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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14년 12월 도입된 달구벌건 강주치의 사업은 올해로 햇수로 10년 차다. 그사이 부침이 없진 않았지만, 지역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곳곳에 숨겨져 있던 복지 사각지대의 시민을 발굴해 희망을 안겼다. 절망 속에 있던 그들은 달구벌 사업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말한다. 희망이 건네진 이는 1,733명(2022년 9월 기준). <뉴스민>은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의 과거를 톺아, 성과를 살펴보고, 더 큰 희망을 위한 숙제도 짚어본다. 기획 취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됐고, 7회에 걸쳐 나눠 연재된다.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① “달구벌 때문에 희망을 가졌어요”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② “이젠 끝이구나···” 사각지대를 제도 품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③ 고립 1020의 문을 열고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④ 8년간 복지사각지대 717명 발굴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⑤ 숙제=동북권+네트워크+규모·내실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⑥ “돈 없어도 괜찮아. 나가서 봐줄게” 두 가지 원칙에서부터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⑦-1. “취약계층 희생으로 공중 보건 위기 극복···희생자, 무작위 선정되지 않아”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⑦-2. 더 나은 취약계층 의료지원 정책을 위한 제언

김현지(가명, 24) 씨는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을 통해 ‘문’을 열었다.

현지 씨는 비만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경북의 한 세무사무소에 취업했지만 오래 일하지 못했다. 대구로 돌아와 할머니와 같이 살며 취업 준비도 해봤지만 잘 안 됐다.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비만한 몸이 발목을 잡았다. 김 씨는 조금씩 문을 닫아 갔다. 사회로 향하는 문을.

집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가 늦게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몸은 더 비만해졌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든 지경이 됐다. 키는 160cm에 조금 미치지 못했지만, 몸무게는 100kg을 훌쩍 넘어섰다. 닫힌 문은 더 견고해졌다. 왕래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도 없이, 할머니가 거의 유일한 사회로 열린 창구였다.

지난해 4월께, 유일했던 창구도 빛을 잃었다. 몸이 좋지 않았던 할머니에게 코로나19까지 더해졌다. 할머니는 생을 떠나면서도 현지 씨를 걱정했다. 동네 통장이 할머니를 걱정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까지 이어졌지만, 할머니는 자신보다 현지 씨를 부탁했다. 할머니의 권유로 현지 씨는 대구의료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창구를 찾았다.

현지 씨 같은 젊은층이 달구벌의 수혜자가 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사업인 만큼 ‘고령’의 ‘빈곤’한 이들이 주된 대상이지만, 1020 세대도 매년 달구벌 수혜자의 10% 안팎을 차지한다. 대구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2014년 12월부터 2022년 9월까지를 기준으로 분석한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수혜 대상자 현황을 보면, 2015년(2014년 12월 포함) 1020세대 수혜자는 4.9% 수준에서 2016년 12.4%까지 늘었다. 이후 7~14% 수준에서 꾸준하게 1020 수혜자가 확인된다.

▲김현지 씨는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을 통해 ‘문’을 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닫아 건 문은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이후 조금씩 열렸다.

달구벌건강주치의를 통해 ‘문’을 열다
생을 떠나면서도 손녀를 걱정한 할머니

박종명 대구의료원 가정의학과장은 현지 씨를 보며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달구벌)의 의미를 되새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변화되는 걸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현지 씨 사례는 의학적으로도 놀라운 사례예요. 처음 외래에 왔을 땐 혼자 걷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어요. 달구벌을 통해서 치료 받으면서 한 사람의 삶이 바뀌는 걸 보면, 저희가 고무적이고 감동을 받아요”

현지 씨에겐 무엇보다 비만 치료가 급선무였다. 박 과장은 처음 현지 씨를 만났을 때 입원을 권했다. 외래진료만으론 체중 감량이 쉽지 않을 거라고 봐서다. 약 2개월 동안 입원 생활을 하면서 현지 씨의 몸은 꽤 큰 변화를 보였다. 병원에서 하는 규칙적인 생활과 비만 치료 덕에 20kg가량이 감량됐다. 현지 씨의 변화에 고무된 박 과장은 그에게 비만대사수술도 권했다. 망설임도 있었지만 현지 씨는 박 과장에 대한 믿음으로 7월경 수술도 받았다.

4월 처음 달구벌을 만난 현지 씨는 수술과 치료, 적절한 식단 조절이 더해지면서 연말께 100kg 아래로 체중을 줄였다. 올해들어선 운동도 시작했다. 달구벌이라는 새로운 창구가 또 다른 창구를 열기 시작한거다. 밤 늦게 자고 오후에야 일어나던 하루 일과는 오전 8~9시 기상으로 바뀌었다. 게임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운동과 공부도 일과에 포함됐다. 취업 준비를 위해 전세회계/세무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친구도 새로 사귀었다. 지난 1월, 박 과장은 오랜만에 외래진료를 보러 온 현지 씨가 오래 신던 낡은 운동화 대신 하얀 새 운동화를 신고 온 걸 보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친구랑 나가서 새로 샀어요.”, “친구 없었잖아요?”, “새로 생겼어요.”

“저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걸 보니까, 저희도 감동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달구벌건강주치의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의사 한 명이 잘 본다고 되는 게 아닌 일이죠.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대학병원과 여러 단체까지 톱니바퀴 돌듯하는 각계각층의 도움이 새로운 삶을 그분들에게 줄 수 있는거죠. 뭐랄까, 종합예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종명 과장)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