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끝나지 않았다]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돌아보는 소고 ②

4.
그러나 수많은 유의미한 활동과 다소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 특히 대구 지방자치의 현실은 변화하는 시대적 요청, 높아진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선거결과에 따른 대구 지방정치의 지형을 보면 2020년 7대 지방선거 때 촛불정국에 힘입어 이례적으로 민주당세력이 기초의원 146명 중 51명, 광역의원 30명 중 5명이 당선된 것 외 모든 선거에서- 특히 단체장 선거- 지난 30년간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세력의 압도적 지배 현상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무소속, 민주당, 진보정당의 후보들이 간간이 당선되기도 했으나 큰 의미를 부여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사실상 극우에 가까운 보수정당의 독점적 지배구조는 여전하고 그 결과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채 시민사회의 개혁 요구를 거부하며 더욱 견고해졌다. 이렇게 대구 정치의 변화가 지체된 30년 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복지, 인권, 젠더, 거버넌스, 환경, 교육 등의 분야에서 수많은 유의미한 변화들이 있었고, 같은 영남의 광역시인 부산, 울산, 경남에서 때때로 구청장과 군수, 시장과 도지사, 의회의 다수당이 바뀌면서 여러 가지 개혁이 일어난 것과 비교해봐도 확연한 것이다.

시민 평가는 어떨까. 지난 6월 시민단체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앙정치, 지방정치를 불문하고 국민의 정치 불신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도 대구 지방자치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 지방자치로 주민의 삶의 질이 나아졌는가? 그렇지 않다 63.8%
● 지방자치가 지역발전에 기여했는가? 그렇지 않다 57.7%
● 지방행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가 확대되었나? 그렇지 않다 55.8%
● 지방자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점은? ‘단체장들의 자질과 역량 부족’28.7%,
‘지방의원들의 자질과 역량 부족’(21.1%)

다만 최근 몇 년간 보수 내에서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들로 교체되는 현상, 이를 통해 그나마 시, 구의 행정이 다른 시·도들이 하는 유의미한 정책들을 조금씩 따라가는 나름의 변화 -주민참여예산제, 시민원탁회의와 공론화위원회 등 주민참여와 거버넌스, 사회적경제, 청년, 마을, 공익활동 분야에서 여러 중간지원조직의 설치, 무상급식과 장애인복지 등 사회복지의 다소간 확충- 에 애써 의미를 부여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속 가능한 변화의 흐름으로 보기엔 미지수이며, 아직 강성 보수의 지배력에는 큰 변화가 없고, 정책 방향 또한 우편향 성장주의의 기조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치고는 너무나 중앙집권적인 체제에서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사무조직권 등의 저열한 분권 수준은 지역 간 역량 편차를 넘어 모든 지역 자치역량의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 (사진=경실련)

5.
한국사회의 자치분권 수준과 법 제도적 한계로 인한 지방자치의 문제는 정부와 국회 등 중앙정치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지역별 비교 상황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그 지역의 정치, 행정 역량 및 시민사회 역량의 문제로써 주체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그럼에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치고는 너무나 중앙집권적인 체제에서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사무조직권 등의 저열한 분권 수준은 지역 간 역량 편차를 넘어 모든 지역 자치역량의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 얼마 전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이 본격 시행되면 얼마간 변화는 있겠으나 지방자치를 제약하는 핵심적 요소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현재 한국 도시들의 지방자치 역량, 특히 정치독점으로 인해 역동성이 떨어지고 관료화와 기득권 연합이 구조화되고 있는 영호남 지역 등의 경우 이 상태에서 더 많은 권한과 역할을 부여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부패와 부작용이 염려된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더 많은 자치권을 주되 주민들의 참여와 자치역량을 높이고, 직·간접적 통제 권한을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것과 병행해야 할 문제이지 중앙권력의 시각에서 자치분권을 억제할 일은 결코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방의 자기혁신이다. 물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정치독점을 고착시키는 현행 소선구제 등 선거법을 바꾸는 것은 필수다. 광역의회 소선구제는 일당 또는 양당의 정치독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기제로 작동하며 양당체제 밖 주권자들의 개혁 요구를 정치적으로 봉쇄하고 있으며 결선투표 없는 단체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기초의회도 2~4인 선거구제로 바뀌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거대양당의 야합으로 인해 4인 선거구는 아예 없는 실정으로 기껏해야 거대양당이 양분하거나 영호남에서는 일당이 독점하는 상황이 바뀌지 않고 있다. 따라서 광역의회 비례대표의 획기적 확대, 단체장 결선투표제, 지역정당 설립허용, 기초의회 중대선구제 또는 정당공천제 폐지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 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가 속한 감시형 시민운동은 여야를 떠나 정파적 중립을 지키며 낡고 부패한 세력과 싸워야 하며, 살아있는 권력을 끊임없이 감시, 비판해야 한다. 그것의 현실적 파괴력, 정치적 영향력이 비록 적고, 더디더라도 지속되어야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시민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 현실 정치와 행정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결코 작은 역할이 아니라는 점 새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보다 진보하고자 한다면 공중전은 더 논리적이고 치밀해야 하며, 문제의 경중을 가려 가장 강한 기득권을 타깃으로 집요하게 싸워야 하고, 관행적 연대를 넘어 현장, 당사자들과 생동감 있게 연대하여 그들의 목소리가 지역사회의 여론, 정책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적어도 대구에서는 현실의 제도정치를 바꾸기 위한 전략적 시민정치운동도 필요하다. 이렇게 보수 일색 정치지형에서, 허약한 시민사회, 분열된 진보정치 세력이 각개약진할 때 어느 세월에 지역의 정권과 정치를 교체하겠는가. 7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광역의회 의석 일부와 기초의회 의석 상당 부분을 획득했고, 나름 정당 간 경쟁과 변화가 촉진되었으나 여전히 강고한 보수정치의 벽, 자신들의 지방정치 전략 부재와 무능에 의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그간의 선거 때 간간히 정책연대, 후보 단일화 연대, 풀뿌리 후보 연대, 교육감 선거 연대 등의 시도가 있었으나 대부분이 실패하였다. 시민사회에서는 급진적 성향과 점진적 성향의 불일치가 있었으며, 정당 간에서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장기적 준비 없는 단기적 필요에 의한 전략 부재 등이 원인이었다. 이제 대구 집권, 대구 정치교체라는 중장기적,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하는 정당정치와 시민 정치 간의 집권연합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6.
91년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으나 좌절도 깊었으며 그만큼 그 후의 성찰과 다짐도 결연했다. 이렇게 91년 통과한 세대들이 지방자치 시대, 시민운동의 주역이 되었으며, 사회 곳곳에서 이름 없이 헌신하며 변화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91년 세대 역시 이제 기성세대가 되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 지역 사회 변화를 위해 진보성을 지키는 한편 스스로 변화하며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고, 사회운동이 선순환되게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시민운동은 무엇보다 세대 간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시민운동만의 문제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쉽게 성과를 볼 문제도 아니다. 물론 세대 간 소통, 대중성 확보를 위해 진보성을 희석시켜도 안된다. 그럴지언정 소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동의 지속성은 사회변화의 흐름에 묻어간다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고군분투해야 한다. 과거 호시절 10을 노력해서 10이나 그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면, 지금은 10을 투자해서 2~3밖에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린 자세, 창조적 방식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운동이 청년,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을 것이고, 더 가치 있게 살아남아 지역사회를 바꿀 것이다.

대구라는 힘든 토양 위에서 변함없이 분투하는 91년 투쟁 세대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대구사회의 혁신을 위한 보다 창조적 분투를 함께 하길 기대해 본다. (끝)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