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난생 처음, 아버지 돌아가신 경산 코발트광산 찾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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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만석(75) 씨는 두 살 터울 형과 함께 경산 코발트광산 앞에 섰다. 옆에 선 형은 깊이 모를 광산 앞에 서자 욕과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인지저하증이 중하지만, 오랜 세월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서 살아온 기억만큼은 또렷하기 때문이다.

23일 만석 씨는 코발트광산을 처음 찾았다. 만석 씨 인생은 연좌제에 대한 개인적 저항으로 점철됐고, 분노, 허탈, 박탈감이 뒤섞여 살다 보니 코발트광산을 찾아오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1950년 9월경 아버지는 청도에서 경산 코발트광산으로 끌려간 뒤 볼 수 없었다. 집안에서는 음력 9월 9일에 맞춰 제사는 지내왔지만, 아버지 유해는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무덤도 없었다. 만석 씨에게 아버지의 무덤은 코발트광산이다.

만석 씨의 젊은 시절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개인적 투쟁의 기억으로만 가득하다. 해병대 직업군인으로써 베트남 파병에 다녀온 뒤 철도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했지만, 연좌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6개월 만에 퇴직했다. 베트남 파병까지 다녀온 만석 씨에게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은 버티기 힘들었다. 한국살이가 막막해 외국 기업에 취직하려 했으나 여권 발급도 되지 않았고, 살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혈서를 써 공직자들에게 보내고, 찾아가기를 반복하자 당시 지역 국회의원을 통해 청도경찰서장, 군수 등의 보증을 받아 사우디아라비아로 출국해 일할 수 있었다. 5공화국 들어 개헌과 함께 연좌제가 폐지되었고, 그제야 만석 씨는 고향을 찾아올 수 있었다. 1986년 만석 씨는 대구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지금껏 택시를 몰았다.

▲경산 코발트광산 입구에 선 사만석 씨

“살아오면서 오기 말고는 없었습니다. 자유를 위해 해병대 부사관으로서 싸웠는데 돌아온 건 연좌제였어요. 내 인생이 투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는 아버지의 삶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어요.” (사만석 씨)

만석 씨 인생에서 숨통이 트였던 순간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고부터다. 여러 민간인 학살 사건 진상을 조사한 진실화해위 활동을 지켜봤다. 만석 씨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이 아닌 국가의 잘못이자, 국가폭력이라는 걸 이해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코발트광산을 찾기까지 70여 년 세월 동안 만석 씨는 상처를 극복하려 했다. 그 세월을 누구도 보상하지 못하겠지만, 광산 앞에서 만석 씨는 이제 지난 세월과 아버지를 되돌아보려 한다.

“나이를 조금 먹고 우리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고향에 가서 사람들에게 아무리 물어도 아무도 안 가르쳐줘요. 겁을 내요. 살아보자고 투쟁만 하며 살았는데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이 사건이 국가 책임이라고 하더라고요. ‘국가 책임’. 그 말을 딱 들으니까, 내 잘못은 없었구나, 그 생각이 이제 들더라고요···.” (사만석 씨)

23일 경산시 평산동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위령탑에서 민간인 학살 제73주기 제24회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이날 위령제는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민간인희생자유족회와 한국전쟁 전 경산유족회가 주최·주관했으며, 경상북도, 경산시, 경산시의회, 청도군, 경산신문사,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가 후원했다.

위령제는 평화문화제, 고유제, 합동위령제, 추도사 낭독, 유족 헌화 순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마땅한 추모 공간이 없는 탓에 유족들은 이번 위령제에 앞서 위령탑 뒤편에 배롱나무 숲을 조성하고 나무 한그루마다 희생자와 유족 명패를 달았다. 위령제 후 유족들은 조성된 배롱나무를 둘러보며 회상에 잠겼다. 만석 씨는 형, 조카와 함께 아버지의 위패 앞에 섰다. 30대에 멈춘 아버지의 시간도 배롱나무에 걸렸다.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사건은 1950년 7~8월 경산, 청도, 대구 등 지역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 등을 군경이 재판 없이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3,5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까지 코발트광산 유해발굴을 진행해 420여 구 유해를 발굴했다. 이후 추가 발굴 작업은 이뤄지지 않다가 2020년 2기 진실위가 출범한 뒤 코발트광산을 포함한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지역 유해 발굴을 재개했다.

▲아버지 사경택 씨의 위패를 바라보는 사만석 씨와 형, 조카
▲23일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제73주기 제24회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