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자식은 절대로 보내지 마세요”

[반올림 이어 말하기](2) 삼성 직업병 피해자 조은주 씨 유가족

11:45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지금도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본사 앞에선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노숙 농성과 이어 말하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삼성은 젊고 우람한 경비들을 내보내 농성장을 24시간 지켜보고 있다.

처음엔 농성장에 비닐 지붕을 덮기만 해도 경비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막았다. 사람들이 얼어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는 생각하는지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비닐 지붕을 덮게 해 주지만 경비들 눈에 조금이라도 높게 지붕이 올라왔다 싶으면 또 다가와 시비를 건다. 누가 지시를 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라 부르기엔 하는 짓거리가 너무나 좀스럽다.

▲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본사 앞 반올림 농성장 [출처: 반올림]
▲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본사 앞 반올림 농성장 [출처: 반올림]
날마다 새로운 손님들이 농성장에 찾아오는지라 이어 말하기는 낮에도 밤에도 이어 갈 수 있다. 농성장 지킴이들은 농담 삼아 손님들을 ‘물개’라 부른다. 삼성 경비들이 무전기로 어딘가에 보고하면서 “현재 농성장에 물개 OO마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어 말하기 사회자는 농성장 바로 위에 매달린 CCTV를 보며 “오늘도 OO번째 물개가 저희 농성장을 찾아주셨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어 말하기 손님들도 CCTV 쪽으로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든다.

고 조은주 씨 어머니의 이야기

10월 12일에는 울산에서 올라와 농성장을 찾은 조은주 씨의 어머니가 이어 말하기 시간에 마이크를 잡았다. 1992년에 태어나 2010년 7월에 삼성전자 탕정 공장에 들어간 조은주 씨는 그곳에서 대형 LCD TV 불량검사를 하다 2013년 초부터 아프기 시작해 그해 9월에 병원에 입원했고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2월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은주 씨 어머니는 바로 몇 달 전에 딸을 잃은 슬픔이 복받치는지 눈물을 흘리느라 말을 잘 잇지 못했다.

“가족 중에 혈액암이 없어서 혹시 직업병이 아닐까 생각해 산재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삼성에서는 ‘직업병이면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병에 걸려야지 왜 은주 씨만 걸리느냐. 그건 은주 씨 개인이 몸이 약해 병에 걸린 거다’라고 했습니다. 은주 말로는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생뻘 친구도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갑상선암은 흔하니까 그 말 들었을 땐 그냥 넘어갔는데, 내 딸이 가족과 상관없는 혈액암에 걸렸다고 하니 직업병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어린 애들 돈으로 유혹해서 데려가면서 안 좋은 환경에 집어넣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덮는 방진복 입히지 말고,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을 테니 그 돈으로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딸 또래 아가씨들이 옆에만 지나가도 눈물이 납니다.”

이어 말하기 시간이 끝난 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은주 씨 어머니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그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 삼성 직업병 피해자 고 조은주 씨의 어머니(맨 왼쪽)가 이어 말하기에 참여하고 있다
▲ 삼성 직업병 피해자 고 조은주 씨의 어머니(맨 왼쪽)가 이어 말하기에 참여하고 있다

“엄마, 나 어지럽고 손도 잘 안 구부러져”

“딸이 아파서 입원했을 때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이야기를 하면서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있다고 했었어요. 애는 떠났고, 산재는 절대 안 된다고 하고, 너무 억울해서 제가 반올림에 먼저 연락을 해 봤죠.”

“은주 고등학교 1학년 초에 삼성에서 사람이 와서, 우리 회사 들어오면 연봉이 얼마다, 근데 조건이 있다, 결석도 없어야 하고 성적도 10등 안에 들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한다, 이런 말을 했대요. 그때부터 은주가 삼성에 들어가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지각도 결석도 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도 늘 상위권이었고. 감기 걸려 병원에 갔던 거 빼면 몸도 아주 건강했어요.”

“은주 1학년 때는 저 어린 것이 뭘 알겠나 싶어서 그냥 뒀는데 얘가 3학년 여름방학 때 나 삼성에 갈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지 말라고 했죠. 결국 가긴 갔지만. 나중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은주가 그랬어요. 막판에는 자기도 객지 생활할 거 생각하니 가기 싫어졌다고. 근데 학교 선생이, 은주가 빠지면 보내기로 한 인원 수 못 채워서 학교도 곤란해지고, 삼성에서 이제 우리 학교에 안 올 테니 너 후배들은 취업 못 할 거라고 했대요. 일하기 싫더라도 일단 가라고. 간 다음에 그만두고 내려오라고. 은주는 그래서 삼성으로 갔어요. 좀만 있다가 와야지 했는데 삼성이 애들한테 돈은 많이 주니까 얘가 나중엔 돈맛에 거기 있었죠.”

“2013년 초부터 얘가 아팠어요. 저한테 자꾸 전화를 했죠. 엄마, 나 어지럽다. 손도 잘 안 구부러진다. 무릎도 아프다. 그래서 내가 정형외과 가 보라고 했는데 거기서도 아무 이상 없다고 했대요. 내과 가서 피검사를 했더니 피에 염증이 있다고는 하는데 의사가 ‘이건 약이 없다. 혈액에 염증이 생겨서 그렇다.’ 이런 말만 하지 정확히 말을 안 해줬대요. 큰 병원 가라고 했으면 진작 갔을 텐데. 그렇게 몇 달을 병원 다니다가 9월에 온몸이 아파 대학병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약 먹으니 좀 괜찮아져 퇴원했죠. 근데 공장에 돌아간 지 일주일 있다가 또 전화가 왔어요. 엄마, 아파서 도저히 안 되겠다. 다시 대학병원에 들어가서 골수검사를 했는데 혈액암이라 나온 거예요.”

“내 전화도, 친구 전화도 안 받아요”

“은주가 공장에서 정말 친하게 지내던 애가 있었어요. 울산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반이었는데 함께 공장에 들어가게 된 친구였죠. 반올림 노무사님이 은주가 공장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걔한테 전화해 물어봤어요. 은주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 좀 해 달라고. 근데 걔는 모른다고 했어요. 우리 은주는 걔 앞 라인이어서 은주가 검사하고 나가면 걔가 와서 검사했다고 했어요. 그럼 은주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당연히 알 거 아니에요. 그런데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니까 걔가 그랬어요. ‘어머니, 죄송해요. 저는 몰라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은주랑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다른 친구들한테도 전화해 봤는데 ‘나 은주 엄마야’라고 하자마자 걔들이 전화를 탁 끊었어요. 자기들끼리 말이 돈 거죠. 은주 엄마가 전화할 거다. 받지 마라. 그 뒤로는 다시 걸어도 절대로 안 받았어요.”

“호정이(가명)라는 애가 있어요. 은주랑 같이 일했는데 1년 반쯤 하다가 못하겠다고 나와서는 지금 다른 일하며 살아요. 호정이한테도 전화해 봤더니 걔는 은주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더라고요. 그래서 반올림 노무사님한테 연결해 줬고 걔가 노무사님에게 다 얘기했죠. 저도 은주가 무슨 일을 했는지 그렇게 알게 된 거예요. 근데 호정이가, ‘저 말고 다른 애들이 저보다 더 잘 알 텐데요?’라고 해서 내가 전화하면 안 받는다고 하니 자기가 직접 전화해 보겠다고 했어요. 근데 호정이가 전화해서 은주 얘기만 꺼내면 다들 모른다고 하며 끊더래요. 나중엔 받지도 않았고요. 삼성에서 입단속을 시켰는지 어쨌는지, 친구 전화도 안 받는 거예요.”

“은주 떠난 뒤에 삼성에서 과장인지 상무인지 하여튼 둘이 와서는 월급이랑 퇴직금이랑 보험금 같은 거 얘기해 줬어요. 근데 내가 원하는 건 직업병 인정해 주는 건데 왜 산재 처리 안 해주느냐고 물었더니 이건 직업병으로 인정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직업병이면 왜 우리 은주만 걸렸느냐는 거죠. 그런데도 그 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2박3일을 꼬박 장례식장에 있다가, 화장터까지 따라갔다가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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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자식은 절대로 보내지 마세요”

“은주 말로는, 공장에 삼십대 이상이 없대요. 다 이십대뿐이래요. 사오 년쯤 일하다 결혼하면 다 그만둔대요. 삼교대에 일주일에 두 번씩 쉬고 월급도 많고 하니 결혼해도 계속 일할 법도 한데 희한하게 삼십 되기 전에 다 나가요. 거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삼성 반도체 공장 다니다가 그만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들 찾아보면, 그만둔 지 10년 됐는데 암이니 뇌종양이니 이런저런 병에 걸렸다는 얘기가 나와요. 왜 그곳엔 오랫동안 일을 하는 사람이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힘없는 사람들이 삼성과 싸워서 어떻게 이기겠어요? 일단 억울하니 산재 신청은 해 놨는데 될지 안 될지는 반반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작업 환경만큼은 개선해서 우리 딸 같은 어린 아이들이 더는 병으로 죽지 않게 했으면 좋겠어요. (삼성 본사 건물을 올려다보며) 이런 건물엔 돈을 처바르면서 왜 그런 건 안 해 주는지 모르겠어요. 일 년에 꼴랑 삼천만 원 주고 데려가면서 그 안 좋은 환경에서 일을 시키다니…”

“처음엔 은주도 일을 재미있어 했죠. 일은 힘들어도 일 년쯤 지나고 나니 재미도 붙고 친구도 사귀고 돈도 생기니까. 근데 아프게 되고 나서는 우리 은주가 많이 후회했어요. 내가 괜히 삼성에 가서 이렇게 됐다고. 공장에 아픈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지만 설마 나한테까지 그런 병이 생길까 싶었다고. 공장 안에도 직업병 피해자들 얘기 다 돈다고 했어요. 옆에서 일하는 동생들도 다들 어디가 아프고 힘들어한다고도 했고요. 은주도 삼성 간 다음에야 아프기 시작했지 그 전까지는 하나도 안 아팠어요. 근데 바로 삼성에서 은주가 병에 걸린 거예요. 삼성에 들어간 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했어요.”

“삼성 반도체 공장엔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자식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곳엔 아무도 가면 안 돼요.”

멈춰야 하는, 그러나 멈춰지지 않는 이야기들

삼성 직업병 피해자 문제를 풀기 위한 조정위원회가 꾸려진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은 10월 7일에 있었던 조정위원회에서도 ‘보류를 요청한다’, ‘서면으로 답변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삼성 내부 기구나 마찬가지인 ‘보상위원회’에만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언제 다시 조정위원회가 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성이 모른 체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하나씩 죽어 가고, 슬프고 원통한 이야기들도 그렇게 하나씩 쌓여만 간다. 원한이 깊은 귀신은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닌다고 하는데 그건 꼭 귀신에만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강남역 8번 출구 반올림 농성장에는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눈물겨운 이들의 사연이 모여들 것이다. 삼성이 자랑하는 경비들과 최신형 CCTV의 환영을 받으며, 멈춰야 하지만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그런 사연들이.

* 정리 : 박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