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보내며] (1) “한국게이츠 문제, 남 일처럼 안 봤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공장 앞에서, 1년 6개월의 투쟁을 돌아보다
“외투기업 개정안 통과되길 바라... 남 일처럼 여기지 않길”

20:23

2021년 12월 31일 오전,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산업단지에 있는 한국게이츠 공장 앞에서 해고노동자 채붕석(46) 한국게이츠지회장을 만났다. 공장 입구에는 여전히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문패가 붙어있었다. 21년 동안 매일 출퇴근을 하던 공장이었고, 1년 반 동안은 공장 앞 천막이 곧 집이었다. 대구시와 서울 청와대, 국회, 현대차 본사 등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도 투쟁 거점은 바로 이곳이었다.

여기에 오는데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확정돼서 씁쓸하고…

2020년 6월 26일 공장 폐업 통보 이후 150일 동안 공장 안에서 농성을 벌이다 공장 밖 인도에 천막을 쳤던 것이 그해 11월 23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이 1년 6개월의 투쟁 중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가) 많았죠. 왜 이러고 있을까? (생각했죠.) 한 명씩, 두 명씩 나갈 때마다 그때마다 비가 왔어요. 140명이 다 같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때 많이 울었어요. 대부분 미안한 마음에선지 몰래 가셨죠. 울면서 손 잡아주고 미안하다 나가신 분들도 있었고요.

지난 27일 대구시청 앞 천막농성장까지 정리하는데 550일이 걸렸다. 당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는 147명이었고, 마지막 투쟁 마침표를 찍은 건 채 지회장을 포함한 19명이었다. 채 지회장은 현재 조합원 3명은 배달기사(라이더)와 화물업체에서 일한다고 했다. 나머지 동료들은 내년부터 구직을 시작할 계획이다. 채 지회장은 “(성과가 부족하다고) 조합원들은 패배감도 좀 느끼는 것 같다”며 “그렇지만 550일 동안 19명이 전국을 시끄럽게 하고 외국인투자법 개정안 발의와 손배가압류 소송을 철회시킨 것이 성과다. 그걸 가슴에 새기고 자부심을 갖고서 당당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지난 3월 도보투쟁을 마치고, 한국게이츠 공장 앞에 있는 천막농성장에 채붕석 지회장과 조합원 일부가 모여 있는 모습. 지난해 11월 23일 세워진 천막은 지난 12월 16일까지 공장 앞을 지켰다. (뉴스민 자료사진)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비례)은 외국인투자 촉진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개정안은 고용불안을 막고 외국인투자 기업이 부정한 방법으로 임대료 감면 등 혜택을 받은 경우 부당이득을 환수하도록 했다. 채 지회장은 “그럼 외국인들이 투자하지 않게 막는 거 아니냐고 오해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면서 “지금까지 지자체, 정부에서 많은 혜택을 줬는데, 나갈 때는 제재 장치가 없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혜택을 주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을 부여해야 된다”며 “처음에는 저희들이 고용승계를 목표로 삼았다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용승계도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것은 한국게이츠 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채 지회장은 한국게이츠 사태를 사람들이 “남 일처럼 안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 (논공)공단 안에도, 지금 금속 노조 안에도 거의 반 이상의 외국인투자기업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미리 좀 대비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협이나 뭐 제재할 수 있는 게 한 개도 없어요.

▲ 채붕석 지회장을 포함한 19명의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 모습. 이들은 지난 6월 25일 열린 ‘한국게이츠 투쟁 1년 문화제’에서 무대에 올라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뉴스민 자료사진)

마지막으로 채 지회장에게 새해 소망을 묻자, 웃으면서 짧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

하하. 하. 저희들 550일 동안 투쟁하면서 받은 사랑이 너무나 많아요. 끝이 안 보이는 투쟁이라고 하면서도 동조단식부터 시작해서, 투쟁에 다 결합해 주신 동지들이 너무 많거든요. 제가 보탬이 되는 활동을 좀 해야 되겠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이 가족들과 좀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새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취재=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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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및 편집=천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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