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우스꽝스러운 역사의 반복 / 이택광

11:08

한일관계가 난망하다. 좀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혐한과 반일이라는 닮은꼴의 순환 고리를 벗어나서 속내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단순한 측면도 있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는 경제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치 문제이다. 발단은 2018년 10월 30일에 나온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에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인 (주)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의 재상고를 기각해 원고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과정을 살펴보면 소송을 시작한 지 13년 8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판결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1941년과 1943년 사이에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에 강제로 끌려가서 일을 했지만,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아 귀국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처음에 일본 법원에 임금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2003년에 최종 패소했다. 이에 다시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내서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환송을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이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배상을 강제할 만한 방안은 없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 이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당시 중론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이어졌다.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는 이 판결이 일본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일관계의 근본을 뒤흔든 사건으로 비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한일관계의 갈등에 대해 많은 전망과 진단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 이 문제야말로 지금 이 상황에서 심각하게 논의에 부쳐야 할 사안이라는 생각이다. 현실주의적인 입장이라면, 이 갈등은 국내 정치의 이해관계를 국제 정치에 투사한 ‘과잉’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낙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낙관 자체가 습관적인 태도의 반복일 수 있음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이 사안은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한일관계를 1951년 9월 8일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연합국과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있다. 오늘날 한일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국제질서는 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이 조약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해결 불가능한 모순은 여기에 잠복해 있다. 자신의 주권과 독립을 결정하는 조약에 정작 당사자가 끼지 못했다는 사실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참을 수 없는 치욕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냉전체제의 구축을 통해 한국의 민족주의를 억압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조약이 이루어진 1951년 한국은 한국전쟁의 포화에 잠겨 있을 때였다. 한국전쟁은 냉전을 본격화함으로써 한때 적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동맹관계로 바뀌는 계기를 제공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북아의 질서가 이렇게 형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질서는 자국의 이해관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전승국 지위를 얻지 못하고 강화조약의 일원으로 초대받지 못함으로써 한국은 사실상 이 질서의 주체일 수 없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식민주의를 그대로 계승하고 출발한 동북아 냉전 체제 아래에서 한국은 1965년 6월 22일 일본과 한일기본조약을 맺으면서 이른바 ‘국교정상화’를 했던 것이고, 지금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일관계는 이렇게 당시 박정희 정부가 수많은 반대여론을 억누르고 비준한 한일조약에 근거해서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뜻하지 않게도 지금까지 불안하지만 그나마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1965년 이후의 한일관계를 뒤흔든 셈이다. 뜻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판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으로 초래된 사법부에 대한 의혹을 일소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해석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현실주의자는 이런 ‘과잉’으로 인해 빚어진 잡음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일본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진단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런 판단이 간과하는 것은 현재 일본의 행동을 추동하고 있는 내적 논리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 사법부의 판결은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준 격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베 내각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작게는 한국 사법부의 판결로부터 일본 기업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크게는 1951년 이후 ‘정상국가’의 길을 막아온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를 일본이 만들어야 할 때라는 자신들의 대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다. 전격적으로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남북정상의 만남은 이런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북미관계가 새롭게 규정된다면, 일본 역시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국제관계에서 자리매김할 수 없다. 이런 인식이 일본 내에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선 신질서에 대한 요청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분명 이런 상황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하면서 ‘대동아신질서’를 주창하던 1930년대를 연상시킨다.

과연 이런 일본의 열망은 실현 가능할까. 당연히 회의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근대 이후 형성된 국제관계를 거스르면서 신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시도가 성공한 적은 없다. 가장 위협적이었던 공산주의 운동조차도 결국 희미한 형체만 남기고 사라졌다. 어쨌든 일본의 문제는 일본이 해결할 일이고, 이제 공을 한국에게 넘겨보자. 지금 한일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든 한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통된 입장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우선순위에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모습이다.

겉으로는 ‘죽창가’를 부르면서 민족의 존엄성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위기를 핑계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함으로써 그 민족 구성원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벌이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 아베 내각이 자행하고 있는 기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짓을 한국의 ‘민주정부’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만 신질서를 말할 것이 아니라, 이런 우스꽝스러운 역사의 반복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구상이 시급하게 필요한 때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식민지의 피눈물을 덮고 세워진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극복하고 일본과 한국 모두 진정한 동북아 협력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