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대구 5만 운집···10살 소녀 “정치에 관심 가지십시오”, 77살 노인 “대통령 우예 된다고 나라 안 망한다”

남녀노소 분노한 민심, 박근혜 퇴진 4차 대구 시국대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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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6 23:22 | 최종 업데이트 2016-11-26 23:39

여러분, 정치에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정치에서 눈을 돌린다면, 또 하나의 박근혜 대통령이 생겨날 겁니다. 정치에 항상 관심을 가지십시오. 박근혜 대통령 하야하라.

노란색 파커를 입고, 분홍색 귀마개를 한 10살 정하은 씨가 무대에 올랐다. 대구·경북 각지에서 찾아온 시민 3만 명이 연단 앞에서 하은 씨를 바라봤다. 또랑또랑, 당당하게 “정치에 눈을 떼지 마시라”고 당부한 하은 씨는 무대 옆 엄마를 찾아 내려오며 “생각이 잘 안났어”하고 아쉬움 섞인 말을 뱉었다.

26일 대구 중구 동성로 대중교통 전용지구(반월당네거리~중앙네거리)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촉구 4차 대구시국대회는 오후부터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5만여 명(경찰 추산 7,500명)이 운집했다. 무대는 10살 하은 씨에게도, 변호사, 운전기사, 고등학생에게도 평등하게 주어줬다.

하은 씨는 1차 대구시국대회 당시 화재가 된 송현여고 조성해(18) 씨 동영상을 보고 자유발언을 준비했다. 어머니 주태은(36) 씨는 “나는 어려서 저런 거 못하지 않느냐 해서 어려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고 했더니 하겠다고 하더라”며 “지난주에 나오려고 했는데 원고 쓰고 연습하느라 오늘 나왔다”고 하은 씨가 자유발언에 나선 계기를 설명했다.

주 씨는 “하은이 말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우리나라가 다시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국대회
[사진=정용태 기자]

“정치에 관심 가지시라”는 초등학생
“어머니한테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고등학생

최범구(16) 씨는 오후 2시 30분께, 무대 설치가 끝나기도 전에 주최측을 찾아와 자유발언을 신청했다. 최 씨가 자유발언에 나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최 씨는 며칠 전 4살 위 누나와 함께 어머니와 크게 다퉜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남매에게 어머니는 대통령이 불쌍하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 씨는 “아버지가 중재해서 싸움이 끝났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고 하는데, 이번 대통령은 유독 심하잖아요? 저희들은 그래서 안좋게 보는 데, 어머니는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라고 해요”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최 씨는 “어머니한테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면서 “어머니는 오늘 제가 여기 나온 거 몰라요. 부산 가셨어요. 놀라게 해드리는 게 목표예요”라고 말했다. 시국대회 시작보다 2시간 반 일찍 나온 최 씨는 인터뷰를 마친 후  “지금부턴 카페에서 숙제할 거예요”라며 카페를 찾아들었다.

최 씨가 무대를 다녀간 후부터 조금씩 시민들이 집회장으로 모여들었다. 오후 3시부터 예정된 ‘하야하롹’ 콘서트는 굵어진 빗방울 때문에 준비가 늦어졌다. 하지만 차량통제가 이뤄지고 있던 대중교통 전용지구는 이 무렵부터 시민 수백 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 피켓과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각각 영천과 밀양에서 찾아온 박(여, 30대) 씨와 서(여, 30대) 씨는 삼성생명 건물 옆에서 촛불을 들었다. 박 씨가 “시국대회는 오늘 처음”이라며 “이번엔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나왔어요. 그전에는 시간이 안 되기도 했구요”라고 말하자 서 씨는 “검찰에서 (대통령도 )공범이라고 했잖아요. 그때부턴 확신이 생겼다”고 보탰다.

서 씨는 “솔직히 처음엔 못 믿었어요.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가 너무 드라마 같잖아요. 처음엔 다 못 믿었는데, 계속 불거진 이야기가 스토리가 이어지잖아요”라며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박 대통령의 비위 사실에 놀라워했다.

시국대회
[사진=정용태 기자]

70대 노인들도 대통령, 새누리당 규탄 나서
“새누리당은 분명히 정신을 뜯어고쳐야 돼” 

나이가 지긋한 노년층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김항곤(72), 황금선(65) 씨는 딸과 함께 시국대회에 참석했다. 김 씨는 “새누리당은 분명히 정신을 뜯어고쳐야 돼”라며 “박근혜 눈치만 보고 말을 제대로 못 하잖아. 할 말은 해야지, 나라를 전체적으로 이끌어가려면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어야지”라고 목소리 높였다.

황 씨는 앞서 오후 1시부터 서문시장에 비슷한 연배의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였었다고 말하자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기라. 쫓아내야 한다”고 격앙됐다. 김 씨도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안 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CGV대구아카데미 극장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던 김윤기(77) 씨는 “지금까지는 경북 동향 사람이고, 관심이 있어서 지지를 했는데 돌아가는 사정을 봐서는 지지한 게 후회스럽고, 맹목적으로 따라간 게 아닌가 자괴감이 든다”고 박 대통령을 향한 지지를 철회했다.

김 씨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국민 된 도리가 아닌 것 같애.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들 노력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 싶어서 나왔다”며 “최근엔 전부 거짓말 연속 아닙니까? 자기 어른들이 한 거에 먹칠하잖아요. 실망스럽습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보다 더한 10.26, 박정희 대통령 죽을 때도 대한민국 떳떳하게 살아나갔어요. 4.19 대혼란에도 건재했습니다”라며 “대한민국 기본체제가 이렇게 완벽한데 대통령 하나 우예 됐다고 해서 잘못될 거라고 생각 안 합니다. 우리나라 근간을 믿습니다. 대통령은 내려와야 됩니다”라고 대통령 궐위로 인한 국정공백 우려를 일축했다.

시국대회
[사진=정용태 기자]
시국대회
[사진=정용태 기자]

4차 대구시국대회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분노와 성토는 무대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았다. 대통령을 향한 분노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9) 할머니 발언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까짓 게 뭘 안다고, 지까짓 게 뭔데, 왜 나를 죽여”라며 “지까짓 게 뭔데,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아야죠.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대통령 좋아한다. 우리 대구가 뽑았습니다. 대구가 끄집어내야 합니다.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습니다”라고 분노를 토해냈다.

저녁 6시 45분께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대오 후미가 중앙파출소에서 발을 떼기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1시간가량 진행된 행진이 끝나고 되돌아오자 시민 2만여 명이 더 늘어나 5만여 명이 자리했다. 고향 시민들과 함께하려 서울에서 내려온 방송인 김제동(42) 씨가 행진이 마무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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