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용천리 할머니의 ‘찢어진’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포항 지진 진앙 인근 용천리, 용전리 현장 르포
“이 집 좀 보소, 다 무너졌어요”
“내가 봐도 들어가기 싫은 집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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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6 19:58 | 최종 업데이트 2017-11-16 22:43

“하휴···”

16일 낮 12시 30분, 여든 여덟 살, 오순주 할머니는 간밤에 놀란 마음을 기자들에게 하소연하는 동네 이웃 옆으로 다가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90도 굽은 허리를 지탱하는 보행기 손잡이를 두 손에 잡은 채다. “이 집 좀 보소, 다 무너졌어요” 마을회관에서 불과 20m, 오 할머니는 고갯짓으로 지척에 있는 담벼락을 가리켰다. 오래돼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약간 내려앉은 것 같은 담벼락이 보였다. 담벼락에 세워둔 나무 팔레트, 슬레이트 조각들이 쓰러져 있다. 육안으론 피해 정도가 쉬이 식별되지 않았다.

“다 무너졌니더. 와서 함 보소.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벽이 무너졌부렸으요. 겁이 나가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엊저녁부터 못 가봤으요. 하휴···”

할머니는 자꾸 한숨을 쉬며 보행기를 끌고 기자를 집으로 이끌었다. 담벼락을 지나 왼쪽으로 한 바퀴 돌자 지붕과 같은 재질로 보이는 슬레이트 문이 마당과 도로를 분리했다. 할머니는 좁은 마당 가운데 보행기를 두고 방충망문 하나를 열었다. 불이 꺼져 어둡던 내부는 그제야 훤하게 드러났다. “아이고” 탄성이 먼저 나왔다. 흙으로 지은 담벼락이 찢어져 뻐끔하게 구멍이 났다. 냉장고가 안쪽으로 찢어져 내리는 담벼락을 막고 서 있는 형국이다.

▲찢어진 부엌 벽면 가운데로 커다란 구멍이 뻐끔하게 나있다.
▲할머니 방은 도둑이 든 것처럼 장롱문, 경대 수납장 문이 모두 열려 헤집어져 있는 상태다.

“냉장고 문은 열 수 있겠능교? 냉장고 문도 못 열어. 저 보소 다 무너졌지. 방도 다 무너졌니더”

할머니는 부엌 바로 옆으로 난 미닫이문도 하나 열어 내부를 보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부엌만큼 큰 구멍이 뚫린 건 아니었지만, 담벼락이 구겨진 듯 벽지가 찢어져 있었고, 왼쪽으로 놓인 장롱문은 모두 훤히 열린 채 속을 드러냈다. 경대 수납장도 문이 열려서 마치 도둑이 들어 헤집어 놓은 모습이었다.

기자가 앞장서 부엌으로 들어서자 할머니도 뒤따라 부엌으로 들어섰다. “냉장고 열리겠능교?”, “열 순 있는데 담벼락에 충격이 가겠는데요” 가까이서 보니 담벼락이 냉장고 문을 꽉 잡고 있는 형국이다. 성인 남자가 힘을 줘 당기면 어렵사리 문을 열 순 있지만, 냉장고와 맞닿은 담벼락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될 것 같았다. “하휴···” 할머니는 다시 한숨을 쉬며 냉장고 맞은편에 놓인 전기밥솥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먹다 남은 밥이 온기를 뿜었다. “전기는 들어온다”

오순주 할머니는 15일 낮 2시 29분 진도 5.4 지진 진앙으로부터 멀지 않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용천리에 산다. 지진이 일 때 할머니는 용천1리 마을회관에 있었다. 동네 이웃 예닐곱과 함께였다. 몇몇은 화투를 쳤고, 할머니는 TV를 봤다. 갑자기 땅이 심하게 흔들리자, 화투를 치던 이웃들은 그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바닥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바로 앞에 있던 에어컨이 기우뚱대며 쓰러지려 하자 놀라 일어나려 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다리는 심하게 흔들리는 바닥을 딛고 설 수 없었다. “일날라(일어나려) 하니까 자빠지고, 자빠지고. 어제 내가 충격을 많이 받았니더”

▲오순주 할머니가 집 툇마루에 앉아있다. 할머니는 15일 낮 지진이 일고 난 후 하루 만에 조심스레 집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마을회관에서 멀지 않은 집을 지켜볼 뿐 들어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자가 동행하자 그제야 할머니도 집안으로 들어섰다. 하루 만이다. 흥해읍사무소와 불과 4km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16일 낮까지 할머니는 읍사무소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포함한 수많은 정치인이 흥해읍사무소를 찾았지만, 4km 밖 할머니 집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동네 동장이 이른 아침 마을회관을 찾아 피해 정도를 듣고 돌아간 게 전부였다.

“밤새 거기서(마을회관) 안 있었능교. 저녁도 굶고, 오늘 아침도 이웃 사람이 쪼매 해가지고 와가 한 숟가락 얻어먹고···” 도둑이 헤집어 놓은 것 같은 방문 앞 툇마루에 앉아서 할머니는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서 나왔능교? 하휴···. 아이고 떨리래이. 심장이 벌렁벌렁 이제 방도 못 들어가고 우야노 싶으다. 겨울도 다왔는데” 겨울을 걱정하며 할머니는 다시 마을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

오순주 할머니 집에서 약 1.6km 떨어진 김동덕(71) 용전2리 이장의 집은 담벼락이 무너졌다. 15일 낮 지진이 일 때 이장은 집 앞 농수로 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땅이 흔들려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 뒤에서 ‘쿵’하고 뭔가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이장의 집 담벼락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땅이 흔들려서 지탱하기가 힘들어서 이상하네, 뭐 이러노 하고 있는데 뭐 쿵 소리가 나. 뒤를 돌아보니까 담벼락이 뻐끔해” 이장은 그 길로 동네 가가호호를 돌며 피해를 살폈다. 16일 낮 1시 30분에도 김동덕 이장은 자전거를 타고 지진 피해를 파악하러 다니고 있었다.

▲김동덕 이장의 집 담벼락이 무너져 있다.

“이장님, 둘러보시니까 피해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으세요?”
“내가 봐선 심한 데는 한 40호 정도 돼요”
“어느 정도 수준이요? 이장님 댁 수준?”
“아니요, 나는 이런 건 피해라고 안 보거든요. 이런 건 빼고 한 40호 된다니까요”
“동네가 몇 세덴데요?”
“우리 마을이 한 백 세대 좀 넘지요”

이장의 집에서 불과 60m 떨어진 이웃의 집은 담벼락 한 축이 완전히 무너지고 땅도 꺼졌다. 100m 정도 더 가자 옥상 담벼락이 이웃집 마당으로 내려앉은 집도 눈에 띄었다. 자전거 헬멧을 쓴 집 주인이 무너진 담벼락 주변을 정리했다. “일단 치우지 말고 두이소. 담벼락 무너진 데가 한 두 곳이 아닌데 이리 치우면 비용을 우짤라 하능교” “그러면 그냥 치우지 말고 둘까요” “야, 읍에서 나온 사람한테 말은 해놨으니까 쪼매만 기다려보소”

▲이장의 집으로부터 약 60미터 떨어진 이웃의 집도 담벼락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이웃집 옥상 담벼락이 넘어와 마당을 덮쳤다.

이장은 마을과 떨어져서 외로이 서 있는 집으로 기자들을 이끌었다. “여도 그렇지만 저기 가면 내가 봐도 들어가기 싫은 집도 있어요” 이장이 이끌고 간 집은 멀리서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2층 큰 창은 부서져 뒤로 넘어갔다. 동네 남자 어른들 중에선 가장 고령자가 아들네와 살던 집이라고 이장은 설명했다. “흥해에 아들네 집이 있는데 지금은 거기 있능가, 어딨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멀리서 봐도 2층 큰 창이 무너진 게 보인다.

집은 거의 새로 지어야 할 수준으로 망가졌다. 2층 벽면이 완전히 무너졌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무너진 건물 잔해로 뒤덮였다. 어린 손자, 손녀가 쓴 방으로 보이는 계단 왼편 방도 아수라장이었다. “살아오면서 오늘이 제일 행복한 날입니다”라고 쓰인 A4 종이가 붙은 벽면만 온전하게 손자, 손녀의 졸업사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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