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청년고용 토론에서 생긴 일⋯“문송합니다”

2016 대구고용전략개발포럼 1차 정기포럼
4년제-이공계-남성 중심 고용대책..."내 자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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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09:52 | 최종 업데이트 2016-07-01 09:53

“토론에 초청되고 발표 자료를 달라고 해서 무슨 자료를 드려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구요. 기조 발제해주시는 분들 말씀도 들어봤는데요. 정말 ‘문송하다’는 말씀 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요.”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신조어, 공대 위주의 청년 취업 시장을 희화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 이설기 씨(26, 여)의 이야기는 30일 오후 열린 2016 ‘대구고용전략개발포럼 1차 정기포럼’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 씨는 이날 ‘구직자’로 토론에 참석했다.

▲30일 오후 3시부터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2016 대구고용전략개발포럼 1차 정기포럼'이 열렸다.
▲30일 오후 3시부터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2016 대구고용전략개발포럼 1차 정기포럼'이 열렸다.

오후 3시부터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진행된 정기포럼은 김용현 대구경북연구원 상생협력연구실장의 ‘청년일자리 쟁점사항과 임금결정요인’ 발제와 김동우 대구시 고용노동과장의 ‘2016년 대구시 청년 고용정책’ 발제 이후 토론으로 이어졌다.

김용현 실장과 김동우 과장의 발제는 ‘일 할 사람이 없어 문제’라는 대구 지역 기업과 ‘일 할 곳이 없어서 문제’라는 지역 청년 간 ‘미스매치’를 해결하겠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청년 실업 문제가 거론될 때면 매번 제시되는 해결책이다. 문제는 이 대책이 이른바 ‘고급인력’, 4년제 대학-이공계-남성 중심의 대책에 그친다는 점이다.

지방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여성, 이설기 씨에게 김용현 실장과 김동우 과장이 제시하는 대책은 공허하게만 들렸다. 아니 죄송하게만 들렸다.

“죄송하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어요. 미스매치라고 이야기하시지만 제가 갈 자리가 없거든요. 대구에는 자동차 산업이 많다고 기계공고나 공대랑 산학연을 해서 기업이 필요한 교육을 하겠다고 하는데, 대학에는 저 같은 사람도 절반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혹자들은 이 씨에게 왜 그렇게 패배적이냐, 비관적이냐,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도 이 씨는 말한다.

“자신감 있게 살고 싶죠. 희망도 갖고 싶은데, 그런 걸 가지고 뭘 할 수나 있는 상황인가요? 비관적이라고 하면 비관적이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저는 보거든요. 다 힘들다고 하잖아요. 남들이 다 힘들어서 저도 힘든건지,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있는 건지, 그런데 (고용)정책에서 제 자리는 없다는 거죠.”

이 씨는 왜 이렇게까지 정부의 정책을 혹평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이 씨는 그동안 정부가 청년 취업 대책이라며 내놓은 정책을 직접 경험해보았고,

“원스톱 일자리지원센터 있잖아요. 대구에서 일자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갔어요. 처음 들은 이야기가 정말 저한텐 충격이었어요. ‘경력이 없으시네요’ 그랬어요. 당연히 없지요. 갓 대학을 졸업했는데.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1년 미만은 경력으로 인정 안 되니까. 나이를 얼마나 먹던, 경력이 없는 거예요.”

또 친구들이 도전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것이 소용없다는 걸 느꼈다.

“저는 사실 졸업학점이 좋지 않아요. 3점대를 겨우 맞췄는데, 제 친구 이야길 해볼게요. 국문학과구요. 학점 4.0 넘겼고, 언론 복수전공을 했어요. 문과에서는 언론이 그래도 취업이 잘되니까, 딴에는 발버둥 친 거예요. 어디에 일을 구했느냐면 대학 도서관 1년 계약직이었어요. 그 일자리 끝나고 구한 자리가 SNS 관리하는 하청업체, 단기사업 성격이 강하죠. 사업이 끝나니까 3개월 만에 잘렸어요. 그 친구 지금 아버지가 소개해준 곳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전문가로 토론에 참석한 김용현 실장도, 김동우 과장도 '구직자' 이 씨의 지적을 반박할 수 없었다. 김 과장은 “지방대, 인문대, 여성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시가 혼자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사회 구조적 문제인 것 같다”며 “고급인력에 치중했다는 점 솔직히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거와 별도로 인문대, 지방대, 여대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해명하기 바빴다.

이 씨는 “여기 오기 전에 워크넷을 한참 보다가 왔는데요. 회사와 구직자 관계에서 구직자가 가장 약자예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음에 들게 맞춰야 해요. 심지어 립스틱 색깔까지도. 아등바등해도 지방에서 여자이고 인문대 졸업한 내 일자리가 있을까⋯하소연하는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라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토론 진행을 맡은 최철영 교수(대구대)는 이 씨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토론을 종결지었다.

“이설기 씨한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패널 이름에 다른 분들은 전부 직책이 있는데, 이설기 씨만 이름만 있거든요. 다른 분들도 이름만 쓰든지 그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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