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황무지] ⑥ 희망원에서 나온 금순 씨에게 자립이란

뉴스민 10주년 기획취재 [신호, 등] 4. 탈시설
30년 만에 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서금순 씨
먹고 살길 막막해 희망원 폐쇄 반대했지만...
"자립 알았으면 진작 했을텐데"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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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이 넘지 못하는 문턱이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시민의 당연한 권리가 제한되어 왔던 이곳에 관심이 뜨겁다. 어떤 정치인은 “지역사회 복지서비스 강화 이전에 강요로 시행되는 탈시설 정책은 인권 유린”이라고 비판했다. 옳다. 하지만 누구도 장애인을 황무지로 보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탈시설’ 요구에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요구가 포함된다. 그 준비를 해야 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에게 있지만, 지금껏 정치는 그 의무를 외면했다. 정치가 사라진 비문명의 황무지에서,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는 한쪽에 헌법이라는 무거운 책무를, 한쪽에는 죄책감을 짊어져야 했다.

① ‘기환이 엄마’ 앞에 놓인 선택지
② 발달장애 아들과 황무지를 개척한 33년
③ 벼랑 끝 발달장애인 부모
④ 경북에서 장애인 자립하기
⑤ 장애인 시설 원장이 말하는 탈시설
희망원에서 나온 금순 씨에게 자립이란

서금순 씨는 희망원 폐쇄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희망원 장기입소자다. 희망원 인권침해 사태가 알려지고 난 뒤, 금순 씨가 거주하던 시설을 폐쇄한다고 하자 금순 씨는 날벼락을 맞은 듯했다. 희망원 안에서 지낸 세월이 31년, 지체장애인으로 환갑을 넘긴 나이,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시청을 찾아 시위도 했지만, 같이 생활하던 거주인들은 하나둘 자립을 시작했다. 금순 씨는 희망원을 떠나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텼으나, 먼저 자립을 시작한 거주인들이 전하는 소식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서금순 씨는 희망원에서 탈시설한 뒤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거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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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 씨는 1988년 희망원에 입소했다. 급작스런 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신 상황. 그 시절 한국에는 활동 지원이나 자립생활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병원은 금순 씨에게 희망원 입소를 권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금순 씨는 그길로 희망원에 들어갔다.

희망원 생활은 형편없었다. 보일러조차 없이 연탄으로 난방을 했고, 생활관 1실에 7~8명이 함께 거주했다. 같은 생활관을 쓰는 장애인들은 유형별 관리도 없었고, 정신장애, 지체장애,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거주 장애인은 때로 폭력을 당하거나, 독방에 가둬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금순 씨는 자기도 같은 상황에 부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불안감 속에서 시설 생활을 이어갔다.

그 생활이 10년, 20년을 넘어 30년이 되면서 금순 씨는 희망원 생활에 적응했다. 연탄보일러는 가스보일러로 바뀌었고, 찬물밖에 안 나오던 목욕탕에서 온수도 나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희망원 인권침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이상 희망원이 전과 같이 운영될 수는 없는 상황에 부닥쳤했다. 일부 시설을 폐쇄해야 할 상황에서 금순 씨는 시설 폐쇄에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같이 지내던 거주인들이 자립생활을 체험하고 돌아와 금순 씨에게 경험담을 전했고, 금순 씨도 자립생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30년 동안의 희망원 생활을 끝내고 금순 씨는 2019년,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자립생활 체험을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자립생활은 어려운 점도 있었다. 활동 지원 시간이 생각보다 충분하게 나오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장애인이 65세를 넘어서면 기존 활동 지원 급여 지원을 종료하고 요양급여를 통해 활동 지원을 받도록 했기 때문에, 하루 3시간의 서비스만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추가 활동 지원 급여를 지급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정부는 2021년부터 제도를 개선해 만 65세를 넘긴 장애인에게도 추가 활동 지원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금순 씨는 현재 하루 약 14시간의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금순 씨는 시설에서 처음 나와, 활동 지원사에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했던 부탁이 기억난다. 항상 급식만 먹어야 했던 금순 씨는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먹는 기쁨을 잊고 살았다. 자립하고 보니 정해진 식단표가 없었다. 수제비를 먹고 싶었던 금순 씨가 활동 지원사에게 부탁하자, 30분도 되지 않아 수제비 한 그릇이 나왔다.

▲희망원에서 탈시설한 뒤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거주 중인 서금순 씨

“급식만 먹다가, 수제비가 먹고 싶더라고요. 수제비가 앞에 딱 나오는데, 수제비를 받아들고 보니 그게 행복이더라고요. 내친김에 서문시장도 가보고. 자야 할 시간에 야시장도 가보고. 그게 행복이에요. 왜 진작 안 나왔을까. 그게 아쉽죠. 지금도 시설 안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이 있는데요. 사는 게 뻔하지 않을까요? 오늘(14일) 방송 보니 안동에 또 시설에서 폭행 사건이 있더라고요. 얼마나 비참합니까. 아직도 그런 세계가 있어요. 그 사람들도 사회를 누릴 권한이 있잖아요. 다 같이 잘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