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김용균의 죽음이 말하는 ‘노동정치’의 과제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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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7 12:02 | 최종 업데이트 2018-12-17 12:02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사망한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하나 같이 충격을 느낄 만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을 품고 노동조건이 가혹한 현장에 취업한 젊은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사고에 대한 보도를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다가도, 내가 너무 무뎌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처참한 사고를 다룬 뉴스를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정서적 동요의 역치가 올라가 버린 느낌이다.

태안화력발전소와 한국서부발전 측도 비슷한 감각으로 사건을 대해온 게 아닐까 싶은 대목이 있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인 김용균 씨가 사망한 당시 시신 수습을 하는 와중에도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아갔다는 게 그중 하나다. 보도를 보면 이때 돌아가던 벨트도 정기 점검으로 멈췄어야 할 것을 긴급 정비만 하고 가동한 걸로 돼 있다. 두 달 전 진행된 안전 검사에서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인데도 컨베이어 벨트 등 설비들이 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보도도 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 조사 결과 공개 브리핑’을 열고 사고 당시 불법적 작업 환경, 원청의 사고 축소 은폐 시도 등을 고발했다. [사진=참세상 김한주 기자]

그동안 한국서부발전이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 사고 발생 건수를 은폐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2011년 이후 발생한 사망사고가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제대로 기재되지 않아 사망자 수가 없는 걸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한국서부발전이 여러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무재해 인증을 받아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 근거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서부발전의 이런 행태는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에 가깝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한국서부발전의 사건 은폐 방식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감추려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고 당시의 상황은 이들이 인명 사고를 ‘늘 존재하지만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사고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물론 이 배경에 인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태도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게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표준’에 가깝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한국서부발전이 그동안 안전사고를 발생시킨 업체에 입찰 경쟁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사고 방지 대책을 대신해 온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사람의 목숨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오직 ‘사고 기록’이 남는지 여부만 중요하다. ‘사고 기록’은 곧 세금감면이나 사회적 논란에 따른 주가 하락과 같은 경제적 손해와 직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의 기원은 무엇일까? 경제라는 ‘실질’을 위해 대의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태도는 박정희주의를 통해 실현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독재를 효율적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포장하며 정당화했고,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가치를 여기에 종속시켰다. ‘인간다운 삶’은 끝없이 유예됐다.

1980년 박정희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이어진 군부독재 역시 세부 정책의 차원에선 방향을 달리했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경제적 이익의 하위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박정희 정권과 동일한 태도였다. 1987년을 정점으로 한 반독재투쟁은 이런 구도를 뒤집어 경제 발전보다 민주주의나 인권을 우선시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요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대결 구도가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독재 대 민주주의의 구도는 국가 발전을 더디게 하더라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아니라 독재가 오히려 경제 발전의 효율을 훼손했다는 주장으로 귀결되었다. 독재 대 민주주의의 구도는 순식간에 국가 대 시장이 되었다. 이런 구도의 변화를 추동한 결정적 사건은 1997년 외환위기이다.

당시의 외환위기는 내적으로는 박정희주의 이후 경제 운용의 혼란으로부터, 외적으로는 개방과 금융화라는 세계적 차원의 변화로부터 비롯됐다. 김대중 정권은 취임 전부터 외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내부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개혁’으로 포장했다. IMF와 미국이 요구한 것은 자본시장 개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초기 자금 지원이 기대했던 대로의 성과를 내지 못하자 정권교체의 도중에 있었던 한국 정부는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였다.

한국 정부는 1998년 초부터 미국과 합의한 대로 앞서 노동유연화 관련 정책을 일사천리로 입법화했고 금융기관 간 인수합병에서부터 정리해고가 실시됐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시장주의의 전도사로 변모한 것이다.

국가주의적 경제개발과 비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는 정책도 이 시기부터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공공부문은 이제 이윤을 내고 스스로의 시장적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시장적 주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때문에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여러 방법이 고안되었고 ‘위험의 외주화’ 역시 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시대의 변화는 개인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국가권력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요구를 찍어 눌렀다면, 이제부터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각 개인들이 알아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그 결과를 군말 없이 수용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내면을 지배하게 되었다. 노동자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체제와 싸우는 게 아니라 승자가 되어 제한된 안전망 안으로 진입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현실 감각을 장악한 시대가 된 것이다.

▲고 김용균 씨가 남긴 유품. [사진=태안화력 대책위]

이 결과, 오늘날 ‘죽을 수도 있는 자리’를 떠맡게 된 사람들이 제 몸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행동에 나서는 것은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패자들의 생떼 정도로나 여겨지게 되었다. 시장적 경쟁 원리에 지배당하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갖진 최후의 윤리적 감각은 ‘젊은 노동자’의 ‘훼손된 시신’이 발견되고 가방 안에서 ‘컵라면’이 나오는 등의 스펙타클이 눈앞에 있을 때야 히스테리처럼 발현된다. 우리가 자조적으로 세월호 참사나 ‘구의역 김군’ 사건을 말하며 무엇이 변했는지를 되묻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루 울고, 또 하루 한숨 쉬고, 또 하루 눈물짓는 이런 비극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순서를 다시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이윤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사회적 원리에 합의해야 하고, 효율적 이윤 추구를 전제하고 형성된 모든 구조에 개입해야 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을 원청에 강력히 물도록 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최소한 위험한 업무에 대한 외주화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죽음을 감수하지 않기 위한 경쟁을 반복하는 게 아닌, 하나로 단결해 싸우는 조직적 틀이 형성되고 또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노동정치’라는 우리의 과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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