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3) 경북 영양 풍력발전단지와 사람들 (하)

(하) 풍력은 주민을 ‘외부’와 더 소통하게 한다
경북에서 풍력발전단지 가장 많은 영양
주민참여 수익형 투자사업설명회에 마을 사람들이 몰리고
반대주민들은 '산양협회'를 만들어 저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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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4일의 금요일’은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뉴스민>의 집중취재 코너입니다. 간단한 단신으로 다뤘던 뉴스의 이면을 한 발 더 들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4일의 금요일’ 세 번째는 경북 영양 풍력 단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88기인 풍력발전기는 공사 중 10기와 인허가 중인 14기가 추가로 들어서면 경북 영양엔100기가 넘는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게 됩니다. 경북 영양을 찾아 풍력발전단지 현장을 둘러보고, 마을 주민들과 사업자, 영양군청 인허가 담당자 등을 만났습니다.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에게도 더 나은 풍력을 위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상) 풍력발전사업, ‘주민수용성’ 해결이 관건
(하) 풍력은 주민을 ‘외부’와 더 소통하게 한다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 158번지.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은 오랫동안 평범한 펜션이었다. 청정한 자연에서 삼림욕을 즐길 사람들이 ‘펜션예약’, ‘식당예약’ 번호를 알리는 입간판 앞을 지나치며 산으로, 계곡으로 다녔다. 3년 전 무렵 ‘펜션예약’, ‘식당예약’ 번호 맞은편으론 새로운 간판이 생겼다. 산양 한 마리가 늠름하게 그려진 노란 간판에는 ‘(사)한국산양보호협회 영양지회’라고 적혔다. 같은 간판이 붙은 컨테이너 한 동도 마당 안쪽에 들어와 사무실이 됐다. 이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삼림욕을 즐기는 사람만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오전 10시, 10여 명의 사람들이 컨테이너 사무실에 빼곡하게 둘러앉았다. 어두운 조명이 비추는 6평 남짓 사무실은 모든 벽면이 멸종위기종 관련 포스터로 가득 찼다. 먼지가 내려앉은 상자 안에는 색 바랜 현수막과 종이 문서들이 보였다. 현수막 군데군데 ‘풍력’, ‘반대’ 같은 글자가 드러났다. 과거 어느 집회, 어느 기자회견에 사용됐음직한 흔적이다.

▲컨테이너 사무실 벽면은 멸종위기종에 대한 포스터로 가득 차 있다.

더운 여름 낡은 선풍기 2대가 소리를 내며 내뿜는 바람에 의지한 채 컨테이너에 모인 이들은 같은 고민을 공유했다. 이들이 갖는 고민거리는 풍력발전이다. 한 부부는 영양풍력단지가 들어선 영양읍 무창리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에서 왔고, 안동시 길안면에서 온 주민 7명은 그곳에서 추진되는 새로운 풍력발전 사업에 반대해 ‘안동 황학산 풍력단지 저지 대책위원회’도 조직했다.

이들은 먼저 풍력 발전을 맞닥뜨린 ‘영양제2풍력저지공동대책위원회’ 주민들에게 반대 활동의 노하우를 배우려 왔다. 사는 곳도 다르고, 특별한 인연도 없던 이들은 풍력발전을 매개로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했다. 마치 오래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처럼 정을 나눴다.

영양제2풍력저지공대위는 AWP대책위, 홍계리 풍력반대대책위 등 풍력발전단지가 생길 때마다 이름을 바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활동비는 2015년부터 약 2년, 2021년부터 최근까지 가구당 월 2만 원씩 모았다. 한 달 전에는 전국 곳곳 전략환경영향평가 유관기관을 찾아 스스로 모은 멸종위기종 산양 모니터링 자료를 제출했다. 생태적 측면에서 유관기관들에 반대 의견을 전했다. 이달 초에는 국회를 찾아 국회의원에게 자료 확보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대책위 한 주민은 “우리는 고추 농사지어 내다 판 돈으로 반대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영덕에 사는 부부에게, 또 다른 풍력발전지로 꼽힌 지역의 주민들에겐 환대받지만, 정작 인근에 사는 이웃에겐 그다지 좋은 시선도, 관심도 받지 못한다. 주로 농사를 짓는 이들은 농번기엔 함께 노동력을 나누고, 농한기엔 삼삼오오 모여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거나 명절 윷놀이로 정을 다지곤 했다.

▲풍력발전에 반대하는 경북의 주민들이 영양의 풍력발전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풍력발전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을의 풍경은 조금씩 변했다. 생업인 농사일은 서로 놉을 팔며 함께 하지만, 누군가의 사랑방에는 10원짜리 고스톱 멤버가 바뀌었고, 명절 윷놀이의 흥도 옅어졌다. 바뀐 고스톱 멤버, 옅어진 흥 사이로 껄끄러움, 서운함, 불편함, 원망이 쌓였다.

석보면 삼의리에서 오래 가축을 키우며 농사를 지어온 김진원(71) 씨도 그렇다. 그는 이제 풍력발전에 대한 의견이 맞는 이들과 깊은 정을 나눈다. 그는 “2017년쯤인가, 풍력발전에 대한 의견이 달라지면서 (찬성 주민들과)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삼의리 주민 남실관(85) 씨도 “마을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졌다. 중간은 없다. 가만히 있으면 찬성이 된다”며 “찬성하는 사람끼리, 반대하는 사람끼리 어울린다. 풍력발전이 마을을 갈라놓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풍력발전을 도입·추진하는 영양군이나 발전사업자에 대한 불신도 크다. 농기계대리점을 운영하는 이민우(62, 영양읍 대천리) 씨는 그들 탓에 자신들이 ‘시위꾼’이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씨는 “군청은 사업자 편이라고 생각한다. 믿을 수 없다”며 “전임 군수도 토착 비리로 감사원에 걸렸다”고 말했다. 박충락(66, 석보면 홍계리) 씨는 “시골 사람들이 뭘 알겠나. 사업자에게 회유된 이장들이 마을 사람들을 동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중 영양군 농민회장(70)은 ‘회유’ 당한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회사에 고문으로 오면 월급도 많이 주고, 좋은 차로 바꿔준다더라”며 “몇 년 치를 계산해보니, 몇억 수준인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죽을 때까지 밥은 먹고 산다. 그런데 쓸 기운 없다’고 화를 냈다”고 회상했다.

풍력발전을 ‘인정’하는 주민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반대 측 주민들과 서먹해진 것은 맞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부’고, ‘외부 사람’들이라 크게 개의치 않는다. 김진득 석보면 이장협의회장(64, 화매1리 이장)은 “반대하는 사람은 일부”라고 했고, 석보면을 지역구로 둔 장수상 영양군의원(60, 국민의힘)도 “반대 주민은 일부고, 외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석보면 화매리 화매권역센터에서 열린 ‘영양제2풍력발전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 설명회’가 열렸다.

마찬가지로 외부사람이지만 풍력발전사업 관계자들과는 마을과 지역 발전을 위한 ‘진지한’ 의견도 나누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연출한다. 지난달 30일 석보면 화매리 화매권역센터에서 열린 ‘영양제2풍력발전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 설명회’ 분위기가 그랬다. “(풍력발전) 회사가 망하면 투자금을 어떻게 됩니까?” 하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설명회는 진지함과 화기애애함을 넘나들며 1시간가량 이어졌다. 참석 주민들은 대부분 60~70대 남성이었으나 부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다. 화매1리에서 고추와 담배 농사를 짓는 신정한(59) 씨를 비롯해 마을 이장이나 군의원 등 지역 ‘오피니언 리더’를 포함해 주민 30여 명이 있었다.

재생에너지 펀딩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주민들이 투자하고 운영 수익을 배당하는 기본적인 방식에 대해 약 20분 동안 발표했다. 이미 자신들의 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투자사업도 예를 들었다.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은 소음 하나 없이 발표자의 손짓, 발짓, 발표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은 더 뜨거웠다. 발표 때보다 두 배 가량 긴 시간이 질의응답에 할애됐다.

설명회 주최 측은 주민들의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답을 하려는 듯 질문 횟수나 시간을 제한하지 않았다. 비슷한 질문도 반복됐지만 사업 관계자들은 친절하고 세심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주민들은 정확한 수익, 수수료, 투자 한도, 투자 안정성 등에 궁금한 것이 많았다.

사업 관계자는 영양 제2풍력발전 사업은 총사업비의 4~6%를 펀드로 모집해 최소 7% 금리 보장 형태로 발전 운영수익을 보장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주민수용성 제고 차원에서 지난 2020년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신설된 법령에 근거한 것이다. 영양제2풍력발전사업을 운영하는 ㈜GS풍력 관계자는 설명회 내내 정중하고, 친절하게 질문에 답했다.

김정훈 GS풍력발전 차장은 “회사가 지역 지원금 외에도 장학사업, 집 고쳐주기 사업 등 지역에서 사회복지사업을 꾸준히 한다”며 “사업 초부터 상생을 강조해온 영향인지 주민들과 관계가 좋게 지속되는 것 같다. 주민들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니 저희도 고맙다”고 말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풍력발전에 큰 불만을 드러내진 않았다. 이들은 풍력발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그로인해 마을과 자신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보상은 밤마다 들리는 발전기 날개 소음도 ‘짜증’의 대상에서 ‘즐거움’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2년 전 자신의 집 500m 정도 거리에 풍력발전 약 10기가 들어선 요원2리 주민 A 씨는 “낮보단 밤에 날개 도는 소리가 더 크다. 소음에 잠이 깨기도 할 정도다. 비행기 소리 같아서 당연히 불만이 있었다. 풍력만 봐도 열 받는다고 할까”라면서 “지금은 지원금, 위로금, 전기세 대납도 해주니까 풍력이 안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는 걸 보면 즐겁고, 재밌다”고 말했다.

화매1리에서 두 번째로 젊은 신정한(59) 씨는 ‘상생’으로 의미를 설명했다. 신 씨는 “지금처럼 상생해서 동네에 도움을 주면 굉장히 괜찮을 것”이라며 “대기업이 자긴들 돈 벌어간다고 하면, 실제 환경 훼손은 주민들 몫이다. 그런데 회사가 주민과 같이 뭔가 해보겠다고 하면, 주민들은 완전 반대하기보다 같이 살게 되지 않겠나”고 전했다.

장수상 군의원은 “영양은 인구소멸지역이고 지역 경제를 유발할 수 있는 게 풍력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집에서도 발전기 10개가 돌아가는 게 보이는데, 괜찮다. 소음도 크게 없다”며 “풍력회사가 지역에서 복지사업도 많이 하고, 세수도 많이 확보되고 얼마나 좋은가”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들도 더 많은 풍력발전을 원하는 건 아니다. 김진득 회장은 발전회사와 주민 간 합의가 잘 된 덕에 지금까지 풍력발전 사업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는 점을 짚으면서도 “더 이상 들어오면 우리 삶에 지장이 많을 것 같다”며 “도로교통 문제나 인근 소음, 환경 훼손 문제가 있다”고 우려했다. 신정한 씨 역시 “환경이 훼손되는 것 같다. 더 들어오면 문제가 좀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득 회장은 “지금까지 들어온 풍력발전은 어느 정도 마을 주민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도 “처음 들어올 때 시골 사람들이 무지하고 잘 몰라서, 사업 허가가 났으니 그냥 수긍해준 면이 크다. 풍력이 들어오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잘 몰랐다”고도 덧붙였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