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기억될까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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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0 11:15 | 최종 업데이트 2018-12-14 16:12

모든 정부는 결국 실패한다. 레임덕 얘기가 아니다. 현실정치라는 게 본래 그런 것이다. 정권의 역사는 곧 실패의 역사다. 의기양양하게 출범해서 이런저런 부침을 겪다가 끝내 저주와 조롱을 뒤집어쓰며 퇴장한다. 그러니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건 사무엘 베케트의 말처럼 ‘더 낫게 실패하기’ 뿐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조중동의 물어뜯기는 이미 오래됐다. 이제 관망자들과 일부 지지자들까지 정권을 독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욕을 안할 수는 없겠지만 주의를 기울여, 가능한 한 정확히 하는 게 좋겠다. 칭찬할 때도 구체적으로 잘한 점을 짚어 말해야 한다. 그래야 뭔가가 축적되고 실패를 하더라도 ‘더 낫게’ 할 수 있다.

어떤 좌파는 이렇게 말한다. “기껏해야 리버럴 세력인 민주당-문재인 정부에 뭘 기대했나? 이럴 줄 정말 몰랐는가?” 이런 주장은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도 나오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동의할 수 없다. 일부 좌파의 오랜 습속인 저런 말은 정치혐오와 냉소를 부추기며, 단지 자신의 이념적 선명성만 부각시킨다. 비판의 기준이나 관점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현실정치에 대한 개입을 포기하거나 냉소해선 곤란하다. 그건 급진성으로 포장된 탈정치주의일 뿐이다.

요즘 동네북처럼 얻어터지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잘한 일은 있다. 가장 최근에 잘한 일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12월 7일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이다. 실제 입안된 정책도 아닌 로드맵을 꼽은 이유는 소위 ‘저출산 정책’의 전환을 선언한 기념비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로드맵은 출산율에만 집착했던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성평등을 정책목표로 잡았다. 이는 그간 수많은 전문가와 여성들이 요구했던 바였고,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13년간 예산 116조원을 쓰고서야 여성을 인구정책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이 얼마나 무용한지 깨달은 것이다.

▲2018년 7월 5일 신혼부부, 청년 주거 대책 발표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저출산과 고령사회 이슈에는 여러 논점들이 있을 수 있지만(애초에 이 둘을 연계한 위원회 명칭부터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선 생략한다. 어쨌든 최악의 형태만은 피한 셈이니 잘된 일이다. 구체적 정책으로 잘 녹여내는 게 관건이겠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여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종전선언은 불투명하며 김정은 연내답방도 (12월 9일 현재 시점에선) 확신할 수 없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이뤄낸 성과는 초유의 것이었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만남은 한반도의 인민만이 아니라 세계를 감동시켰다.

혹자는 이 상황이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한 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외부조건’에 기인한 것이라 폄훼하지만,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북한을 둘러싼 동북아 외교에서 남한이 이 정도의 주도권을 쥐어본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상의 결과로 이어진다면 좋겠으나, 누구도 섣불리 단언하기 어려운 게 한반도 정세다. 다만 지금까지의 행보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노력은 증명됐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도 문재인 정부의 잘한 일로 꼽을 만하다.

이제 잘못한 점을 꼽아보기로 하자. 많은 사람들이 지목하는 건 경제 정책이다. 자유한국당, 조‧중‧동 등 우파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규제완화 미흡, 나아가 소득주도성장론 자체를 문제 삼는다. 대개 이런 비판은 앵무새처럼 규제완화를 요구하며 일체의 분배/재분배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낙수효과는 허구라는 점에서, 그리고 갈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저런 주장은 배부른 자들의 비열한 선동에 불과하다.

좀 다른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근본적 한계로 ‘산업정책의 부재’를 짚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기존 성장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건 샌드위치 상황을 벗어날 새로운 성장산업이라는 것이다. 최근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국내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한국경제는 국가 비상사태”라고 “일침”을 놓으면서, “재벌과 대타협을 통해 차세대 성장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그러나 산업정책의 부재는 비단 문재인 정부만의 한계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되어야 공정할 것이다. ‘산업정책 부재’와 ‘신성장동력 육성’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15년간 인이 박히도록 반복된 주장이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니 해결은커녕, 첫 단추조차 제대로 꿰지 못했다. 그만큼 어려운 사안이라는 이야기다. 장하준 교수의 소위 ‘재벌 대타협론’도 한때 활발한 논쟁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었으나, 한국의 노‧사‧정 역학구도 등을 고려하면 실현가능성이 낮다.

경제‧복지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과해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발생한 것이다. ‘그 정도의’ 최저임금 인상, ‘그 정도의’ 소득주도성장론 가지고는 ‘언 발에 오줌 누기’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 그 정도로 불평등‧양극화가 극심하다는 게 진짜 문제다.

12월 5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토론회에서 조영철 고려대 초빙교수는 “2018년 정부 예산의 재정충격지수는 –0.09”라고 분석했다. 재정충격지수가 마이너스라는 건 긴축재정이란 의미다.(성현석 기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 공약은 왜 늪에 빠졌나?」, 『프레시안』, 2018.12.05.)

쉽게 말하면, 빈곤층에 헬기로 돈을 뿌려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긴축재정을 하며 복지에 돈을 아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정부는 은산분리를 완화하고,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탄력근로제를 밀어붙이는 등 재벌과 기업에게는 ‘입이 찢어지는’ 선물을 잇달아 안겨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는 이제 개혁 의지조차 찾기 어려워졌다. 반면 기득권의 편이라는 사실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짬짜미해 그나마 있던 종부세조차 삭감해버렸고, 고(故) 노회찬 의원 필생의 꿈이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이 두 당의 야합으로 증발할 위기에 놓였다.

결정적인 문제는 ‘이런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이상, 정치적 비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향하는 사회상이 명확하지 않으니 거기에 이르기 위한 액션플랜도 없다. 눈에 띄는 건 “20년 집권” 운운하는 비릿한 교만함뿐이다. 몇 년 후,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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