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동 여행자 안내하는 인문지리지”···이하석 신작, ‘향촌동 랩소디’

시와 반시 기획 시인선 
25편의 시와 짧은 산문 3편

15:33

우루루 내려와서
대책이 없어졌지
문총구국단에라도 종군작가단에라도 결쳤지

구호품을 타서 연명하던 문학사여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동리 최인욱 서정주 유주현 양명문 오상순 전숙희 황순원 최정희 김윤성 김송 김팔봉 구상 정비석 최태응 유치환 이호우 전봉건 김종삼이
향촌동에서 우굴거렸지
뽀얗게 흐린 술잔을 들었지

– ‘한국 피난 문단사’ 부분

경복여관에 묵으며 은지화를 그렸다네
여관 가까운 백록다방 구석에서도
은종이에 심화心畵를 새겼다네

아이들이 고기와 놀고 있는 걸
‘초토의 시’* 표지로 그려준 그는
거식拒食과 몽상의 난민

 * 구상 시집. 표지화를 이중섭이 그렸다
– ‘이중섭’ 부분

1950년대 대구는 마해송, 조지훈, 구상을 비롯한 전국 문단이 고스란히 대구로 옮겨 ‘향촌동에서 우굴거렸’다. ‘백록다방 구석’에는 이중섭이 은지화를 그렸고 구상은 시를 떠올렸다. 한국전쟁기 대구 향촌동은 전국 문인들의 피난처였고, 대구 문학사에 전국 문인들이 동시에 이름을 올렸던 때였다.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이 <천둥의 뿌리> 이후 3년 만에 신작 시집 <향촌동 랩소디>를 지난 9월 펴냈다. 대구를 기반으로 한 시 전문지 ‘시와 반시’ 기획 시인선의 첫 번째 작품으로 출간된 이번 시집에는 근대부터 지금까지 향촌동을 살았던 사람들과 풍경을 담은 시 25편과 짧은 산문 3편을 엮었다. 그가 “문학관이 있는 향촌동 일대를 기웃거리고 다닌 흔적들”이다.

▲이하석 시집 “향촌동 랩소디” 북콘서트, 지난 10월 시인의 시 ‘시인의 카페’의 장소인 ‘CAFE GO’에서 열렸다.(사진=정용태 기자)

시인은 향촌동을 “특히 6·25 이후 유명해진 술집 거리였다. 피난 온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어울려 곤혹스러운 나날을 술로 달랬다. 그래서 ‘피난 문단의 거점’으로, 또는 ‘한국 문단의 50년대 초반 무렵의 중심거리’로 꼽기도 한다”며 “백록이니, 백조니 하는 다방들과 화월여관, 경복여관, 그리고 녹향 감상실, 르네상스 감상실 등 문화예술인들과 관계되는 추억의 장소”라고 말했다.

대구문학관장을 맡으면서부터 시인은 “‘점심때나 퇴근 무렵 이 지역의, 옛 정취가 많이 남아있는 골목들을 어정거리며 기웃’했고, ‘비교적 싼 밥집들. 그러나 여전히 후하고 푸짐한 식단들’로 밥을 먹고 ‘경상감영공원을 산책하거나 최근 비교적 싸게 개조한 카페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도 가진다’”고 말했다.

시인의 기웃거림은 ‘골목들’, ‘구름의 거처’, ‘구두 인간’, ‘시인의 카페’ 같은 시가 됐다. ‘한국 피난 문단사’, ‘이중섭’, 산문 ‘향촌동의’ 같은 작품은 향촌동의 근대사를 그렸다. 김수상 시인은 “이하석 시인의 이번 시집은 향촌동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인문지리지 같다”고 말했다.

이하석 시인은 194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녹>, <연애 간(間)> 등을 냈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을 수상했고, 1987년 대구민족문학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2016~2017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예술감독, 2018년 3월부터 대구문학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