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살림생협 30년사,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 /김상목

생산과 소비의 분리를 넘어,
이윤의 바다에서 ‘섬’과 ‘섬’을 잇는 시도,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30년史로 돌아보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체제 실험의 현재형

18:13

2018년 현재 우리는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명백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살고 있다. 이윤 획득이 모든 가치의 최고 척도이며, ‘공공성’이나 ‘분배’, ‘복지’ 등의 가치로 그 폐단과 위험을 견제해나갈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를 가장 정면으로 반대하고 극복하려 했던 시도는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 경제-사회적으로는 노동조합 운동이었다. 특히 20세기에는 그랬다. ‘단기 20세기’1는 사실상 이들의 도전과 좌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사회주의 혁명은 여러 모순과 한계 속에 무너져 내렸고, 2018년 현재는 ‘21세기 사회주의’나 ‘신좌파’ 등의 사회운동들이 2008년 미국 발 경제불황 이후로 오르내리지만 20세기의 그것들, 마치 곧 자본주의를 땅에 매장시켜버릴 것 같던 위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국사회에선 ‘귀족노동자’이니 ‘정규직 이기주의’니 뭐니 하면서 욕먹기 좋은 대상으로 희화화되기도 하지만, 웹툰 ‘송곳’이나 비정규직 문제에서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민주노총’으로 상징되는 노동조합의 위상과 역할은 일정한 위상을 차지할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그 폐단을 조금이라도 줄여나가는 데에는 정부 역할 못지않게 사회적 세력으로서의 노동조합 운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 역사는 일제 치하로 거슬러 올라간다.2가장 대표적인 일제 치하의 조직화된 노동조합은 전형적인 식민지 경제 모델처럼 항만노동자 조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원산노련’이었다. 원산노련은 해외 노조들과 연대해 총파업을 조직하며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활약을 펼친다.

그 원산노련은 당시 중화학공업이 융성하던 함경도 지역의 대표적인 항만운송하역을 마비시킬 정도의 조직력과 단결력을 자랑했음은 물론, 다양한 활동으로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었던바, 특히나 소비조합 운영이 대표적인 부대사업으로 전해지고 있다.3 이 소비조합 활동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게 된 “생활협동조합”(생협) 활동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20세기 후반 이후 주목한 ‘친환경’, ‘유기농’ 등을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원산노련이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일본 본토에서도 잔혹하게 탄압받던 노동운동을 식민지에서 총파업까지 치를 수 있었던 기반에는 이러한 소비조합은 물론, 병원과 공제조합 등 의료와 복지까지 노동조합이 소화해냈던 기반이 있었음은 여러 문헌과 자료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현재도 노동조합에서 복지사업이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산노련 시절의 비중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 축소된 위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부분은 일제강점기에 비해 어느 정도 정부의 공적 사회보험제도가 정비 확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생겨난 노동조합들은 그 힘의 주력을 ‘경제투쟁’을 통한 임금상승으로 설정하게 된다.(그리고 약 10년간의 호황기는 민주노총 건설과 1996-97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으로 마침표를 찍고 IMF 이후 기나긴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안정투쟁의 시기가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은 삼성처럼 노조를 억지하기 위해서라도 상대적 고임금과 ‘사내복지’를 확충했다. 대기업은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짓고 스포츠센터를 만들었고, 대기업과 정규직노동자의 임금은 지역경제의 대동맥이 됐다. 그 결과가 요즘의 GM 군산공장 철수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진 것처럼 기업 철수가 지역사회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어두운 전조로 드러난다. 조선업이 붕괴하면 몇몇 지역은 몰락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과거 쇠락해가던 탄광 지역을 살리자는 명목으로 카지노 합법화가 이뤄지고 난 후 지역이 건실하게 재생했는지는 의문부호가 붙지만, 여전히 그런 경험에 대한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비정규직은 상시적 불안과 저임금에,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정규직도 현재의 안정된 삶을 박탈당할까 두려워 서로 경계하고 적대하는 지경에 이르는 상황에서 생협운동은 일부 운동가나 중산층 혹은 지식인들의 전유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생협운동을 근 한 세기 전에 대규모로 조직한 최초의 시도는 노동운동에서였고, 이런 노동운동의 시도는 일본제국주의의 수탈만 할 뿐,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억압체제 아래에서 일제와는 다른 ‘대안적’ 삶과 ‘노동운동’의 공동체를 꿈꾸게 했던 원동력의 하나였을 것이다.

서론이 너무나 길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우리가 현재 접하는 생협의 양대 산맥 중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한살림”의 30년 역사를 다룬 서동일 감독의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이다.

▲영화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 포스터

이 작품은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 중에서는 이질적인, ‘주문생산’에 해당한다. 처음 제작과정부터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는 한살림 생협의 요청으로 시작됐고, 작품 창작 의도 또한 한살림 내부의 수요에 충실하게 부합되는 것을 우선 설정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 대해 ‘생협’ 운동 전반을 다루는 것으로 소개하는 게 맞는지 의문부호가 생길 법도 하다.

그러나 작품에서 다루는 한살림 생협이 지금도 조합원 규모에서 가장 큰 포괄범위를 갖고 있으며(매출액은 뒤에 생긴 아이쿱 생협이 더 많다) 그 한 세대(30년)를 아우르는 역사와 시행착오가 온전히 한국 생협운동의 역사로 자리매김하는데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단편적으로 생협이 소재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비록 한살림 생협에 대해 긍정 일변도라는 잣대를 한계로 제기할지언정,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작품은 30년의 역사를 1년 4계절 흐름 속에서 풀어내는 전개로 진행된다. 먹거리를 기본으로 출발한 생협운동은 도시 소비자와 농어촌 생산자 연계를 기본으로 활동한다. 시장가격의 등락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수요와 공급을 미리 계획하기 때문에 비록 평소에는 ‘바른 먹거리’, ‘유기농(혹은 저농약)’ 기준치 때문에 시장가격보다 비싸다고 느낄지라도 풍작이나 흉작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된 가격으로 유통이 이뤄진다. 그런 기본구조를 새해 초 쌀 생산량 논의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쌀’을 첫 주자로 내세운 것은 한살림의 출발이 1986년 12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작은 쌀가게에서 시작됐고, 식량 자급문제라는 한국농업 가장 큰 화두의 중심축이기 때문일 것이다. 먹거리를 통해 대안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더불어 살아가자는 생협 정신을 드러내는데 한국에서 여전히 ‘쌀’은 가장 상징적인 존재다.

▲영화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 가운데 한 장면

작품은 사계절 순환과 함께 생협의 다양한 부문들과 각 주체의 역할을 해와 달이 순환하는 것처럼 각도를 천천히 변경해가며 조명한다. 제대로 활동하고 있다면 굳이 노골적으로 미화하지 않더라도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감독은 확신해가며 촬영한 것 같다. 영화는 애써 생협운동 내부의 갈등과 한계의 사각을 규명하려 시도하지는 않는다.

마이클 무어가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미국이 되찾아야할 요소들을 해외 각국에서 소개하면서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자신은 쓰레기통이 아니라 장미꽃을 소개하려 한다고 입장을 드러내는 것과 유사한 접근법이다. 그러므로 관객은 각자의 경험 속에서 혹은 비판적 시선으로 감독이 굳이 카메라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부분을 자신의 몫으로 떠안게 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반드시 중립적인 시선으로 모든 걸 다 담아내야 한다는 것은 기계적 중립에 가까운 요구일 텐데, 감독 자신이 생협 운동에 동의하고 참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본 작품이 그 지점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과도한 주문으로 보인다.

대신 작품은 카메라가 다루는 대상인 한살림 활동이 과연 한살림이 내세운 활동방향이나 정신에 부응하는지를 맞춰보는 ‘내재적 접근법’으로 계속 나아간다. 봄에서 여름, 가을로 가면서 카메라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그/그녀들을 연결하는 혈관과도 같은 매장과 유통 활동가들을 차례로 조명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허물거나 보다 나은 소통을 위해 다양하게 벌어지는 연대활동을 (우호적인 시선으로) 소개한다.

▲영화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 가운데 한 장면

그리고 그런 생협 활동의 갈래와 주체들의 다양성을 따스함이 느껴지는 카메라로 비추면서 최소한의 각자 입장을 인터뷰로 교차해서 보여주는 것을 반복한다.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극장 개봉까지 했던 감독의 관록이 잘 드러나는 완급조절로 생협 활동에 관심이 있거나 우호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이라면 지루할 틈이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합동으로 펼쳐지는 지역 단오제는 잘 만들어진 공연 영상처럼 행사를 준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부터 모두가 어우러지는 귀결까지 솜씨 있게 소개되고, 자신이 먹는 밥이 쌀에서 만들어진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고 살 법한 도시의 아이들은 수확부터 설거지까지 수행하며 건강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1인 가구가 늘어가는 도시의 세태에서 지역 매장과 활동가들은 레시피 보급부터 다양한 생활문화운동까지 폭넓은 행보를 보이며 생협 활동이 단순한 윤리적 소비를 넘어서는 하나의 대안적 사회운동임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런 진행과정 속에서 한살림이 주창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를 통한 ‘밥상살림’,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농업살림’, 위의 살림들을 바탕으로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꾸리는 ‘생명살림’으로 나아가는 기본 정신을 작품은 4계절의 묘사를 통해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고, 그 과정은 30년의 역사 속에서 조금씩 진화하고 있음을 입증하려 애쓴다.

물론 작품이 보여주는 너무 착하고 긍정적인 풍경들은 ‘헬조선’의 삭막함과 위선에 지친 이들에겐 장밋빛 환상이나 ‘소시민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정치적, 사회적 격변 속에서 그저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있거나 의식화된 소수의 자족적 활동으로 단정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두에서 장황하게 언급한 것처럼, 한살림의 창시자인 인농 박재일 선생의 생전 글귀처럼, ‘한살림은 완성된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삶을 통해 만드는 거지요.’라는 단순한 문장은 이미 세계혁명의 시대를 통해 정치적 변혁으로 일거에 체제를 뒤흔들려 했던 장대한 실험이 실패로 단정되어버린 2018년 현재에 더 울림을 갖고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체 게바라가 “더 많은 베트남을”이라고 언급했다면 우리에겐 “더 많은 생협을”(물론 “더 많은 노조를”도 당연히)도 절실한 요구가 될 것이다. 아직 한국의 노조 가입률도, 생협 가입률도 10% 전후를 넘어서지 못하는 실정에서 더 많은 시도와 실험은 ‘과정’으로서 유효하다. 마이클 무어처럼 우리도 현실의 비참함에 외면하지 않으면서 장미꽃을 가꿔보는 꿈 한두 가지쯤 괜찮지 않을까?

‘영화, 복지를 만나다’
제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2018-2월 영화 상영회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로 보는 생협운동의 사계절
▣ 일 시 : 2018년 2월 21일(수) 19:30~ (상영시간 89분, 상영후 감독GV)
▣ 장 소 :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중구 국채보상로 537 서울한양학원 빌딩 1층)
▣ 주 최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조직위원회
▣ 부대행사 :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GuestVisit)
[상영작]
잘 왔다. 우리 같이 살자 Welcome, Let’s Live Together
2016 | Documentary | 전체관람가 | Director 서동일
관람신청 및 관련문의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김상목 프로그래머
(휴대전화 l 010-8598-1324, 전자메일 l spanishbombs@hanmail.net)
  1. ‘단기 20세기’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가장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라 불리는 에릭 홉스봄이 그의 저서 <극단의 시대>에서 설정한 것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91년 소련 붕괴와 냉전의 종식까지를 일컫는 시대구분이다. 즉 지구적 규모에서 현실자본주의에 대안으로 내세웠던 ‘현실사회주의’ 실험의 시작과 끝으로 20세기라는 한 세기를 규정한 것이다. 홉스봄은 반대로 ‘장기 19세기’라는 표현을 통해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시기를 포괄하고,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19세기 3부작(각각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명명됨)을 통해 시민혁명과 자본주의, 제국주의로 소 시기를 구분해 분석하고 있다.
  2. 물론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정서적으로는 일제 치하에서 출발할지언정, 전국철도노조 등 지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조직의 계통으로는 아무리 빨라 봐야 1970년대 전태일 열사 이후, 대개 1987년 여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서 출발한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유력한 노조들, 특히 민주노총 계열 노동운동이 ‘대한노총’에서 ‘한국노총’으로 이어지는 흐름 대신에 일제 치하 노동운동부터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으로 이어지다 반공주의와 한국전쟁으로 끊어진 특정한 흐름을 ‘역사’이자 ‘전통’으로 간주하므로 그 정신적/역사적 후예임은 명백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3. “…그러나 이것보다도 가장 괄목할 사업은 소비조합의 경영과 로동병원, 리발소, 구제부의 직영이다. 소비조합은 재작년에 처음 창설한 것으로 조합원들이 가입 당초에 매 한 명이 이십원식을(10회 분불(分拂)) 출자한 것인데, 처음에 이 모든 출자금과 모 은행에서 원산 유력자 실팔명의 련대로 빌어내 온 돈 팔천원을 긔본 삼아서 사업을 시작한 것인 바 그 속에는 곡물부와 잡화부 의 두 부가 잇어서 조합원들의 생활에 필요한 잡화와 미곡만 시보다 약 이할 내지 사할의 헐한 갑으로 공급하고 잇다는데, 한 달에 그 취인액이 아모리 적어도 일만이천여 원의 거액에 달한다 한다. 물품을 사는 데는 조합에서 미리 그 조합원의 수입과 가족상태를 잘 됴사하여 뎡도를 뎡하여 노흔 표준에 의하야 그 생활에 알맛게 미곡권과 잡화권을 주어 사도록 한다는데, 아무럿트 원산리에 잇는 됴합창고와 사무소 문전에는 항상 물품 사러 오는 조합원과 그 가족들로 문전성시하고 잇스며 더욱 현재 소비조합의 운뎐자금은 약 삼사만 원의 거액에 달한다 한다…”(김동환, 원산노동연합회진용종횡기 (2), 조선일보, 1929.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