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 ⑤ 미등록 이주민에게 ‘국제의료관광코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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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플 때 누구나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보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면서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이들은 한국의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아프거나 다쳤을 때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더욱 큰 손실을 감당해야 하지만, 이들은 미등록 단속의 두려움 속에서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제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의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이들이 있다.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동행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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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빛누리 (이주민건강권실현동행)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평등’이란 가치에 민감히 반응했다. 그때부터 ‘평등’을 훼손시키는 인간관계와 제도권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삐딱이’가 되어갔다. 태어나면서부터 믿게 된 제도종교의 신은 멀어져가고, 근대 철학자들이 신 존재의 근거라 추정하는 ‘자연법(인간 본성의 법칙)’만이 나를 종교인으로 붙들어 주는 유일한 끈이 되었다.

사람은 각자 다른 개성과 성향을 지녔지만, 모든 물체가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알고 지배받아야 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자연법칙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인간은 자기 생각과 행동을 분리시키고 자신을 배반하는 특이한 생물종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몸에 관한 ‘평등’ 문제라면 민감해야 하지 않을까?

‘의료 불평등’은 인간의 몸을 대상화하는 문제이기에 조금 더 민감하고 싶다. 악마는 뒤처진 자부터 잡는다고, 자본주의라는 정글 속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서 있는, 유독 쉽게 아프고 먼저 사라지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민’들이다.

‘미등록 이주민’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한’ 처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중에서도 ‘의료 불평등’이 크게 다가왔다. 7년 전이었던가? 한 미등록 이주민을 돕는 활동가로부터 베트남 여성의 치료비 문제로 상담요청을 받았다. 그녀는 고열을 동반한 탈수증세로 지역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이상소견이 없었다. 3일 정도 지나 몸이 회복되면서 퇴원했다.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 병원비였다. 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고가의 약물을 투여한 것도 아닌데 800만 원이 넘는 청구서가 나온 것이다. 원무과에 찾아가 병원비 정산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냐고 물었다. 비보험 환자니 당연히 일반 의료수가 100%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보니 250%가량 되었다. 무슨 근거로 250%로 산정되었냐고 물으니 ‘국제의료관광코드’로 잡혀서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리 미등록이고, ‘불법’이라지만 어떻게 우리나라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그런 비싼 요금체계를 매길 수 있나? 미등록 이주민 활동가들이 병원비 때문에 맘 졸이고 애써 모금한 기금이 그렇게 쓰였단 말인가? 분하고 허탈했다.

‘국제의료관광코드’는 의료서비스 이용을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에게 적용하도록 되어 있는 국제수가를 의미한다. 우리의 경우 대개 중국이나 러시아의 부유층이 한국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적용된다. 개별병원 자율에 따라 책정되는데 대개 건강보험의 3~5배, 일반수가의 1.5~2배에 달한다. 국제 의료 관광 유치는 의료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의 ‘신성장 동력’ 산업 중 하나다. 한국관광공사가 주도하는 경제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라고도 한다.

하지만 ‘국제의료관광코드’를 미등록 이주민에게 적용하는 순간 우리의 먹거리를 위해 그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셈이 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실시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용역에선 ‘국제의료관광코드’ 적용이 미등록 이주민의 건강권을 저해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지목됐고, 병원이 미등록 이주민에게 ‘국제의료관광코드’를 적용하는 것을 제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됐다. 지역 대학병원은 간혹 사정 감안해서 몇십 프로 할인해 주면서 생색내기도 하는데, 그것도 국제코드 가격조건에서 깎아 준 것이니 그리 고마워할 일도 아니다.

필자가 믿고 있는 종교 경전에서 ‘평등’은 원래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원래의 질서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평등이라는 것이다. 지금 대학병원들이 미등록 이주민에게 부과하는 의료수가는 비정상적인 자리에 놓여있다. 미등록 이주민에게 부과하는 국제의료관광코드 적용 반대는 시혜적이고 인도주의적 차원의 고려가 아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정민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