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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14년 12월 도입된 달구벌건 강주치의 사업은 올해로 햇수로 10년 차다. 그사이 부침이 없진 않았지만, 지역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곳곳에 숨겨져 있던 복지 사각지대의 시민을 발굴해 희망을 안겼다. 절망 속에 있던 그들은 달구벌 사업을 통해 ‘희망’을 봤다고 말한다. 희망이 건네진 이는 1,733명(2022년 9월 기준). <뉴스민>은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의 과거를 톺아, 성과를 살펴보고, 더 큰 희망을 위한 숙제도 짚어본다. 기획 취재는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됐고, 7회에 걸쳐 나눠 연재된다.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① “달구벌 때문에 희망을 가졌어요”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② “이젠 끝이구나···” 사각지대를 제도 품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③ 고립 1020의 문을 열고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④ 8년간 복지사각지대 717명 발굴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⑤ 숙제=동북권+네트워크+규모·내실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⑥ “돈 없어도 괜찮아. 나가서 봐줄게” 두 가지 원칙에서부터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⑦-1. “취약계층 희생으로 공중 보건 위기 극복···희생자, 무작위 선정되지 않아”
[절망을 희망으로, 달구벌의 건강주치의] ⑦-2. 더 나은 취약계층 의료지원 정책을 위한 제언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오곤 한다. 곽상문(가명, 66) 씨에게도 그랬다. 2014년 2월 어느 밤, 그는 대구 달서구 송현동의 어느 골목에서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지인과 반주를 겸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바늘로 쉼 없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고통이 이어졌다. 데굴데굴 길바닥을 구르는 상문 씨 주변으로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기 바빴다. “술을 먹었으면 곱게 집에 들어가지” 고통 속에서도 그렇게 수군대는 소리가 상문 씨의 귀에 꽂혔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통에 그의 품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어떤 힘이 남았던지, 휴대폰을 집어든 그는 오래 왕래가 없던 아들의 번호를 누르고, 끙끙댔다. 그리고 잠시 후 119 구급대원이 그를 찾았다.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옮겨진 후 그는 긴급하게 심근경색을 치료하는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119는 아들이 휴대폰 위치추적을 요청한 덕에 출동했다.

한 차례 고비를 넘긴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심근경색 시술을 받은 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던 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적지 않은 출혈이 발생했다. 통증까진 없어 대수롭지 않게 간호사에게 이야길 전했더니, 그 길로 조직검사가 이뤄졌다. 조직검사 결과는 암, 대장암이라고 했다. 다행스러운 건 병이 많이 진행되진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수술을 받고 병원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대장암 수술을 마친 후 눈을 뜬 병실에서 그는 삶의 끝을 본 거 같았다. 수술 과정에서도 심혈관에 문제가 생겨 별도 시술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팔뚝 여기저기 주사 바늘이 여거 개 꽂힌 채 각종 약물이 주입되는 병실에서 그는 혼자였다. “착잡하더라, 내 마지막이 이렇게 되는가보다 싶더라. 절망적인 상황이잖아요. 주위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게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심근경색, 그리고 대장암
“절망적이더라, 주위엔 사람은 없고”

큰 병은 추후 관리에도 돈이 많이 든다. 상문 씨는 발병 당시 수(시)술 비용은 주변 도움으로 해결했지만, 이후 주기적으로 필요한 약값이며 검사 비용 부담이 컸다. 오래전 하던 사업의 끝이 좋지 않으면서, 가족과 왕래를 끊은지는 이미 오래였다. 그의 곁에는 아내도, 아들도 없었다. 2014년 당시는 아직 환갑이 되기도 전이었지만, 심근경색,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 급격히 몸이 약해지면서 별다른 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에게 병원비 부담은 또 다른 ‘절망’으로 찾아왔다.

국가가 상문 씨 같은 처지의 국민을 위해 마련한 제도가 없진 않다. 2015년경 상문 씨는 자신이나 가족이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의료수급도 받을 수 있게 된 그는 약간의 본인 부담금을 내면, 병원 관리를 이어가는 데 무리는 없었다. 문제는 지난해 발생했다. 오래 왕래가 없던 아들이 결혼을 했고, 직장 생활을 하는 며느리의 소득이 국가의 전산망에 걸렸다.

2021년 정부는 생계급여 부양의무제는 폐지했지만, 의료급여에 대해선 그러지 않았다. 자녀나 그 배우자가 부양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걸 당연한 걸로 했다. 상문 씨도 예외는 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그도 더 이상 의료급여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때는 뭐, 이제는 끝나는구나 생각했죠. 이젠 뭐 그냥 살자, 더 아파도 할 수 없는거고, 완전 절망적이었죠. 자식하곤 연락도 안 됐거든요. 매달 얼굴을 보거나, 용돈이라도 주고, 치료비도 주는 형편이었으면 모르겠는데, 전혀 그런 것도 없는 상항에서 그것(의료급여)까지 딱 끊어져버리니까, 이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어요.”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하소연했고, 그곳에서 한줌의 희망을 찾았다. 상문 씨 사정을 딱하게 여긴 복지센터 직원들은 그가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팀에 상문 씨 사정을 알렸다.

상문 씨는 “복지센터 직원들이 너무 고맙더라. 요새는 참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어요. 제 사정을 듣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이야길 하더니, 달구벌 사업 대상이 될 수 있겠다면서 집에 가 있으면 ‘달구벌’에서 연락이 갈거라고 하더라구요”라고 자기 일처럼 해결책을 찾아준 복지센터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상문 씨 사정을 딱하게 여긴 복지센터 직원들은 그가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팀에 상문 씨 사정을 알렸다.

복지사각지대를 국가의 제도 안으로
“돈을 떠나, 이런 제도는 부각시켜야”

달구벌건강주치의는 상문 씨처럼 경제적·사회적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이지만 복지사각 지대에 있는 이들을 발굴해 국가 제도 안으로 편입하는 역할을 한다. 대구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2014년 12월부터 2022년 9월까지를 기준으로 분석한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수혜 대상자 현황을 보면, 수혜자 1,733명 중 717명(41.4%)가 의료급여 지원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 또는 일반 저소득 계층이다. 이들 중 의료급여 전환이나 장애 등록 같은 ‘의료지원’까지 이어진 사례는 438명(25.3%)이다. 비의료수급자 717명에 대비하면 61.1%가 달구벌 사업을 통해 제도권 안으로 편입됐다.

이밖에도 긴급생활비와 같은 생활 지원이 이어진 사례도 271명(15.6%), 취업 연계 등 자립 지원 사례 18명, 주거 지원 15명 등 828명(47.8%)이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 외에도 복지제도의 그물망 안으로 편입됐다. 경제적·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이러한 지원은 삶의 끝을 생각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작으나마 새로운 희망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된다.

상문 씨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4개월 동안 달구벌건강주치의 사업을 통해 약제비를 지원 받았고, 올해부터는 다시 의료수급 혜택을 받게 됐다. 관할 지자체는 상문 씨의 금융 정보를 조회해서 그가 아들 내외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의료수급자로 재인정했다.

“정말 어떤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도움은 진짜 고마운 거예요. 돈을 떠나서 이런 제도를 부각시켜서 누구든 혜택을 좀 봤으면 해요. 대구의료원에 간호사 이라든지 그분들을 내가 밖에서라도 대접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요.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고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라도 해서 좋은 일을 알렸으면 합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