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 잊혀진 비극을 가진 도시, 나콘빠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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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나콘빠톰(Nakhon Pathom)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불탑인 ‘프라빠톰체디(Phra Pathom Chedi)’가 경건하고 엄중하게 자리 잡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개별 풀이 갖추어진 고급스러운 호텔과 라운딩을 즐길 수 있는 골프장도 많고, 밤이면 야시장의 싸고 맛있는 음식이 여행객을 유혹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방콕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보니 매연과 교통체증도 거의 없는 것도 매력입니다. 태국답게 가끔 식당이나 가게에서 각종 모양의 도마뱀들과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는 큰 비극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93년 5월 10일, 디즈니와 마텔사의 인형을 주로 만들던 봉제공장 케이더 봉제공장(Kader Toy Factory)에서 화재가 발생합니다. 불이 나고 불과 20분이 남짓한 찰나에 188명이 사망하고 469명이 부상을 입은 대형참사였습니다. 불이 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건물까지 붕괴된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화재 사고 중 하나입니다. 사고는 그 이후 더 아픈 이야기를 남깁니다. 상상할 수 없는 모든 화재 원인이 망라된 참사라는 점에서 이 비극은 인재라는 사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먼저 공장은 부실하게 지어졌습니다.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는 대부분 작동되지 않았고, 연약한 골조 탓에 건물은 화재에 쉽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또 공장의 작업환경은 화재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인형을 만드는 원료가 되는 천, 솜, 플라스틱 등이 가득한 공장은 화재에 취약한 환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상 화재가 발생하자 불은 너무 쉽게 옮겨붙었으며, 엄청난 유독가스를 내뿜으면서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말았습니다.

▲사진=태국경제신문 (ที่มาภาพ :นสพ.กรุงเทพธุรกิจ ฉบับวันที่ 28 ธันวาคม 2536)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희생된 노동자 대부분은 시골에서 온 어린 여성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봉제 작업 자체가 교육 기회가 충분치 않은 시골 출신 어린 여성의 노동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부실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성 노동자의 저렴한 임금은 그들을 그저 통제하기 쉬운 존재로만 바라보게 했을 것입니다. 공장관리자들은 그녀들이 혹시라도 인형을 훔쳐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는지 대부분의 출입문을 밖에서 걸어 잠궜습니다. 인형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선물 받고, 행복해야 할 어린 여성 노동자들은 그렇게 희생되고 만 것입니다.

이 사고는 안타깝게도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발생한 여성 노동자의 잔혹사와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100년 전의 교훈을 되새기고 미리 대비하였더라면 마주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지요. 1911년 3월 미국 뉴욕의 한 의류공장에는서는 여성들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노동자 146명이 희생되었는데, 그중 123명이 여성이었습니다. 대부분 이민자 출신 여성들이었구요. 그들 중에는 10대도 다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된 ‘트라이앵글 셔츠 웨이스트 공장 화재(Triangle ShirtsWaist Factory Fire)’입니다. 이 화재도 나콘빠톰에서 발생한 화재와 다를 바 없이, 노동자들의 ‘나쁜 손버릇’을 우려한 고용주가 출입문을 밖에서 걸어 잠근 바람에 희생을 키운 최악의 인재였습니다.

이 화재사건의 결과는 미국 사회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년 동안 60여 개가 넘는 관련 법안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 노동장관을 지낸 프랜시스 퍼킨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노동인권운동가로 변신하게 됩니다. 세계사적으로도 여성의 날이 국제기념일로 선포되는데 큰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지금 현재도 수많은 이들이 여성과 노동자, 그리고 아동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마다 소환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두 참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의 삶과 인권에 대해 돌아보고자 하는 교훈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다시 공간이라는 큰 벽 앞에 가로막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되고 있습니다. 100년 전, 미국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벌어진 참사는 기억하고 있지만, 태국의 나콘빠톰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발생한 비극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작은 도시에 사는 여성과 아동, 노동자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고, 지금도 아시아의 또 다른 도시의 공장에서 여성과 아동 노동자의 희생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줌에도 이르지 못하는 임금과 위태로운 노동환경에서 벌어지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우리는 그 일을 감싸고 있는 위험한 환경은 애써 눈 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청년 노동자와 한 대학생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열흘이 넘도록 대학생의 사인을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관련된 정보는 언론을 통해 연일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학생인 청년의 아버지는 청년의 죽음을 계기로 안전하게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고 시설이 나아지기를 바란다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죠. 이 세상에 어떠한 억울한 죽음도 없어야 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저 청년이 의대생이고 부자라서, 아버지가 권력자기 때문에 그러하다며 뉴스가 지겹다고도 말합니다. 컨테이너에 깔려 목숨을 잃은 청년의 이야기는 어디 갔냐고 묻기도 합니다.

수도 없이 많은 젊은 목숨이 본인의 잘못이 아닌 상황에서 안타깝게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겨서, 다른 나라 전쟁에 팔려 가느라, 혹은 수학여행을 가다가, 혹은 일을 하러 나가다가 말입니다. 그 누구의 죽음도 원인을 명백히 밝히고, 다시는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있다하더라도 반복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청년의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의류공장 사고로 인해 세상이 많이 바뀐 것처럼, 이름도 생소한 나콘빠톰에서의 사고도, 또 기억하지 못하는 1993년 방글라데시의 사바르의 의류공장 붕괴 사고도, 혹은 대한민국 기흥에서 발생한 백혈병 사망 사건도, 모두 역사의 거울로 수도 없이 닦아 내야할 동일한 가치의 사건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

[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는 비정기적으로 뉴스민에 칼럼 <인권 돋보기>를 기고한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가 시도하는 정기 기고다, 인권의 관점에서 그가 방문했던 여러 도시를 톺아보는 이야기를 격주 금요일에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