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로운 투표생활] “엄청 비가 오더니, 산사태로 매몰되고 그치더라, 기가 막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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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민>은 4.10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대 인류의 큰 위기로 부각되고 있는 기후위기를 정치권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시민들에게 물었다. 대구와 경북 곳곳을 찾아가 시민들을 만났고, 이들이 체감하는 기후위기는 어느 정도인지, 누가 해결해야 하고, 대책은 뭐라고 보는지, 다가오는 선거에서 기후위기가 후보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지 등을 물었다.

경북 예천 효자면 백석리 상백마을에서 나고 평생을 산 이근섭(66) 씨는 지난해의 산사태를 잊지 못한다. 평생 살며 처음 들어 본 굉음과 함께 밀어닥친 흙더미에 오래 봐온 마을 주민 5명을 잃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느님도 어떻게 할 방법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근섭 씨는 산사태 현장을 목격했다. 그는 “너무 이상한 소리가 나더라. 평생에 그런 소리는 처음이었다. 거실 문을 여는 순간, 우리 농산물 건조기가 2대 있었는데 앞쪽에 있던 건조기가 거실까지 밀려들더라”며 “거짓말 보태지 않고 10초도 안 걸리더라. 여기 집 5채하고 농기계 창고까지 다 밀어내는데”라고 말했다.

그는 “저온창고, 건조기 2대, 우사도 한 20평 있었는데 싹 매몰됐다. 농기계도 얼추 따져도 1억 원 가까이 되더라. 비료 300포대까지 싹 다 가져가고 없더라”며 “우리집은 간신히 벽만 쳐서 용케 살았다”고 지난해 7월 폭우 끝에 닥친 산사태로 입은 피해를 설명했다.

이어 “복구하러 온 사람들이 큰 장비가 와도 들어내기 힘들 거 같다고 할 정도로 큰 바위가 수도 없이 굴러왔다. 한 아름에 안을 수 없는 나무가, 길이 20미터씩 되는 게 뭉쳐져서 쭉 내려왔다”며 “저 위도, 내외가 돌아가셨고, 밑에 집도 그랬다. 상백부락(마을)에서만 5명이 돌아가셨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면 인사도 하고 들에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 그냥···. 하룻밤 사이에 순식간에”라고 덧붙였다.

그는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살고 있는데, 생전 처음”이라며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다. 땅바닥에 발을 딛으면 물렁물렁할 정도로 왔다. 물동이로 들이붓는 것처럼 비가 하루 진종일 왔다. 산사태로 매몰되는 순간부터 비가 그치더라. 기가 막힐 일”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기후재난의 일환이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봐야 할 거다. 제가 알기론 여기서 태어나서 이제껏 살아도 그런 일은 처음”이라며 “이런 일이 안 일어나야 하는데 천재지변, 자연재해로 일어나는 거니까 누구도 알 수가 없다. 하느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롭다’는 ‘그러함’ 또는 ‘그럴만함’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기후+롭다’는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위기 대응을 고민하며,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한다는 의미를 담아 뉴스민이 고안한 말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데 남은 시간은 5년 남짓, 이번에 선출되는 22대 국회는 그 5년 중 4년을 쓰는 국회다. 그동안 우리 국회가 기후위기 대응에 무관심하고 무능했다는 걸 고려하면, 이들에게 주어진 4년이란 시간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간이다. 뉴스민은 22대 국회는 기후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기후로운 투표생활’ 기획보도를 시작한다.

[뻘건맛 시즌3] 기후로운 투표생활 시작합니다 (‘24.3.6)
[기후로운 투표생활] ① 2.1%, 21대 국회의 한계 (‘24.3.6)
[기후로운 투표생활] ② 기후로운투표생활위원회, “22대 총선 키워드는 기후국회”(‘24.3.6)
[기후로운 투표생활] ③ 지속가능 농·어업 고민 않는 국회(‘24.3.8)
[기후로운 투표생활] ④ 재난에 떠밀려 땜질하는 국회(‘24.3.11)
[기후로운 투표생활] ⑤ ‘탈탄소’ 보다 ‘저탄소’에 머문 국회(‘24.3.13)

[기후로운 투표생활] ⑥ 전국 사과 생산 1위, 경북의 한숨···“기후가 위기”(‘24.3.21)
[기후로운 투표생활] ⑦ 재생에너지 확충, ‘채찍질’ 망설인 국회 (‘24.3.28)
[기후로운 투표생활] ⑧ 탄소배출 악순환, 오늘은 오징어, 돌고 돌아 내게로 (‘24.3.29)
[기후로운 투표생활] ⑨ 정당별 기후위기 공약···재생에너지 목표부터 차이 (‘24.3.29)

기후로운투표생활 특별취재팀
이상원, 장은미 기자
여종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