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뭣 하러 물어봐”…60대는 투표로 말한다

[총선현장-대구 북구을] 홍의락-양명모, 60대 이상 투표 관건
“대통령 봐서는 새누리당 찍어야 하는데, 원체 못하니까”

12:11

#장면1. 금요일(8일) 낮 12시, 대구 북구 관음동 북구어울아트센터

선캡을 쓴 60대 여성 셋이 나란히 벤치에 앉아 이야길 주고받는다. “솔직히 이야기해가 별로 (투표) 안 하고 싶은데, 4년 만에 돌아와서 영 안 하긴 뭣하고, 할까, 말까 싶은 거지” 가운데 안경을 쓰고 앉은 여성이 말했다. 그녀의 오른쪽에 앉은 여성이 말을 받았다. “후보도 되고 나면, 여기 어디 얼굴이나 비치겠어요. 되고 나면 내 몰라라 하고 얼굴 한번 안 내비치지” 왼편에 앉은 여성은 묵묵부답 말이 없다.

“홍의락이 하고, 조명래하고, 박하락이 하고, 또 뭐고?”
안경 쓴 여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양명모. 우편 날아온 거(공보물) 보니까 다 있데. 정의당하고”
오른쪽 여성이 다시 말을 받았다.

“조명래가 정의당이고, 조명래가 그 사람, 심상정 당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당은 별로 필요 없고”
다시 안경 쓴 여성이 말했다. 여전히 왼쪽에 앉은 여성은 말이 없다.

“그럼 새누리당이나 홍의락 후보 있던 당을 찍어줄 생각이세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 찍어주면 되지”
가운데 안경 쓴 여성이 답했다. 그러자 다시 오른쪽 여성이 역정을 낸다.

“찍어주면 저거 좋지, 우리가 좋아요? 되고 나면 얼굴도 안 보이고”

다시 두 여성은 불만을 토로한다. 앞서 6일 있었던 새누리당 후보들의 사죄 퍼포먼스가 언급됐고, 당 대표도 거론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입에 오르자 두 사람의 화는 급격히 누그러진다.

“대통령을 봐서는 새누리당을 찍어주고 해야 하는데, 원체 못하니까, 그카는거지”
가운데 여성이 말했다.

“대통령이 잘 못 한 게 있나?”
조금 전까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 국회의원을 욕했던 여성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을 봐서는 새누리당 찍어주는 게 맞다고”
가운데 여성이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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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8일 낮 12시 무렵, 대구 북구 관음동 북구어울아트센터를 찾았다. 북구어울아트센터는 북구을 지역에 설치된 사전투표소 9곳 중 한 곳이다. 이들 60대 여성 셋은 이날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이 사전투표소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누굴 찍을지 정했냐는 물음에 이들 셋, 아니 정확히 두 명은 후보들에 대한 불신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들의 불신이 대통령에게 닿진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이 언급되자 ‘미워도 다시 한 번’ 새누리당을 찾았다.

#장면2. 일요일(10일) 오후 2시, 대구 북구 구암동 함지근린공원

주말 나들이를 나온 주민들이 공원 곳곳에서 여유를 즐긴다. 그 여유 너머로 “빠라빠빠, 빠라빠빠, 홍의락~” 트로트를 개사해 만든 홍보 노래가 흐른다. 투표일을 앞두고 맞는 마지막 일요일, 홍의락 무소속 북구을 후보의 집중유세가 이곳 함지근린공원에서 예정돼 있었다.

‘홍의락’과 숫자 6이 적힌 주황색 모자와 티셔츠를 입은 선거운동원이 양쪽으로 줄지어 서서 좌우로 몸을 흔든다. 마찬가지로 숫자 6과 ‘홍의락’이 적힌 주황색 홍보판을 손에 든 채다. 홍보판이 없는 선거운동원 8명은 유세차 앞에서 노래에 맞춰 간단한 율동을 선보였다. 넉넉잡아 주민 2~300명이 선거운동원들을 가운데 두고 둘러서서 홍의락 후보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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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30m 정도 떨어진 벤치에 삼삼오오 노인들이 앉아있다. 큰 음악 소리와 운집한 사람들 쪽이 궁금할 법도 할 텐데, 자기들끼리 앉아서 담소를 나눌 뿐이다. “어르신, 취재를 나왔는데요. 몇 가지만 좀 여쭤봐도 될까요?” 기자의 말에도 별 반응 없이 시큰둥한 눈길만 건넨다.

“선거 기간이라서요. 어떻게, 지지 후보는 정하셨어요?”

“그런 걸 뭣 하러 물어”

“아, 저기 시끄러운데 안 궁금하세요?”
“뭐, 궁금해. 선거 기간에 계속 저러고 있겠지”
“별로 마음에 안 드시나 봐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가 어댔어. 선거운동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지”
“6번 후보가 여론조사 1등으로 나오던데, 어르신들 분위기는 아닌가 봐요?”
“처음엔 앞섰는데 우리는 아직 1번이 얼마나 따라 붙었는지가 중요한거지”
“어르신도 그러세요?”

“우리는 다 정해져 있어. 말은 안 해도 우리는 다 정해져 있어”

웅성거림이 커진다. 노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홍의락 후보가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다시 보니 300명 가까운 사람들 대부분이 4, 50대로 추정됐다.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보이긴 했지만 많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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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가 많이 보이지 않는 건 양명모 새누리당 후보의 유세현장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각, 홍 후보 유세현장에서 1.5km 떨어진 운암지 입구(북구 구암동)에서 양 후보도 주말 집중유세를 진행했다. 오후 2시 30분쯤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왕복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후보의 유세차와 지지자들이 마주 서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의 규모는 역시 200여 명, 등산복을 갖춰 입은 4, 50대가 다수였다.

반-반 갈라진 사전투표소 분위기
60대, “대통령 밀어주려면, 새누리당 찍어야”
40대, “여기도 변한다는 걸 보여줘야 돼”

김부겸 후보가 출마한 수성구갑만큼이나 전국적 관심 지역으로 떠오른 대구 북구을 지역을 금요일(8일)과 일요일(10일) 이틀간 둘러봤다. 관건은 역시 60대 이상 노년층이 얼마나 투표장으로 갈 것인가가 선거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이전에 4차례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홍의락 후보는 모두 양명모 후보를 앞섰다. 하지만 연령별 지지율 중 60대 이상에서는 양 후보가 굳건한 지지를 얻었다.

영남일보-대구MBC가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 60대 이상은 47.2%(전체 26.8%)가 양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홍의락 후보는 26.9%(전체 42.3%)에 그쳤다. 60대 이상의 양 후보 지지율은 YTN이 4월 5일부터 6일까지 조사해 발표한 마지막 결과에서 54.1%(전체 26%)까지 올라갔다.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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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센터 앞에서 만난 강영호(67) 씨는 “일단 나라가 안정이 되려면 한 사람을 밀어야 돼. 대통령을 밀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기준으로 투표했다”고 새누리당 지지 의사를 밝혔고, 국우동 주민센터 앞에서 만난 60세 남성 역시 “대구는 그래도 아직까지 새누리당”이라고 말했다.

양 후보는 60대 이상뿐 아니라 50대 여성 유권자에게도 지지를 얻었다. 어울센터 앞에서 만난 김순자(54) 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힘 실어줄 수 있어야지”라며 “무소속은 나중에 어느 당 가고 할지 장담 못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딸과 함께 국우동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50대 중반의 여성도 “하도 싸워서, 싸우지 말라고 한나라당(새누리당) 밀어줬습니다. 싸우지 말고 하나 돼 일하라고”라고 밝혔다.

반면 홍 후보 지지자는 20대부터 50대까지 고르게 보였다. 어울센터 앞에서 만난 20대 남성은 “그냥 6번 찍으러 왔다”며 “이번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0대 초반이라고 밝힌 오정석 씨 역시 “저는 새누리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며 “나라를 말아먹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우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홍원호(50) 씨는 스스로 정의당 지지자라고 밝혔지만 “당선 가능성 때문에 이번엔 홍의락 씨를 찍었다”고 밝혔다.

같은 곳에서 만난 이병창(49) 씨도 “홍의락 씨를 찍었다”며 “서상기 씨가 나왔으면 이번에 찍어주려고 했는데, 여기 사람도 의식이 바뀐다는 걸 저 사람들(새누리당)한테 보여줘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홍의락vs양명모

이틀간 진행된 사전투표에서 대구는 투표율 10.13%로 2014년 지방선거보다 2%p 이상 오른 투표율을 보였다. 투표율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았지만, 지방선거 대비 증가율은 광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이중 북구을은 전체 선거인수 19만 3,690명 중 1만 8,627명, 9.62%가 투표했다.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율 추이로 볼 때 최종 투표율은 50% 후반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선관위 추정대로면 북구을에서만 약 10만 명 정도가 13일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그 대열에 금요일에 만난 선캡 쓴 60대 여성들이나 “그걸 뭣 하러 물어”라고 말하던 어르신도 물론 함께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