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끝나지 않았다] 1991년은 왜 우리를 불러 세우는가?

1991년 이후,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다.

수많은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전민항쟁과 분신으로 항거하였던 1991년은 새로운 세상을 응답하지 못하였다. 그 후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관리체제로 신자유주의가 본격 도입되어 무한경쟁사회가 한국사회의 공식이 되었다. 또한 대중에게는 소비사회, 신세대, 대중문화,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시대를 대표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세상의 염원은 고사하고 1991년 해결되지 못하였던 대중 투쟁의 과제는 이름을 달리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1991년, 노태우 정권은 민자당으로 3당 합당 이후 내각제로 개헌해 권위주의 세력의 장기 집권 야욕을 통해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운동이 획득한 성과물을 빼앗으려고 했다. 이에 대중은 대통령 직선제 등의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가 공격받고 권위주의 정치 체제로 회귀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전민항쟁을 통한 투쟁으로 맞섰다. 당시 노태우 정권 5년 동안 양심수는 6,614명에 달해 노태우 정권의 반동 공세와 그에 맞선 저항이 매우 치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헬기까지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가 하면, KBS 서영훈 사장 해임을 시작으로 언론통제에도 나서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에 항의한 KBS 노조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투입해 짓밟고 언론 민주화운동을 제도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방송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또한 복직서명을 주도한 전교조 교사 1,000여 명을 중징계했다. 게다가 8월 15일에 개최된 범민족대회는 아예 봉쇄를 하는 등 노태우 정권의 공안 통치가 다시 일상화되었다. 노동쟁의 현장에는 으레 공권력과 구사대가 투입되었고, 대학 역시 경찰병력이 수시로 진격했다.

또한 한국사회 생태문제의 시발이라 할 수 있는 1991년 3월, 두산그룹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1990년 10월부터 구미시 두산전자에서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폐수 325톤이 식수원인 옥계천에 무단 방류된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 결과 박용곤 두산 회장이 퇴진했고 환경처 장관이 경질됐다. 이후 환경, 또는 공해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경각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생태환경문제는 정수기의 본격적 보급 그리고 정수 산업으로 자본의 확장이 있을 뿐, 생태환경문제는 오늘날의 전 지구적 기후위기로 확장되어 우리 삶을 위협하는 위기로 봉착되었다.

또한 한보그룹이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로 꼽히는 수서지역 땅을 위장 매입한 뒤 당시 야당 정치인과 서울시 및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공무원을 매수해 아파트 시공권을 따낸 사실이 알려졌다. 6공화국 최대 권력형 비리로 꼽히는 수서비리는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에도 대규모 신도시 사업지역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다량의 땅 투기를 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LH 직원과 배우자 등이 투자가치가 없어 보이는 땅을 사들였다. 이들이 신도시 사업계획 전에 땅을 매입한 것은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방지 의무 위반과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으로 부동산을 둘러싼 국가적 비리와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1991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자본과 노동의 문제는 더욱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승자독식의 자본의 논리가 확대 강화되었다. 1980년대와는 달리 개혁, 시민사회, 민주주의 담론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1991년에 제기된 정치사회적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1991년 짱돌과 꽃병으로 저항하였던 대중은 이제 촛불을 들고 있다. 권력과 국가에 대한 저항의 방식만 바뀐 것은 아니다. 제도적 민주주의는 훨씬 더 공고해졌을지 모르겠으나, 시민의 인권과 삶이 나아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촛불정부’를 자처하는 정부가 있으나, 여전히 그들의 공정과 그들의 리그에서 대중의 고단한 삶은 여전하다.

코로나19 감염증의 발생과 치명률은 가장 낮아 ‘모범’이라지만, 자살률과 산재 사망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인 상황, 또한 이주민, 여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일상이 된 것, 빈부격차와 자본의 시각이 온전히 투영된 살인적인 경쟁주의로 점철된 능력주의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 속에서 청년들의 삶은 위태로울 따름이다.

권력은 변한 것이 없으며 대중의 삶은 더욱 팍팍한 오늘날, 1991년이 남긴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금,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투쟁은 묵직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다만 앞서서 나간 사람들의 깃발은 나부끼고 있지만, 깃발을 바라보는 대중의 눈은 하나로 향하고 있지 못할 따름이다.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