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변하지 못한 TK와 무고한 시민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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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4:48 | 최종 업데이트 2018-07-02 14:48

여당의 압승과 야당의 참패. 진보의 약진과 보수의 위기, 궤멸, 몰락. 6.13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여기저기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인포그래픽 속 반도는 마냥 파랗지 않다. 전국이 파란 물결로 뒤덮였지만, TK만큼은 여전히 빨갛다. 자유한국당이 광역·기초단체장 선거를 석권했기 때문이다. 대구시교육감에는 박근혜 정부 장관 출신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SNS에서는 “북한이 변했는데 TK는 변하지 않았다”, “TK는 정치적 무인도”라는 말이 우스개로 퍼져나갔다.

▲6.13 지방선거 시·도지사 선거 결과 (사진=포털 daum 갈무리)

TK 시민으로서 이번만큼은 억울하다. 선거 전 TK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을 직접 보고, 그들의 공약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방선거 토론회 FD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덕택이다. 촛불 혁명과 정권 교체,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거친 만큼 우리 사회 정치인들의 문법이 이제는 달라졌을 거라 기대했다. 오산이었다. 여당 후보들은 ‘문재인’만을 끊임없이 되뇌며 중앙 정부의 인기에 기대기 바빴다. 야당 후보들은 ‘박정희’와 ‘박근혜’를 언급하며 지역 이데올로기를 들먹였다. 그들은 상대 공약에 대한 비판보다 상대의 이념적 성향, 사생활 등에 대한 비난을 일삼고 있었다.

TK는 왜 변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과거나 지금에나 변하지 않는 정치권에 있다. TK 지역주의의 시발점은 3선 개헌 후인 1971년 7대 대통령선거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에게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지역주의를 집권 전략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각종 공작과 흑색선전은 물론, 신라 임금을 뽑자는 ‘신라 임금론’까지 동원됐다. 그 후 유신 체제가 출범했고 지역 불균형 개발과 인사 차별이 노골적으로 일어났다. 정권 유지를 위해 호명된 TK는 정권에 의해 지역 간 격차와 갈등의 주범이 됐다.

군사 정권이 끝나고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역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외려 정치적으로 더 구조화되고 더 고착화됐다. 그 가운데 TK는 ‘박정희 신화’를 앞세우며 자신을 보수라 칭하는 군사정권 부역자들의 텃밭이 됐다. 선거 때마다 지역 연고에 기댄 선거 전략이 횡행하고, 특정 인물과 이데올로기에 기대 환심을 사려는 구태가 만연한다. ‘막대기만 꽂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팽배하며, ‘공천은 곧 당선’이란 말이 공식으로 통한다. 정작 TK의 지역 경제는 전국 최하위권이고, 시민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25년째 꼴찌다.

지금 TK 정치권에는 변화를 주도할 인물도, 정당도 없다. 정치인들은 시민 대신 권력자를, 유권자 대신 공천권을 쥐고 있는 자를 바라본다. 정당들은 어떻게 하면 자리를 보전하고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골몰한다. 지역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는 찾기 어렵다. 이번 선거 때도 그랬다. 한국당 공천 과정은 ‘밀실 공천’, ‘역대 최악의 공천’이란 평을 면치 못했다. 단식 농성과 여론조사 왜곡 논란, 사천 논란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천 결과에 불복해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들이 상당수에 달하기도 했다. 민주당 공천 과정 역시 나은 건 없었다. 공천 결과에 불복한 후보자들의 단식 농성은 물론, 대구 달성군수, 김천 국회의원 재보선 등 상당수 지역에서 공천조차 하지 못했다. 형식적인 준비마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투표율만 해도 대구는 57.3%, 경북은 64.7%로, 제6회 지방선거보다 각각 5%포인트, 5.2%포인트 올랐다. 특정 정당을 향한 맹목적인 지지도 줄어들고 있다. 지방선거 재도입 후 처음으로 지역구 민주당 대구시의원이 4명이나 탄생했다. 구·군의원에 출마한 46명의 민주당 후보 중 45명이 당선됐다. 경북에서도 민주당 지방의원 후보들이 고르게 당선됐다. 특히 구미에선 민주당 지방의원 출마자 전원이 당선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1998년 이후 20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단체장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뉴스민>이 경북 안동에서 만난 한 60대 시민은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 나라가 잘 사는 것이지 박정희가 잘해서 잘된 게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을 지금 상황에 맞게 바꿔보면 어떨까. “시민들이 이 정도이기에 분열의 정치가 옅어지고 구태 전횡이 심판받는 것이지 정치권이 잘해서 잘된 게 아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변하지 못한 ‘외딴섬’이라 불리는 TK에서, 무고한 시민들만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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