 받고는 쿨하게 셔틀버스에 오른다. 기특하다. 아침을 영 안 먹어서 아점으로 좋아하는 삼계탕을 사 먹이고 마트 가서 장을 보는데, 웬걸? 이 녀석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재수다 싶어 집에 부리나케 달려와 낮잠을 재우니 비로소 휴식이 찾아왔다.

옆에 누워 생각해본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친구들에게 으쓱할 자랑거리 하나는 만들어줘야겠다. 고맙게도 어른과 달리 애들은 쉽게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잊지 못할 추억 하나는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에게는 여러모로 ‘방학숙제 같은 방학’, 이런 방학이 또다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