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두번째 행군 x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김상목

미개봉 독립영화 순회기획전에 대한 단상

15:55

#1.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5월 9일(목)부터 6월 5일(수)까지 4주간 전국의 4개 독립영화전용관에서는 특별한 기획전이 열린다.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극장 개봉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독립영화 중 극히 일부(24편)이지만 접점을 만들어보려는 시도이다. 영화제도 아닌데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극장별로 전체 상영작의 절반이 넘는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를 배치하는 등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였다.

장편 18편과 단편 6편은 극과 다큐, 애니와 실험영화를 아우르고, 소재와 배경에서도 공을 들여 고른 흔적이 역력한 균형감이 돋보인다. 첫 주말이 지났다.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준비한 노력과 기대감보다 관객이 저조한 편이라고 한다. 그럴 수밖에. 독립영화 중에서 매년 극장에 잠시라도 걸릴 기회를 얻는, ‘개봉작’이 100편을 넘은 적이 없다.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독립영화 중에서(물론 이 집계에 안 잡히는 영화가 더 많을 것은 자명하다) 10% 이하 작품이 불과 며칠, 몇 개 상영관에서 걸렸다 사라져간다. 그나마 그 작품들은 운이 좋고 영화제 등에서 후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그렇게 개봉을 추진하는 작품들도 추풍낙엽처럼 잊히는 게 독립영화계의 일상인데 그 범위에 포함되지 못했던 작품은 사실상 관객에게 접근하거나 알릴 기회가 더 희박하다. 극장에서 공을 들여 소개한다 해도 여전히 관객에게는 생경할 따름이다. ‘좋은 취지의 행사’라고 생각은 하지만 굳이 찾아서 도전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애써 어딘가 구석의 외장하드에서 잠깐 햇볕을 쬐려던 영화들은 다시 음지로 돌아갈 운명에 처하는 중이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24편의 영화들 중에서 특히, 지역 관객에게는 더 ‘미지의 영화’인 장편 다큐영화 1편을 소개하려 한다.

▲영화 ‘두 번째 행군’

#2. 나바루 감독의 영화(들) : <바보들의 행군>과 메타 영화적인 <두 번째 행군>
‘나바루’라는 이름으로 영화작업을 하는 감독은 정규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육체노동을 전전하며 20대를 보낸 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졌다. 영상촬영과정을 수강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몇몇의 다큐작가들과 어울리며 꿈을 키우던 나바루 감독은 연극인 친구가 만든 신생극단의 첫 공연 준비과정을 담은 <바보들의 행군>으로 ‘첫 번째 행군’을 시작한다.

이 영화는 어느 영화제에서도 본선에 오르거나 소개되지 않는다. 그리고 감독은 비슷한 처지의 다큐멘터리 신진감독들과 함께 공동으로 팀을 꾸려 “자력갱생” 배급과 상영을 기획한다. 그 과정이 ‘메타 영화’, 즉 영화에 대한 영화 형식을 취한 <두 번째 행군>의 주요 뼈대를 이룬다. 즉, <두 번째 행군>을 보는 관객은 자연스레 첫 번째에 해당하는 <바보들의 행군>을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셈이다.

즉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학연/지연/혈연에서 거의 전적으로 배제된 채 그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청년이 소위 ‘있어 보이는’ (하지만 실상은 너무나 기대와 달랐던) 감독이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여러 애환과 고민들이 <두 번째 행군>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본 작품은 전작의 후일담인 동시에, 전작 <바보들의 행군>을 생명 연장시키고 싶었던 지난한 ‘인정투쟁’의 기억으로 기능한다. 사실 그래서 언젠가 이 두 작품을 함께 소개할 기회가 오기를 필자는 마음 한 구석 캐비닛에 넣어둔 채였다.

두 작품은 연속성 혹은 상호보완성을 가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아쉬울지언정 소개될 기회가 생겼으니 최선을 다해 <두 번째 행군>을 보고 싶어 할 이들이 한둘이라도 더 생기도록 소개할 수밖에. 특히 독립영화의 비극장 상영(공동체 상영) 과정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본 작품은 그 세밀한 풍경을 매우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3. 다큐유랑에 대한 기억
<두 번째 행군>의 주요 전개는 나바루 감독이 합류하게 되는 “다큐유랑”이라는 일련의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독립영화 중에서도 영화제에서 소개될 기회가 많은 건 단편극영화이다. 영화학과나 미디어센터의 기자재를 활용해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과 영화 관련 지인들의 힘으로 제작이 가능하고, 단편 특성상 여러 편을 묶어 상영하기 때문에 소개될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경력과 인지도가 쌓이고 여러 지원사업을 통해 부족하지만 제작비를 충당하면 장편 극영화를 제작한다. 그리고 상업영화 입봉이나, 독립영화라도 안정적인 제작지원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보다 소개될 공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보니 제작은 되지만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비중도 높다.

그런 일련의 ‘빽’ 없고 ‘노하우’ 배울 기회가 없었던 독립다큐 신진감독들이 자기 영화를 외면하는 영화제를 성토하며 ‘자력갱생’으로 극장 바깥에서 몇 편의 배급 라인업을 짜서 독자상영을 시도한다. 나바루 감독은 거기에 합류하게 되고 이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입장 차이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도 상당기간 유지된다.

상영료를 받느냐 마느냐, 받는다면 얼마를 받을 것이냐, 상영조건이나 환경을 어느 정도 설정할 것인가, 프로젝트의 방향은 영화제나 극장개봉과 배치되는 것인가 아닌가 등의 논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해명되지 않은 숙제들이다.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도 전국 곳곳에서 눈물겨운 상영 여행이 이어진다. 공간을 구하고, 기술 실무를 다큐유랑 멤버들이 직접 해결함은 물론, 상영 수입보다 감독들 돈 들어가는 게 더 많았을 것은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이해될 것이다.

다큐유랑 활동을 거치면서 가끔 보람도 있지만 주최 측보다 더 적은 관객이 일쑤고, 상영활동에 점차 감독은 지쳐만 간다. 무의미한 활동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다고 뭐가 될까? 고민에 빠진 나바루 감독의 체념은 흑백 톤의 차가운 화면과 싱크로가 되어 청년실업세대들에게 상당한 공감대로 작용한다. 영화는 끝내 어느 독립서점에서의 상영회 풍경으로 결말을 향한다.

독립영화 환경에 대한 ‘메타-영화’이기도 하지만, 연줄도 없고 가방끈도 길지 않은 초짜 감독의 분투기는 특히 지역의 젊은 관객에게는 영화를 넘어서 상당한 울림이 있을 법하다. 서울이 아닌 부산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작은 영화제에서 더 관객들의 호응이 높았던 걸 본 기억처럼, 대구의 동 세대에게 <두 번째 행군>은 적절한 만남이 필요한 작품이다.

#4. 외장하드에서 영화를 자유롭게 하리라?!
<두 번째 행군>을 비롯해 총 24편의 “반짝반짝전” 소개 작품 중 상당수는 본 기획전의 애잔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외장하드 속으로 사라져갈 운명을 되돌리긴 힘들 것이다.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그러나 하는 일 때문에 타 영화제 등에서 상당수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던 필자의 판단으론, 극장에서 개봉할 기회를 얻는 독립영화와 그렇지 않은 독립영화의 수준 차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인 경우가 허다하다.

적절한 타이밍과 타깃을 설정하지 못해 작품이 담은 내용 함의나 장점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평가받을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작품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반짝반짝전”이 비록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몇 명의 관객들에게 만이라도 이 외장하드라는 관 짝에서 아주 잠깐 탈출을 시도한 작품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특히, 본 작품 <두 번째 행군>은 상당히 재미있는 구석이 많고, 청년세대들에게 공감을 얻을 코드가 많음에도 부당하게 외면당한 작품이란 느낌이 강하기에 더욱 그렇다.(실은 개인적으로 전작인 <바보들의 행군>이 더 재미있는 작품이라 믿는다)

<두 번째 행군>의 대구 첫 상영이자 관객과의 대화가 5월 14일(화) 저녁7시30분, 오오극장에서 열린다. 심드렁한 척 별 기대 안한다는 듯 스르륵 대구로 내려올 나바루 감독이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알 것이다. 감독이 얼마나 관객을 애타게 그리워하는지를. 멀리서 온 손님을 환영하는 대구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있기를 기원한다.

<작품정보>
두 번째 행군 A Second March 다큐멘터리|한국|2017|88분|감독 나바루

17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초청(국내 신작전)
1회 부산청년영화제(2018) 초청(폐막작)
1회 독립영화 반짝반짝전(2019) 초청(상영작)

<기획전 정보>
명칭 :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기간 : 2019.5.9.(목) ~ 6.5(수)
극장 : [광주] 독립영화관GIFT, [서울] 성북문화재단 아리랑시네센터, [대구] 오오극장, [서울] 인디스페이스
상영작 : 총24편(장편 18, 단편 6)
주최 :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사)독립영화전용관확대를위한시민모임|(재)성북문화재단
후원 : 영화진흥위원회

보다 상세한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정보는! http://55cine.com/2019/04/17/twik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