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그의 미래가 보이네 ‘특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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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추격은 격투, 총격전과 함께 액션 영화의 3대 볼거리로 통한다. 긴박감과 박진감을 충족하는데 맨몸으로 벌이는 액션과 쫓고 쫓기는 자동차들의 질주, 여러 종류의 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는 액션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됐다.

자동차 추격 액션이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 영화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다. 차량 액션의 비중이 높고 차량 스턴트에 공을 많이 들인 덕분이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러닝타임 내내 자동차 추격전을 벌인다. 차량들이 이리저리 부딪혀 박살나는 장면을 보기 편한 화면 구도로 선보여, 자동차 추격의 교과서를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자동차 추격과 음악을 절묘하게 연결해 애매한 이야기 전개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송>은 <베이비 드라이버>와 닮았다. 주인공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운전수이고, 뛰어난 운전 실력을 도주에 쓰고 있다는 점, 오프닝이 인상적인 자동차 추격신이라는 것, 오프닝 이후 다소 헐렁해지는 자동차 추격, 결말로 갈수록 산만해지는 이야기 전개까지 흡사하다.

은하(박소담)는 돈만 주면 무엇이든 목적지로 배달해주는 운전수다. 한탕 뛰기만 하면 1,000만 원은 거뜬히 번다. 벌이가 짭짤한 만큼 위험도 따르지만, 은하는 탁월한 운전 실력으로 임무를 완수해왔다. 오프닝에서 은하는 인상적인 차량 액션을 선보인다. 비좁은 골목길에서 속도감이 느껴지는 질주는 짜릿하고 시동을 끈 채 중립 기어로 바꿔 서서히 비탈길을 내려가는 장면은 위트까지 섞여 감탄사가 나온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때부터 은하는 차가 아닌 맨몸으로 남성들과 맞서 싸운다. 자동차 추격이 슬슬 눈에 익어질 무렵 색다른 액션 시퀀스를 배치한 건 현명한 선택이다. 자동차 추격신은 필연적으로 장면 전환이 빠르고 액션이 고속으로 진행된다. 금세 눈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관객 입장에서는 눈이 피곤해지다가 그냥 보는 것을 포기해버린다. 그 때문에 고난도 자동차 액션에만 의존하는 식상한 방식을 떠나 색다른 액션을 펼친 것이다. 배우 박소담의 맨몸 액션의 밀도와 완성도는 자동차 액션과 비교해 결코 부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밀항을 시도하는 아버지 두식(연우진)와 어린 아들 서원(정현준)이 나타나면서, 서사는 산만해진다. 범죄 조직 수장이자 경찰 경필(송새벽)과 상훈(허동원)은 조직의 돈을 챙길 수 있는 보안키를 가로챈 두식을 쫓고, 두식은 무슨 이유인지 목숨을 걸고 밀항하려 한다. 두식은 제 목숨을 버려 아들을 도피시키면서 경필의 표적이 되는 보안키를 서원의 손에 쥐어준다. 오히려 위험해지게끔 만든 게 이해되지 않는다.

서원을 태운 은하는 경필 일당에 쫓기고 은하와 서원은 점점 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은하와 서원이 친밀해지는 과정에서 관객은 둘의 감정선을 따라가지 못한다. 열 살 남짓한 서원이 상황에 따라 어른스러워졌다가 다시 어린 아이로 돌변하고, 억지로 서원을 떠맡은 은하는 경필과 맞서면서 서원을 대하는 태도가 갑작스레 바뀐다.

서원이 은하에게 “사는 건 원래 이렇게 힘들어요?”라고 묻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사면초가 상황에서 어린 아이에게 호의를 베푼 이유가 분명해야 하는데, 은하와 백 사장이 보여주는 선의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이야기가 얹어지고 사건이 연결되는 플롯이 탄탄하지 못한 탓이다.

영화는 중반부를 넘어 국정원 요원 미영(염혜란)이 나타나 은하의 정체가 탈북민이라는 게 드러나고, 백 사장(김의성)과 아시프(한현민)가 경필 일당에 맞서게 되면서부터는 낡아도 너무 낡은 클리셰를 반복한다. 클리셰가 강하게 묻어나는 대목은 결말에 들어서다. 액션은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따라 안정적인데 반해, 이야기는 개연성을 떨어트리는 전개로 이어간다. 저게 말이 되나, 싶은 장면도 몇몇 있다. 서사는 다른 영화에서 익히 봐온 것들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인물이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아마 대부분 예상할 것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