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 없는 교실, 성폭력을 은폐해왔다

성희롱 피해 제보자, 교사·학생으로부터 2차 가해
학교 내 성폭력 인식 수준 저조···방지 제도 미비
"성폭력과 2차 가해 막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필요"

0
2018-09-07 13:52 | 최종 업데이트 2018-09-08 12:41

#1.

대구 ㅅ중 2학년 ㄱ 씨,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어느 교사는 어깨에 손을 걸치며 설명했고, 허벅지나 허리를 건드리는 일도 있었다. 갈수록 불쾌했다. 교사를 볼 때마다 두려웠던 ㄱ 씨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친구들도 같은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같은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모이자 용기도 생겼다. 페이스북 페이지 ‘학생인권 대나무숲’에 ㅅ중학교에 대한 익명 제보가 나왔다. 8월 27일, 학교 2학년 층 복도에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침묵한다고 달라질까요?’

▲대구 한 중학교 학생들이 교사의 폭력 등에 항의하는 쪽지를 붙였다. (출처= 학생인권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학교 성폭력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다음 날, 대구교육청은 현장 조사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해당 교사들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ㄱ 씨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실명을 밝히고, 교육청 직원에게 설문지를 써냈다. 신원 노출이 없다는 말을 믿고 함께 써낸 이들은 ㄱ 씨 포함 69명이었다.

다음날 ㄱ 씨 어머니는 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교육청에 이름을 밝힌 69명의 명단이 ㅅ학교에도 전달됐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일부 학생을 불러 문제가 된 교사와 대면시켰다. 안심해도 된다는 말만 믿고 이름을 밝혔더니 학교가 다 알아버렸고, 학부모를 호출하고 교사 대면까지 시켰다. 대면 자체도 두려웠지만, ㄱ 씨는 당장 수행평가나 생활기록부 등을 통한 불이익도 걱정됐다. 이름을 밝힌 것이 후회됐고, 두려움은 커졌다.

ㄱ 씨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의문이 들었다.

“교칙에 교권침해 벌점이 있어요. 그런데 학생 인권을 지켜줄 제도는 어디에도 없네요.”

▲ㅅ중 교칙(출처: ㅅ중 홈페이지)

#2.

대구 ㅎ고 3학년 ㄴ 씨도 ㄱ 씨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안마를 해준다던 교사가 어깨와 등, 허리를 만졌다. 학교 안에서도 알려졌지만, 교사들은 쉬쉬했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교사였다.

ㅎ고 졸업생들이 과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리려한다는 소식을 들은 ㄴ 씨는 이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이들은 재학 시절 “강간당할 거 같으면 오줌을 싸라”, “여자가 야하게 입고 다니면 남자는 성욕을 참을 수 없다”라는 등 교사의 부당한 언행을 기록해뒀다.

이들과 함께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기로 하고 ㄴ 씨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알렸지만, ㅅ중과는 달리 크게 동조하지 않았다. 어떤 학생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학교 분위기를 흐리지 마라’, ‘경찰에 신고하고 공론화는 하지 마라’, ‘증거도 없이 말할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ㅎ고는 ㅅ중처럼 교사와 대면 사과를 시키지는 않았다. 대자보를 당분간 철거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ㄴ 씨는 자신을 향한 친구들의 손가락질이 마음 아팠다.

“대자보에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거예요. 학교 여론이 무서워서 자기 뜻을 밝히지 못하는 친구도 있을 거예요. 왜 피해자가 숨어야 하나요? 그 친구들에게라도 용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ㄴ 씨)

▲ㅎ고에 붙은 스쿨미투 대자보(사진=제보자)

‘성폭력 피해’ 알리면 2차 피해도 각오해야
학생 사이에서 ‘뒷말’ 나오는 경우도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2017년 고등학교 재학생 1,01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결과, 고등학교 입학 후 교사에 의한 성희롱 피해 발생 인지율이 414명(40.9%)으로 나타났다. 직접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80명(27.7%)에 달했다. 학생 3명 중 1명은 성희롱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고등학교 입학 후 교사에 의한 성희롱 피해 경험률(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에서도 8월 중순부터 SNS를 통해 학교 내 성폭력 폭로(스쿨 미투)가 이어졌다. 대구교육청 조사 과정에서 스쿨미투 학생의 신원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학생인권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는 아수나로 대구구미지부는 신원 노출 우려가 확산되면서 제보 내용 삭제 요청이 이어졌다고 했다.

교육청은 지난 30일 신원 노출에 대한 반발이 나오자 “문제 해결을 위해 설문 조사 결과를 학교에 알려주는 것은 당연하며, 이로 인한 2차 피해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논란이 이어지자 교육청은 4일 ▲제보자 색출 금지 ▲피해자와 가해자 간 대면 금지 등을 강조한 공문을 관내 학교에 보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학교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면 피해자에게 원인과 책임을 돌려 ‘낙인’을 찍으며, 성폭력 사실이 공론화됐을 때 교사와 학생으로부터 2차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 피해를 상담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방법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상담실 역시 같은 교사가 운영하며, 학교 전담 경찰관은 상주하지 않고, 보안관은 남성 노인이라 2차 피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ㅎ고 ㄴ 씨는 교사보다는 친구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ㅎ고 ㄴ 씨는 “대자보를 붙이기 전에 반톡에 올렸더니 학생들이 ‘증거가 있느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았는데 학교 분위기를 왜 흐리느냐’, ‘나는 그 선생님의 행동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신고나 하지 왜 공론화하느냐’라고 저를 탓하는 말을 했다”라고 말했다. ㅅ중에서도 일부 학생은 ‘학교의 이미지를 망친다’며 반응했다.

학교 성폭력 인식 수준 저조한데 인권 보장 위한 제도 없어
우동기 전 교육감이 만든 교육권리헌장 있으나 유명무실
“대구도 학생인권조례 필요”

교사와 학생 모두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가 없는 상황도 문제로 떠올랐다. 대구교육청에는 성폭력·2차 가해 개념과 사안 발생 시 경찰신고·피해자 가해자 분리 조치 등 처리 방법을 다룬 ‘성희롱·성폭력 사안 처리 매뉴얼’이 있다. 하지만 ㅅ중 사례처럼 사안 발생 시 매뉴얼을 지키지 않더라도 규제할 수는 없다.

대구교육청은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해 1년 최소 3시간 교직원 연수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학교 자체적으로 연수를 시행토록 하고 교육청은 시행 여부만 확인하고 있다. 김봉석 전교조 대구지부 대변인은 “교사가 받는 연수가 대체적으로 많다. 연수를 하더라도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라 실제로 연수 대상이 직접 듣는지 안 듣는지 확인도 안 된다”라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 수업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강제력’ 있는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현재 서울시, 광주시, 전라북도에서 제정됐다. 대구는 2011년 조례 제정 운동이 벌어졌지만, 제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12년 우동기 당시 교육감은 조례 대신 ‘교육권리헌장’을 발표했다. 같은 해 9월 시행된 교육권리헌장은 의회 의결을 거친 조례와는 달리 강제력이 없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여름(활동명) 씨는 “초등학생 때 체벌을 많이 당했다. 단체 체벌도 당했는데 체벌을 금지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니까 체벌을 못 하게 됐다며 억울하다는 교사도 있더라”라며 “인식이 부족하더라도 법이 강제하면 문화나 의식도 뒤따르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ㅅ중 ㄱ 씨는 “교칙에, 교권침해라는 항목이 있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교사가 판단해서 학생에게 벌점을 준다. 교칙에 학생 처벌 규정은 있지만, 학생 인권을 지키기 위한 조항은 없다. 별도의 제도도 없다”라며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학생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제도가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3일 대구교육청 앞에서 학교 성폭력 관련 2차 가해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성폭력, 인권침해 없는 학교 만들기 대구 연대회의는 지난 3일 대구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차 가해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학교에서는 위력에 의한 폭력이 일상화 돼 있다. 피해자가 나와도 조사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나선다. 제보와 관련한 모든 탄압을 멈추고 학교 문화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며 “문제 교사에 대한 처벌과 징계를 강화하는 방향은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무기력만 강화한다.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인권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스쿨미투 대책반을 꾸려 대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요구는 있지만,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은 요원한 상황이다. 장재화 학교생활문화과장은 “(ㅅ중과 관련해) 미흡한 부분은 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 계획 단계에 있다”라며 “전수조사는 수능시험도 앞두고 있어 당장은 어려운 상황이다. 지적된 학교는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