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포디즘의 이면, ‘포드 V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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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V 페라리(FORD V FERRARI)>는 미국 포드자동차가 프랑스의 스포츠 자동차 경주 ‘르망 24시’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르망 24시는 1923년 시작된 자동차 경주로, 24시간 동안 한 차량을 여러 명의 레이서가 교체하면서 주행해야 한다. 속도가 빠르고 내구성이 뛰어난 차를 가려내는 경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포드는 설립자 헨리 포드가 고안한 포디즘(대량 생산 체계)에 따라 양산품을 찍어냈다. 하지만 지속적인 매출 감소로 위기감이 짙었다. 스포츠카의 명가로 이름을 높이고 있는 페라리의 자동차 생산량은 포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포드는 새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스포츠카 경주에서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페라리 인수·합병에 나선다. 하지만 페라리는 포드의 제안을 몸값 올리는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계약은 거절한다. 망신을 당한 포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자동차 경주에서 페라리를 이길 차량 생산에 돌입한다.

<포드 V 페라리>는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에서 이야기를 출발한다. 언뜻 보면 포드가 페라리를 상대로 기적의 승리를 거뒀던 자동차 경주와 그 기적을 실현해낸 인물들에 관한 감동 실화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승리에 도취됐고, 이탈리아는 추축국 중 하나로 연합군에 패한 여운이 남았다.

영화에서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는 집무실 창밖의 포드 공장을 가리켜 “제2차 세계대전 때 저 공장에서 미군 폭격기 5대 중 3대를 만들었어, 전쟁을 시작해!”라고 말하며 페라리와 경쟁을 본격화했다.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실존인물인 캐롤 셸비(멧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는 페라리를 이기는 것과 동시에 관료주의에 찌든 대기업 임원과도 상대해야 한다. 제목은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을 뜻하지만, 페라리의 존재감은 영화에서 비중이 낮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포드 임원진을 상대로 셸비와 켄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는 자동차가 총알처럼 질주하는 스포츠 경주가 소재인 만큼 시종일관 내달리는 자동차의 모습과 온몸을 관통하는 격렬한 엔진 소리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실감 나는 촬영과 박진감 넘치는 편집, 귓가를 때리는 강렬한 음향은 쾌감을 준다. 후반부에선 르망 24시 레이스 장면을 30분이나 지속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하지만 영화는 152분의 러닝타임 동안 캐롤과 켄이 르망 24시에 출전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모습이 중점적으로 다룬다.

영화가 무게를 두고 있는 부분은 미국을 상징하는 포드의 도전정신이 아니라 포디즘과 결합한 미국 제일주의와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기업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헨리 포드 2세는 포드의 총수이지만 셸비의 운전에 겁을 집어먹고 울음을 터트린다. 또 그토록 고대하던 르망 24시에서는 경기를 제대로 지켜보지도 않고 식사하러 헬기를 타고 가버린다. 포드의 부사장 레오 비비(조쉬 루카스)는 머스탱 신차 발표회장에서 망신을 준 마일스를 시종일관 괴롭힌다. 켄이 “포드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첫해 르망 출전에서 배제한다. 르망 24시 마지막 장면에서 셸비와 켄이 일궈낸 성과를 포드의 매출 상승을 견인하기 위한 노림수로 짜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포드의 셸비와 켄이 의기투합하는 모습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차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유분방하고 센 고집으로 포드와 마찰을 빚는 켄과 포드와 켄 사이에서 고뇌하는 셸비에 공감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동차 경주가 주제이지만 실은 개인과 조직의 마찰,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개인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대조직·자본과 손잡아 어떻게 목적지를 향해가는 지, 그 결과로 어떤 대가를 치르는 지 알 수 있다.