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시즌2] 무차별 흉기난동 이후 (1) 한국 사회, 멸망을 결심했다?

#‘묻지마 칼부림’, 문제를 개인화하는 용어
#정신질환 강조하는 건 간편한 해결책
#한국 사회의 자살률과 무차별 살인 사건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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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오늘(8월 28일)은 ‘씨부려대구 시즌2’ 두 번째 모임입니다. 오늘 참석자는 지난 모임에 참석한 김나빈(분홍돌고래도서관), 박경순(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법률원), 성민아(정의당 대구시당) 님과 새로오신 조민제(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설기(마케팅회사 퇴사) 님입니다. 지난 모임 후 주변 반응이 어땠나요?

성민아: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활동으로 서울에 갔는데 관계자가 ‘뉴스민 기사 잘 봤다’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다들 대놓고는 안 물어보고 쓱 와서 물어봐요.

박경순: (지난 모임 내용이) 제가 맨날 하는 이야기거든요. 같이 얘기했던 사람들은 ‘재밌었다, 좋은 이야기가 많았다’ 하시고요. 서울의 지인들은 또 잘 모르는 지역의 이야기니까 흥미롭게 본 것 같아요.

보현: 오늘은 ‘무차별 칼부림 논란’ 속에서 각자 어떤 고민을 했는지 토론하려 합니다. 활동 영역에서의 고민, 내 주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등 다양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낮에 벌어진 서울 신림역 인근 흉기난동 사건(7월 21일), 퇴근길 경기 분당 서현역 쇼핑몰 흉기난동 사건(8월 3일) 이후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흉기난동, 묻지마 살인 등 다양한 용어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죠.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력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고, 온라인에는 살인 예고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어요. 지난 한 달, 어떠셨나요?

경순: 무차별 범죄 원인으로 정신질환이 꼽히면서 ‘중증 정신질환자는 예비 범죄자’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잖아요. 이 얘기를 먼저 해봤으면 좋겠어요. 민제 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조민제: 이번뿐 아니라 방화 살인, 폭행 같은 뉴스가 나올 때마다 정신질환 이야기가 꼭 나오죠. 특히 대구지하철참사 때 방화범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정신질환자는 모두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 같아요. 당시에도 장애인 단체에서 이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요. (추후 정신질환자가 아니라고 밝혀졌다. 2003년 당시 보건복지부는 ‘통계적으로 정신질환자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우발적 범행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것으로 오인시키는 보도는 장애와 반사회적 행동을 연결시키는 선입견을 갖게 함’이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요. 장애인 운동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장애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도 개인의 특성이나 행동만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을 같이 들여다봤으면 좋겠어요.

특히 조현병은 소위 망상이나 환청을 느끼는 거잖아요.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발현되는 증상이나 스펙트럼이 굉장히 많다고 해요. 압박감 속에 놓였을 때 이 조현의 증상이 꼭 폭력적인 행동으로 직결되는 게 아닌데 언론은 계속 그 부분만 비춰요.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조현병은 위험해. 조현병은 나한테 해를 가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조민제(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운동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장애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거죠. 정신장애인에 대해서도 개인의 특성이나 행동만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을 같이 들여다봤으면 좋겠어요”

실제론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비장애인의 범죄율보다 훨씬 낮아요. 하지만 ‘정신질환은 위험하다. 정신질환자는 병원에 가둬야지, 평생 감옥에 살아야지’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게 당사자들한테는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정신장애인 분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옹호하는 활동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이들은 정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둬지거나 시설에 격리되다 보니 사회적 활동도 없었어요. 최근에 그나마 당사자 모임이나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유의미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언론에 비춰지진 않죠.

#‘묻지마 칼부림’, 문제를 개인화하는 용어

보현: 네이밍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언론에선 ‘묻지마 칼부림’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죠. 관련 활동을 하고 계시니 자꾸 민제 님께 여쭤보게 되네요. 용어가 갖는 문제에 대해선 오래 전부터 지적됐는데도 여전히 많이 보이더라고요.

민제: 맞아요. 지극히 개인에게 맥락이 맞춰져 있는 용어라고 봐요. 물론 행위자가 잘못했고, 사회적으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죠. 다만 ‘묻지마 칼부림’이란 용어는 ‘개인이 절대악, 살인마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이나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를 가진 분들을 보면 여러 스트레스와 환경이 있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하시거든요.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이 집에서 여러 스트레스를 받고 밖에 나온다면 본인이 제어가 안 돼서 의자를 집어 던지거나 하는 행동을 할 수 있거든요. 예전엔 ‘문제 행동’이라고 했어요. 문제가 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심리안정치료라는 이름으로 공간에 가둬서 교정하고 바꾸려 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어려운 행동’이라는 용어를 써요. 이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변인이 섬세하게 여러 가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뜻인 거죠. 전체 맥락을 보고 이 사람의 행동을 지원하자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물론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행동에 대해 옹호하자는 건 아니죠. 하지만 적어도 그 행동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둬야 한다는 거죠. 그 맥락을 계속 바라보고 사회가 어떻게 하면 사건이 안 일어나도록 지원하느냐가 핵심인데, 지금은 장갑차와 총 든 경찰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민아: 가장 손쉬운 방법이 ‘분리’잖아요. 시민들이 불안하니까 가장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향이겠죠. 특정 집단을 지정해서 분리하고 이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건 쉽지만, 개인의 사회 경제적 요건을 살피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하지만 개인의 질병 내용을 역학 조사해서 공개하면 원인을 짚는 게 간단하죠.

오늘 모임에 오면서 ‘맞는 말을 할 수 있는데, 막상 내가 그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면 양자감정이 드는걸’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맞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기사를 확인하고 조사했지만 실제로 막상 내가 무차별 살인이 있었던 쇼핑몰에 있었다 생각해 보니 마음이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동대구역서 흉기를 소지한 사람이 잡혔을 당시 몇 시간 전에 그곳을 지나갔거든요. 그 소식을 뉴스로 본 게 아니라 가족이랑 서울 사람이 ‘대구도 안전하지 않다, 조심해야 한다’고 안부를 물어와서 알게 됐어요. 섬뜩하더라고요.

경순: 지금 나오는 정부의 대처를 보면 사람들이 더 무섭게 느끼도록 하는 것 같아요. 경찰 병력과 경비를 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 우린 다 알잖아요. 언론에서도 범인의 사회 경제적 맥락을 보도하고 그들의 고립된 삶을 조명하면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오히려 감시를 늘리는 부분이 특히 우려스럽죠.

민제: 특히나 정신장애 쪽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되게 위축돼요. 이분들도 생활 지원을 받아야 하거든요. 우리나라는 15개로 장애 유형을 분류하고 있는데 발달장애가 있으면서 조현병이 있거나, 신체 장애가 있으면서 조현병이 있는 등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이번 무차별 흉기난동과 같은 사건이 생기면 활동지원사분들이 주저하게 돼요. ‘조현병은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피하는 거죠.

정신질환과 장애가 다르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대부분이 구분을 못 하면서 정신장애인 전부가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는 측면도 있어요. 언론은 ‘장애를 앓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장애는 고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치료를 받아서 증상이 호전되거나 하는 영역의 문제가 아닌, 그 자체로 상태가 고착화된건데 마치 계속 노력하면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비춰져요

#정신질환 강조하는 건 간편한 해결책

나빈: 정신질환자 범죄 비율이 높은지 검색을 열심히 해봤는데 제대로 된 통계가 없더라고요. ‘조사도 없이 특정 집단을 범죄화하는 건 정말 큰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검찰청에서 수사관으로 일하는 친구에게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가 많다고 느끼는지 물어봤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인이 훨씬 많다’고 답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긴 해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느 날 무차별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잖아요. 그러니 이걸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위해 (특정 대상을 타깃으로 삼는) 간편한 방법을 택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이설기(마케팅회사 퇴사) “‘왜 우린 다 그 친구가 멀쩡하다고 생각했을까’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민아: 이 와중에 경찰청에서는 이상동기 범죄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 말도 이상해요. 동기가 이상한 범죄라는 뜻인데, 의미가 모호하죠. 일본에선 도리마(길거리의 악마) 사건이 있었던 1993년 이후 무차별 살인이 급증하면서 이걸 ‘도리마(길거리의 악마) 사건’이라고 표현한다더라고요. 관련 범죄 기록, 통계를 쭉 조사해 2013년에 보고서를 냈는데, ‘실제 무차별 살인 범죄를 일으킨 사람 대부분에 정신병력은 없었다. 오히려 사회 경제적 빈곤, 고립이 원인이지 정신병을 원인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거든요.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만큼 어떤 용어를 쓰느냐가 중요할 것 같고,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도 조금씩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적 고립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도 중요할 것 같아요.

나빈: 제 의견도 비슷한데요.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의 사용에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겠다는 합의가 있다고 느껴져요. 아무 잘못 없이도 무차별적으로, 아무 때나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부분이 부각되니까 실체없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잖아요. 민아 님 말처럼 이유 없는 범죄는 없다고 보거든요. 혐오범죄, 절망범죄, 이상혐오범죄 등 사용하는 용어가 제각각인데 이걸 규정짓는 것부터가 첫걸음일 것 같아요.

설기: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무서웠던 건 내 옆에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있던 친구가 그렇게 남을 해하는 짓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이 열린 부분이었어요. 유명한 미국 총기사건 광고 영상에서 보면 구석에 조용히 있던 친구가 갑자기 총기 난사를 하거든요. 모두가 그 친구에게 관심이 없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 사람에게 분노가 차곡차곡 적재돼 온 거죠. ‘왜 우린 다 그 친구가 멀쩡하다고 생각했을까’ 거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 대부분 ‘나와 내 주변은 평범한 사람이야. 중위층의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중산층을 집과 직장이 있고 연 소득 얼마 이상에 결혼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상위 30%뿐’이라는 기사를 봤거든요. 나머지 중하위 70%의 평범한 사람 중엔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겠죠.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 직업이 없는 사람, 부모가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일 텐데, 정상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가계 부채 관련 통계만 봐도 경제적 어려움, 복지의 사각지대 문제가 누적돼 왔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가 그걸 외면해 온 결과가 최근의 사건들이라고 봐요. 무차별 흉기난동 같은 사건은 보통 치안이 불안정하고 경제가 어려운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럼 그정도 환경이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비일비재해졌다고 생각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20~30년 동안 정상이라고 생각해 왔던 내 주변 사람들에게 축적된 문제가 이제 터져 나오고 있는 거죠.

#한국 사회의 자살률과 무차별 살인 사건

보현: 사건에 대한 반응을 크게 두 갈래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문제가 심각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당황스러움, 또 하나는 ‘다 같이 망하자’ 류의 비관적 반응 혹은 심각성을 모르는 온라인의 살인 예고들이 아닐까요?

설기: ‘누구를 찔러 죽이고 싶다’는 건 내가 너무 힘들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칼부림 사건들 이후 온라인에서 밈처럼 돌기도 했고, 경찰이 사전 조치를 하고 있기도 하잖아요. 한쪽에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장난을 치는 게 제정신이냐’, 다른 한쪽에선 ‘장난, 또는 밈으로 얘기할 수 있지. 진지충이냐’고 하죠. 힘든 게 쌓이면 공격성이 남에게 표출되거나 자신에게 표출되거나 둘 중 하나인데, 한국 사회는 자살률과 무차별 살인으로 이 두 가지 공격성이 다 나타나고 있잖아요. 사실 이 두 가지 모두 정상성을 해치는 쪽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억지로 모른 척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경순: 아까 일본 사례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됐는데 우리도 정말 비슷한 순서로 가고 있다고 느껴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경기가 좀 좋아질까 기대했는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되면서 물가가 오르고 정부가 고금리 정책까지 펼쳐내니까 경기가 위축되면서 똑같은 사이클이 도는 상황이 됐죠. 이런 넓은 관점에서 논의가 시작돼야 하는데 언론이 깊게 다루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얘기하면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 같은 분위기도 있죠.

설기: 공공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인 것 같은데 닥치는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니까 근본적인 해결과 오히려 멀어지는 것도 같아요. 지금은 그동안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시스템에서 2.0으로 레벨 업이나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 것 같은데, 기존 시스템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덧붙이고 또 참고 버티는 식으로 가다 보니 대처가 늦어지는 거죠.

사람들이 농담처럼 ‘사람들이 빠르게 한국 사회 멸망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정말 망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닥쳐오는 문제들에 대해 대처해야 하잖아요. ‘지금처럼 대응한다면 얼마나 미룰 수 있을까, 빠르게 장기적인 계획을 도입해서 로드맵을 진행해야 하는 시점 아닌가, 우리에게 정말 남은 시간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번 정부는 힘들 것 같아요. (웃음)

[씨부려대구 시즌2] 무차별 흉기난동 이후 (2)로 이어집니다.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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