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시즌2] 무차별 흉기난동 이후 (2)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구별짓기식 해결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고립·은둔 청년 문제, 대구시 상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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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씨부려대구 시즌2] 무차별 흉기난동 이후 (1)에서 이어집니다.

#‘구별짓기식 해결방안’ 이대로 괜찮은가?

이설기(마케팅 회사 퇴사): 궁금한 게 있어요. 살인예고글을 올려서 구속되는 친구들의 연령대가 생각보다 되게 낮더라고요. 성별도 쏠려 있고요. 대체 이 세대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엇이 이것을 촉발하게 했는가 궁금해요.

성민아(정의당 대구시당): 전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과 살인 예고 글을 온라인에 올리는 사건은 다르게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집단, 양상이 다르고 범죄를 일으킨 원인, 범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다르다고 느껴요. 실제 범죄를 일으키는 쪽은 사회적 고립, 경제적 문제 등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죠. 반면 섣불리 얘기하기 어렵지만 살인 예고글 같은 경우는 주목받고 싶은 마음을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한 게 아닌가 싶거든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글이 올라왔을 때의 반응, 그리고 그 반응의 확산과 주목으로 인해 ‘영향력 있는 사람’인 양 느껴지는 분위기, 어른들만큼 강한 처벌을 받지 않을 거라는 정보의 확산 등이 배경에 있을 것 같아요.

김나빈(분홍돌고래도서관): 뉴스 소비 행태의 문제도 짚고 싶어요. 진짜 다뤄야 하는 다양한 맥락보단 사건 자체의 엽기성을 부각시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칼을 들었다’거나 ‘대낮의 쇼핑몰’ 같이 사건의 가장 엽기적인 부분만 기억에 남더라고요.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뉴스보단 영화 아니야?’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괴리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사회 전반의 분노와 혐오 같은 문제, 찰랑찰랑하던 컵에서 넘쳐흐른 문제 중 가장 말초적인 현상이 무차별 살인 범죄가 아닐까요?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분노의 레벨을 낮춰야 하는데, 이건 누구 하나 잘해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동시다발적으로 레벨이 낮아져야 할 텐데 그러긴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우니까 포기부터 하게 되는 것도 같아요.

▲성민아(정의당 대구시당)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과 살인 예고 글을 온라인에 올리는 사건은 다르게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집단, 양상이 다르고 범죄를 일으킨 원인, 범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다르다고 느껴요”

설기: 그동안 제가 믿어왔던 세계가 깨지는 느낌도 들었어요. 내가 믿어온 사회적 신뢰가 무너졌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찌를 수 있고, ‘나를 살리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메시지를 전반적으로 받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의 역할은 저처럼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공격받는 정신질환자를 보호하는 거잖아요.

조민제(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빠르게 봉합하고 넘어가고 소외하고 분리하는 방향인 것 같아요.

보현: 얼마 전에 인상 깊은 글을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홈리스 당사자이자 발달장애인인 할배(별칭) 활동가가 칼을 들고 욕을 하며 거리로 나왔고, 신고가 들어갔고 1천여 명의 탄원에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사람에 대한, 그리고 사건의 맥락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좀 길지만 글의 마지막 두 문단을 소개하면 이런 내용이에요.

‘칼을 든 걸 옹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 결과는 납득할 수가 없다. 할배 같은 화 많은데 기력이 약한 홈리스도 동네주민들과 관계 맺으며 인사도 하며 안부도 나누며 지낼 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없게 거슬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짜증이 나서 뛰쳐나와도 충분히 대화로 자제하도록 타이를 수 있는 이웃이 있는 것. 노실사-주말배움터-아랫마을로 이어져 온 20년 넘는 시간 동안 잘만 돼오던 일이다. 정책의 빈 공간에서 동료 활동가들과 만든 관계성이 그들이 퇴근한 이후에도 당연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바뀌어야 할 일 아닌가. 나는 할배를 5년도 더 봐서 충분히 믿기 때문에 탄원했다.

할배가 석방돼서 아랫마을에 가서 동네에서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회칼을 들고 나가면 안 되는 것 알지 않냐고, 일이 이렇게 된만큼 조금은 잔소리와 걱정을 하고 동네 주민들한테 같이 사과의 성의라도 돌리는 쪽으로 함께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처벌-홈리스-발달장애인이라는 끔찍한 연결 짓기를 멈췄으면 좋겠다’

민제: 저도 봤어요. 이분이 흉기를 들고 있었던 건 물론 잘못이죠. 다만 지금의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는 정도로 끝이 났을 텐데 너무 빠르게 반응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빠르게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겠죠. 자립주택에 조현병이 있는 장애인분이 거주하는데 편의점 같은 데 앉아 있다가 가끔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지르거든요. 물론 지나가는 입장에선 겁이 나죠. 그런데 그 분에게 확인하고 대처하는 시간을 주면 충분히 가라앉을 수 있는데 너무 빠르게 제압하는 느낌이라 제 입장에선 걱정이 돼요.

박경순(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법률원): 한편으론 전 남성이기 때문에 실물적 공포감은 별로 없거든요. 물론 저도 무언가에 찔릴 수 있겠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과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는 좀 다를 것 같아요.

민아: 내가 위협을 당했을 때 이걸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를 판단할 때 여성들은 후자에 가깝게 느끼는 분위기가 깔려 있긴 해요. 실제로 굉장히 공포스럽죠. 앞서 보현 님이 얘기해 주신, 복합적인 원인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들은 특히 판단이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수업 중에 누군가 의자를 던진다면 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경험치가 없는 거죠. 사실 장애가 있든 없든 수업시간에 의자를 던지면 안 되는 거잖아요. 활동가들은 이 속에서 양가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설기: ‘사회적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나 혐오의 요소를 가진 사람을 내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를 고민했던 시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내가 그걸 다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좀 편해졌어요. 어느 정도의 선에서 다 같이 합의하고, 그 합의되는 선에서 양자가 노력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세세하게 들어가면 되게 어려운 부분이 있죠.

경순: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한다는 이야긴 아니지만 필요할 땐 불편을 좀 참고 타협하고 조율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거든요. 단순히 불편하니까 피하고 방치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 참고 접근해야 해결하고 신뢰를 재형성할 수 있는 계기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내 몸으로 느끼는 게 다르지만 지금은 그걸 같이 겪어나가야 하는 시기 아닐까요.

▲박경순(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법률원) “단순히 불편하니까 피하고 방치하는 게 아니라 한 걸음 참고 접근해야 해결하고 신뢰를 재형성할 수 있는 계기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내 몸으로 느끼는 게 다르지만 지금은 그걸 같이 겪어나가야 하는 시기 아닐까요”

민아: 내가 어디에서 우위에 있는지를 잘 발견하는 것도 신뢰 구축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장애인 시위가 1도 불편하지 않거든요. ‘내가 그들의 위치라면 지금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여러 가지에 너무 큰 불편을 느낄 거고, 따라서 내가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지금보다 편하게 다니면 나는 훨씬 더 편해져’라는 흐름으로 생각하는 거죠. 저상버스도 마찬가지예요. 저희 어머니가 저상버스를 굉장히 사랑하시는데, 제가 항상 말씀드리거든요. “엄마, 저분들이 노력해서 엄마가 지금 편하게 다니는 거야”라고요.

성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사회는 어쨌든 남성이 우위에 있잖아요. 물론 그걸 인정하는 사람이 많진 않죠. 개인은 아니더라도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이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계속 인정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같은 남성 집단 안에서도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 낮은 위치의 사람을 공격하면서 범죄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의 경향성을 보면 칼을 들고 아무나 찌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을 노린다는 통계도 있더라고요.

민제: 민아 님이 얘기해주신 부분이 상세히 분석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경향은 분명 있는 것 같거든요. 2016년에 일본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전 직원이 야밤에 장애인 19명을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어요. 죽인 이유가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존재라서 내가 정화작업을 했다’는 거였어요. 이런 사건들을 보면 약자에 대한 혐오 범죄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고립·은둔 청년 문제, 대구시 상황은

보현: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들로 인해 사회적 고립·은둔에 대한 관리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 대구시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울이나 광주 등 다른 지자체는 실태조사부터 별도 센터 설립까지 두세 걸음 앞서가고 있죠. (관련 기사 은둔형 청년 1만 명 추정, 대구시 ‘실태조사도 아직’ (23.04.06.))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민아: 고립·은둔의 문제는 사실 우리로선 직접 체감하기 어려운 문제잖아요. 흉기난동처럼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관련 기관이나 일반 시민들이 ‘문제’라고 인지를 하게 되는 건데, 이젠 적체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게 시간 문제라고 느껴지긴 해요.

보현: 지인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고립, 은둔 청년의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사회복지사나 타 지자체 관계자를 만나보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인데, 문제가 드러나질 않으니 이게 관련자와 관련자가 아닌 사람 간 온도 차가 너무 큰 거예요. 조례를 발의한 의원이나 담당 공무원조차도 당장 나서야 할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답답했어요.

민제: 우리나라 복지제도가 등록주의거든요. 위기 대상이나 장애인, 한부모 가정으로 등록이 돼 있어야 지원도 있는 거죠. 고립 청년도 제도적으로 정비가 돼야 움직일 텐데 조례만으론 아마 해결이 쉽게 안 될 거예요. 그마저도 사회복지 공무원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니까 ‘단순히 생존 확인 정도만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고, 결국 재원과 법적 근거를 투입하려면 강도 높은 사회 이슈가 있어야겠죠.

설기: 뉴스에서 ‘청년 고독사’라는 말을 봤어요. 일단 말 자체가 너무 낯설었고, 화면에 나오는 청년 고독사 당사자의 방이 제 방이랑 너무 비슷한거예요. 생수랑 햇반이 있고, 내 방과 그다지 다를 것 없는 방에서 사람이 혼자 죽은 거죠.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때 묻은 이불을 보니까 그 화면이 너무 무서웠어요. 이들의 물품을 관리하는 분도 (영상에서) 보여주는데, 나이대가 2000년대생부터 1999년생, 1980년생 등 다양하다고 인터뷰하더라고요. 영상에선 ‘5만 원만 있었어도 이들이 좀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매뉴얼이 왜 없었을까’ 싶어서 속이 상하더라고요. 불이 나면 소화기를 들거나 도망을 가라는 매뉴얼이 있잖아요. 이런 감정을 느끼거나 혹은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병원에 가라거나 어떤 지원이 있다는 매뉴얼은 왜 없는 걸까요?

나빈: 고립·은둔 청년이나 저활력 청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나 기관이 늘고 있긴 해요. 서울, 광주 등 점점 확산되고 있긴 한데 대구는 저에너지 청년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대구청년센터는 취업이나 관계 맺기 중심으로 사업이 구성돼 있고 그나마 상담 사업이 있긴 하지만 결국 본인이 전화를 걸어야 되거든요. 사실상 타깃이 다른 거죠. 조금씩 변화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전 타겟팅한 새로운 기관이 없으면 이 문제를 다루기 힘들 거라고 봐요.

▲김나빈(분홍돌고래도서관) “(고립·은둔 청년을) 타겟팅한 새로운 기관이 없으면 이 문제를 다루기 힘들 거라고 봐요”

민제: 방금 해주신 얘기는 탈시설 문제랑 비슷해 보여요. 탈시설 자립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자립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장애인만을 국가가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거든요. 시설이 아닌 지역에 사는 건 의지가 약하거나 능력이 없어도 가능해야 하는 건데, 아직 이 부분까지 국가 정책이 닿진 않고 있죠.

설기: 장기 저성장 국면에선 사람들의 의지가 먼저 꺾이잖아요. ‘이 꺾인 의지를 어떻게 구해나갈 것인가’가 가장 막막한 것 같아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대공황이 끝나고도 사람들의 의지가 가장 먼저 꺾여 있을 때 복지제도를 마련하고 서로가 서로를 끌고 갔다던데. 좀 더 옆에 있는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있는 에너지를 나누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고립, 은둔 청년은 밖에 나가는 걸 가장 두려워하거든요. 서울에서 관련 활동을 하는 단체 이름이 ‘안 무서운 회사’일 정도로요. ‘사회가 좀 안 무서워져야 일단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보다 안전한 사회망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제: 지금의 대구시를 몇 년 전 대구시와 비교해 보고 싶은데요. 지금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자체를 아예 없앴잖아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고립 청년 지원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다 막힌 것 같거든요. 그나마 권영진 전 시장 땐 형식적이긴 했지만 원탁토론이나, 주민참여예산 관련 활동도 했죠. 이런 의견이 조금이라도 반영이 되면 예산은 적지만 시민들이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지금 시장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현: 마지막 질문에서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던지려고 하거든요. 이야기의 시작은 무차별 칼부림이었지만 오늘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했잖아요. 요즘 사석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비관론으로 빠질 때가 많아요.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뭐가 바뀔 수 있겠어’라는 자포자기식 결론을 내며 헤어지는데 속이 상해요. 여러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뒤를 완성해 주세요.

민아: ‘어떤 사람도 불평등과 고립에 방치되지 않도록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라고 완성해봅니다. 구체적으론 투 트랙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단기적으론 지금의 시민들이 너무 불안하니까 이 불안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겠죠. 하다못해 조사하겠다, 방안을 마련하겠다 같은 리액션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거란 신호를 주는 거죠. 빨리 사회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줘서 안심시켜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장갑차가 아닌 제대로 된 방법으로요.

장기적으론 정부가 좋은 공동체를 회복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고 안전망을 설치해 대다수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을 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우리도 절망하면서도 애써서 자기 자리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잖아요. 오늘 모임에서 정신 질환과 정신 장애의 차이를 알게 되고 다른 자리에서 ‘그게 아니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노력이겠죠.

민제: 저는 ‘실패한 정책토론 청구를 다시 신청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대구청년센터에 사회적 고립 청년을 끌어낼 수 있는 기능이라도 추가하려면 시민사회가 정책토론청구를 신청하고 시의원을 만나서 조례를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 시청에 가서 예산 도입을 설득하고, 필요하면 집회도 해야겠죠. 원래 하던 걸 계속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순: 개인화시키면 그냥 이슈에 불과하지만 결국 신뢰 회복은 제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정책토론 청구에 저도 열심히 지지를 보내겠습니다.

나빈: 두려워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제 지론이고요. 동대구역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기차를 탈 일이 있으면 동대구역에 가야 하는 것처럼요. 일상에서의 단단함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모임을 준비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체계적인 조사나 통계 자료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이번에 이슈가 됐으니 제대로 기능하는 연구와 대책을 기대해 봅니다.

설기: 전 이태원참사 당시 심정지 영상들이 너무 쏟아지니까 영상으로 인한 트라우마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서현역 칼부림 사건 때 사람들이 ‘이제 퍼뜨리지 마세요’, ‘영상을 클릭하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우리가 위기를 겪으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서로를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에 좀 안심했던 것 같아요.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들의 문제는 정신병이나 게임 때문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늘어난 것 같고요.

사실 많은 부분에서 정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20년 전에 비해선 칼부림 사건이나 흉악 범죄들을 단순히 이상한 행동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맥락을 짚어나가는 사람도 늘었고요. 다만 많은 사회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보다 민간에서 열심히 방법을 내놓은 뒤에야 제도화하는 식이 우리가 해결해 온 방법인 것 같아 속상해요. ‘왜 사람들이 개개인의 인생으로 몸부림쳐서 해결해야 하는가’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믿어주고 자기가 믿는 사람들 안에서 더 돌봐주고 말을 거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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