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두려웠던 희망원 거주 장애인의 자립생활 적응기

희망원 시민마을 폐쇄 1년 장애인 탈시설보고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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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1 16:51 | 최종 업데이트 2019-11-01 20:16

 희망원 시민마을에서 30년 넘게 살다 자립한 서금순(64) 씨는 시민마을 폐쇄 소식에 처음에는 반대했다. 자립 생활이 막연히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 씨는 대구시청을 찾아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앞으로 함께 살 사람이 없지 않을까 무서웠다.

하지만 다른 희망원 입소자들이 자립하는 걸 보며 서 씨도 단기 자립 체험에 나섰다. 막상 시설을 나와보니 두려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서 씨 주변에는 활동지원사, 장애인센터 활동가, 그리고 이웃이 있었다. 자립 생활에 적응하니 두려움보다는 자유로운 활동의 가치를 느꼈다. 이제 서 씨는 나이를 더 먹고 나서도 요양원에 가지 않고 자립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조민정(40) 씨는 희망원에서 답답함을 느껴 시설을 나오고 싶었다. 그런데도 막상 자립하려니 두려웠다. 시민마을 폐쇄를 앞두고 조 씨는 자립 생활 단기 체험을 했고, 그제야 시민마을이 없어져도 갈 곳이 있겠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장기 체험홈을 거쳐 영구임대아파트로 들어간 후, 조 씨에게는 친구도, 단골 옷집도 생겼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30분 넘게 해도 야단치는 사람도 없었다.

▲서금순(왼쪽) 씨, 조민정(오른쪽) 씨

희망원 시민마을 폐쇄 후 1년, 탈시설한 희망원 거주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31일 오후 2시, 대구 MH컨벤션센터에서 '대구시립희망원 시민마을 폐쇄 1년 장애인 탈시설 보고대회'가 열렸다.

보고대회에는 서 씨, 조 씨를 포함해 이들처럼 희망원 시민마을에서 자립 생활을 시작한 장애인 33명이 참석했다. 보고대회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주관하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구시가 주최했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 부산시의회, 부산시청, 대구사회서비스원, 대구시립희망원 희망마을 등 40여 개 기관·단체 300여 명이 참여했다.

김미연 UN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탈시설,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위주로 기조연설 했다. 이어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희망원 탈시설 자립 지원 시범사업 성과분석, 이연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의 시범사업 향후 과제 발표도 있었다.

김 위원은 "대구시가 처음 탈시설팀을 만들었고, 권 시장과 대구시 탈시설팀 만났다. 의견 맞지 않는 과정 있었지만, 탈시설팀 운영은 다른 나라에서도 모범 되는 사례로 표현할 수 있다"며 "장애인권리협약에도 지방정부 책임이 나와 있다. 우리 위원회에서도 탈시설을 권고하고 있다. 인간적 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숙경 교수는 2019년 7월~10월, 희망원 탈시설 시범사업 참여자 9인의 삶의 질 변화를 연구한 결과 ▲일상생활에서의 자율성 증가 ▲평균 외출 수 증가 ▲삶의 질 증진 ▲도전적 행동 감소 등의 경향을 확인했다. 과제로는 ▲이동, 접근성 개선 ▲야간 활동 지원 등을 꼽았다.

시범사업 참여자 9인은 지난해 희망원 거주인 탈시설 욕구 조사 과정에서 탈시설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이들이다. 2018년 11월 대구시가 이들을 대상으로 탈시설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박 교수는 "(탈시설) 6개월 만에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 자기 결정권, 삶의 질 등 개선이 매우 크게 이뤄졌다. 매우 고무적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연희 사무국장은 시범사업 참여자 9인 관련 ▲시설 폐쇄에 따른 타 시설 전원이 아닌 사례 ▲개인 욕구 이전 사회적 권리로서 탈시설 지원 사례의 의의가 있지만, 사업이 한시적이며 소득, 주거 등 인프라 부족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명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희망원 사태가 더 이상 아픔의 시간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변화를 위한 성장통의 시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진 시장은 "희망원 사태를 계기로 우리 시는 거주 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 지역 내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도 더 촘촘히 지역사회 지원체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고,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할 때 편견과 장애가 보이지 않아야 진정한 복지사회다. 탈시설한 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응원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희망원 사건에 많은 사람이 울분을 토했다. 희망원 사태와 같은 장애인 시설 학대 사건은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탈시설 권리보장을 공약으로 한 만큼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립희망원 거주인 인권 유린, 운영 비리 사태는 2016~2017년 공론화됐다. 2017년 3월 희망원 혁신대책이 발표됐고, 4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희망원 문제 해결 공약을 발표했다. 2018년 1월 희망원 거주 장애인 대상 탈시설 욕구 지원조사가 진행됐고, 9월 욕구 조사 결과 대구시는 자립 불가자, 무응답층 52명을 전원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인권위 진정, 농성 등 지역 사회 반발이 있었고, 11월 무연고, 중증 중복 장애인 9인에 대한 자립 지원 시범사업 실시를 발표했다. 12월 시민마을은 폐쇄됐다.

▲31일 오후 2시, 희망원 탈시설 1년 보고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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